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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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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식 Sep 26. 2022

기억주사 #6. 채이서

김부장이 다시 방으로 돌아왔을 때, 그의 룸메이트는 침대에 누운 채 핸드폰에 집중하고 있었다. 가급적 저런 불량한 무리와는 말을 섞기 싫었던 김부장은 혹시나 그의 주의를 끌까 봐 조심조심 그의 자리로 돌아가서 옷을 갈아입기 시작했다. 아무쪼록 그가 말을 걸지 않고 조용히 핸드폰만 봐주기를 바랐지만, 그런 김부장의 기대는 여지없이 깨졌다. 뒤돌아서 옷을 갈아입고 있는 김부장을 향해 그의 룸메이트가 말을 걸기 시작했다.


"근데 여기 진짜 이상하지 않아요?"

"아, 그런가?"


김부장은 새파랗게 젊은 놈이지만 처음 본 사람한테 말을 놓는 게 아직 좀 거북하다.


"사실은요. 제가 임상시험이 좀 돈이 되는 것 같아서, 여기저기 많이 다녀봤거든요. 근데 여기처럼 하는 데는 없단 말이에요. 보수도 그렇고, 무슨 비밀유지 각서까지 쓰라고 하고. 그리고 그 '기억주사'라고 하는 거요.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세요?"

"나야 잘 모르지."

"아니 다른 사람의 기억 세포를 내 머릿속에 집어넣으면 기분이 좋아진다고요? 그게 말이 돼요? 그리고 제가 하도 이상해서 어떤 사람들이 기억을 주는 거냐고 좀 꼬치꼬치 캐물었거든요. 근데 기억 제공자와 관련된 사항은 극비 사항이라나. 그러면서 절대 알려주지 않는 거예요. 그냥 순수한 아기들의 기억이니깐 믿고 맡기라는데. 솔직히 아기들이라고 해서 다 행복하기만 한가요? 맨날 젖 달라고 떼쓰고, 똥 쌌다고 울고불고하잖아요? 아기들이라고 무조건 행복하기만 한가? 또 애들 부모가 혹시 학대 같은 거 했는지 어떻게 알아요? 그래서 난 못 믿겠으니깐 기억을 제공하는 아기가 어떤 아기인지 걔네들 부모가 어떤 사람인지 알아야겠다고 부득부득 우겼는데. 이 독한 것들이 끝까지 안 불더라고요. 나보고 이러실 거면 그냥 가시래요. 그래서 하는 수 없이 접고 그냥 여기 들어오기는 했는데. 정말 이 부분이 찜찜하단 말이에요. 아저씨는 괜찮아요?"

"난 그냥 별로 생각 안 해봤는데..."

"아니 그러고 무슨 이런 깡촌에서 임상시험을 한다는 거예요? 저희 집도 시골이지만 이 정도 깡촌은 아니거든요. 얘네들 무슨 사기 치는 것 같지 않아요? 무슨 기억주사를 놓는다 하고서는 이상한 마약 같은 거 넣고 그러 지는 건 않겠죠?"

"유명하지는 않아도 여기가 그렇게 이상한 회사는 아닌 거 같긴 하던데.."

"하기사 설마 마약 같은걸 넣기야 하겠어요? 조폭들도 아니고 그리고 우리한테 마약 넣어서 어쩔 거야? 그거 살 돈도 없는데, 안 그래요? 그럼 혹시 무슨 마이크로칩 같은 걸 우리한테 심어서 감시하고 이러는 거 아니에요? 요즘 인터넷에 그런 이야기들도 좀 떠돌던데, 유튜브에서 그런 거 본 적 있지 않으세요?"

"그렇게 못 미더우면 지금이라도 그만둔다고 하는 게 어때요?"

"미쳤어요. 아저씨. 돈이 얼마인데. 이것들이 내 몸에 좀 이상한 짓 한다고 해도 300만 원이면 용서가 돼요. 뭐 쓸개 같은 것 떼어가는 것도 아닌데."


모르긴 몰라도 300만 원에 조금 웃돈만 준다 하면 쓸개도 떼어줄 것 같다고 김부장은 속으로 생각했지만, 차마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지는 않았다.


"아저씨는 뭐해요? 회사 다녀요?"

"나 회사 다니지."

"어디예요? 서울에 살면 대기업 다니는 거 아니에요?"


김부장은 자기가 다니는 회사 이름을 말해주고 젊은 청년 앞에서 으쓱댈 수도 있었지만 괜히 말했다가 빈댕이처럼 들러붙으면 어쩌나 걱정돼서 대충 둘러대기로 한다.


"아니, 조그만 중소기업이야. 말해도 모를 거야"

"아저씨 가족들은 뭐래요? 임상시험 간다고 하니깐 걱정 같은 것 안 해요?"

"난 가족이 없어서 괜찮아."


채이서는 살짝 놀라는 눈치였지만, 별로 티 내지 않으려는 듯,

"아! 싱글이시구나. 뭐 요즘에는 다들 그러고 많이 살잖아요."


도대체 '그러고' 사는 게 어떻게 사는 거길래 그리 말하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듣기에 썩 좋은 말은 아니었다. 김부장의 미간은 살짝 요동 쳤지만, 평정심을 잃지 않기 위해 애를 썼다. 여기서 처음 만난 저 청년과 언쟁 따위는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마침 방문이 열고 간호사 한 명이 들어왔다.

"채이서님, 김XX님"

두 사람은 거의 동시네 "네"하고 대답을 하자, 간호사는 들고 있는 종이를 보면서,

"먼저 김XX님 10시까지 2층으로 내려오시고요. 채이서님은 10시 20분에 내려오시면 돼요."

그렇게 얼른 할 만만 전달하고 서둘러 나가버린다.


덕분에 두 사람의 유쾌하지 않은 대화는 끊어졌고, 김 부장은 더 이상 말 시키지 말라는 의미로 등을 보이며 돌아 누웠다. 채이서도 이제 좀 흥미를 잃었는지 아까 보던 핸드폰으로 다시 눈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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