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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기억주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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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제이식 Nov 20. 2022

기억주사 #11. 꿈

아주 가늘게라도 실눈을 뜨고 세상을 살피고 싶었지만, 태양은 그것마저 용납하지 않으려는 듯 강렬한 빛으로 눈을 따갑게 쪼았다. 조금이라도 그 강렬함을 덜어내기 위해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려보지만, 빛들은 손가락 틈새를 비집고 나와 호락호락하게 세상과 마주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았다. 되레 태양을 향해 뻗은 팔은 허연 살갗들만 훤히 드러내는 꼴이 되었고, 순두부처럼 물러 터진 살들에는 타들어가는 듯한 고통이 전해졌다. 후회하고 다시 팔을 거둬보지만, 작렬하는 태양 아래 어디에도 숨길 만한 곳은 없었다. 태양 아래 내동댕이 쳐진 육신은 이대로 산화해버릴 것만 같았다. 


'왜 이토록 저 태양은 나를 괴롭히는 걸까? 나라는 존재는 저 태양에게 용납할 수 없는 부정한 존재란 말인가? 그래 정녕 태양이 나를 집어삼키려 마음먹었다면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테지! 고통을 받아들이자! 의미 없는 저항은 고통만을 더할 뿐이야. 순응하자! 태양의 의도에" 


가만히 눈을 감고 양팔을 벌린 채 태양을 마주했다. 피부는 뜨겁게 달아올랐다. 뜨거운 감각은 곧 강렬한 통증이 되었다. 마치 지옥불에라도 그을린 듯한 강렬한 고통이었다. 압도적인 힘의 차이였다. 그것은 너무나 압도적이어서 이렇게 자신이 제물처럼 내던져진 상황조차 별로 억울하게 느껴지지 않았다. 마치 그것이 순리인 거 같았다. 

하지만 극한으로 치닫던 고통은 서서히 사그라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조금씩 몸이 가벼워지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고통이 너무나 희미해서 더 이상 느끼기 어려워졌을 때 즈음, 자신을 지배하고 있던 중력이 모두 사라지고 몸이 하늘 위로 둥실 떠오르는 것을 느꼈다. 육신은 전부 산화해버리고, 이제 공기보다 가벼운 영혼만이 남아버린 것일까? 당장이라도 눈을 뜨고 어찌 된 영문인지 살피고 싶었지만, 한편으로는 이 상황을 명확하게 두 눈으로 확인한다는 것이 두렵기도 했다. 그렇게 두 눈은 여전히 꼭 감은 채 공기 위로 떠오른 몸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여기저기 떠다니기 시작했다. 마치 물속의 해파리처럼. 


하지만 그 느낌이 나쁘지는 않았다. 고통스럽기만 했던 태양의 빛은 어느샌가 포근함 담요처럼 감싸주고 있었다. 그것은 너무나 달콤했고, 따스했고, 평온했다. 감각할 수 있는 모든 기관들은 그 황홀한 느낌에 취해버렸다. 이 시간이 이 느낌이 영원히 지속되길 바랬다. 완벽한 행복이란 이런 것일까? 감각에 취해버린 뇌는 아무 생각도 할 수 없었다. 몽롱해진 채로 감각들이 전해주는 희열만을 느낄 뿐이다. 

좋은 냄새가 났다. 정체는 알 수 없지만, 익숙하면서도 향기로운. 아마도 바람이 그 향기를 전해주는 것 같았다. 귀를 기울였다. 귓가를 스치는 아주 가느다란 바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멀리서부터 전해오는 파도소리도 그 안에는 섞여 있었다. 소리는 점점 명확하고 크게 들리기 시작했다. 어디선가 강아지가 짖는 소리도 들렸다. '끼익 끼익' 바람에 흔들리는 낡은 고철 대문 소리, 누군가가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 그리고 그 사이로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렸다. 조금은 낯익은 목소리였다.


"아저씨!"


그 목소리는 너무나 크게 들렸고, 화들짝 놀란 김부장은 눈을 떴다. 김부장의 눈앞에는 어제 보았던 낯선 천정과 채이서가 있었다. 채이서는 김부장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고 있었다. 


"아저씨! 밥 먹어요. 안 깨우려고 했는데, 좀 있으면 아줌마가 그냥 가지고 갈 것 같아서 깨웠어요."

채이서는 김부장이 눈을 뜬 것을 확인하고 자신의 침대로 돌아갔다.


김부장은 잠시 멍하니 누운 채로 지금의 상황을 파악해야 했다. 그리고 곧 알아챘다. 그는 2차 접종을 마치고 다시 자신의 침대로 돌아왔고, 그가 2차 접종을 위해 2층으로 내려간 것은 거의 4시간 전의 일이다. 그는 그 시간 동안 잠들어 있었던 것이다.


'꿈이었구나.'


김부장은 괴이한 꿈속에서 빠져나왔지만, 그 안에서 느낀 강렬한 느낌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고 가슴 한편에 남아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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