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러 프로토콜과 테라의 성장 배경
2020년 7월, 선불 충전식 체크카드인 차이(Chai)의 등장과 함께 꿈틀 하던 테라(Terra)는 미러(Mirror) 프로토콜과 앵커(Anchor) 프로토콜의 등장과 함께 200원이던 루나(LUNA)의 가격이 15만 원까지 상승할 정도로 폭발적으로 성장했었다. 하지만 2022년 5월, 루나의 가치는 0에 수렴하게 되었고, 얼마에 투자했든지 누구나 99.99%의 손실을 보게 된 전설의 코인이 되었다. 루나에 미친 사람들이란 뜻인 루나틱(Lunatic)이라는 용어까지 만들어질 정도로 전 세계적인 팬층을 보유했던 테라 블록체인이 어쩌다 한 순간에 무너지게 되었을까?
우선 테라가 성장하게 된 배경부터 살펴보자. 테라는 일종의 국채 역할을 하는 루나(LUNA)라는 코인과 달러에 가치가 페깅 된 UST는 두 개의 코인을 가지고 있는 프로토콜이었다. UST 이외에도 원화에 페깅 된 KRT, 몽골 투그릭에 페깅 된 MNT 등 수많은 스테이블 코인들이 있었지만 UST의 사용량이 압도적으로 많았기 때문에 UST만 언급하겠다. 루나라는 변동성이 있는 코인은 UST의 가격을 $1로 맞추는 데 사용되었는데, UST의 시장 가격이 $1보다 낮아지면 루나(국채)를 발행하고 UST를 흡수하여 공급량을 줄임(소각)으로써 가격을 올렸다. 반대로 UST의 가격이 $1보다 높아지면 루나를 사들여서(소각) UST의 공급량을 늘리고(발행) 가격을 낮췄다. 국가가 양적 완화(Quantitative Easing; QE)와 양적 긴축(Quantitative Tightening; QT)으로 통화량을 조절하는 것과 유사한 메커니즘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UST의 스테이블 메커니즘은 루나의 가격이 유지되거나 상승할 때는 잘 유지가 된다. 하지만 루나의 가격이 폭락하게 되면 죽음의 소용돌이(death spiral)에 빠져들면서 메커니즘이 망가질 수도 있다. 테라는 이러한 위험을 인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여러 가지 안전장치들을 둬서 죽음의 소용돌이에 빠지지 않도록 제어하고 있었다. 그리고 대폭락이 오기 전까지는 루나의 가격이 계속해서 상승했기 때문에 몇 번의 위기가 찾아오긴 했지만 메커니즘이 잘 동작하였고, UST의 가격은 $1에 잘 맞춰지고 있었다. 그러나 이 메커니즘이 잘 동작하는 것과 테라의 생태계가 성장하고 루나의 가치가 상승하는 것은 별개의 일이다. 그렇다면 루나의 가격은 어떻게 상승하게 되었을까?
루나 가격 상승의 핵심은 UST의 스테이블 메커니즘, 즉 루나와 UST 간의 발행 및 소각 메커니즘에 있다. UST의 수요가 증가하여 가격이 상승하면 루나를 소각하고 UST를 발행하기 때문에 루나의 공급량이 줄어들어 가격이 상승하게 되는 구조였다. 그리고 루나의 가격이 상승하면 UST의 스테이블 메커니즘이 더 잘 동작하여 UST의 안정성이 높아진다. 그렇기 때문에 UST의 수요를 늘릴 수 있다면 루나의 가격이 상승하고 생태계가 확장될 것이라는 것을 예상할 수 있다. 테라를 개발하고 운영했던 테라폼랩스(TFL)와 루나 파운데이션 가드(LFG)는 이를 위해 미러와 앵커 프로토콜을 출시하였다.
2020년 12월에 등장한 미러 프로토콜은 미국 증권거래소에 상장된 대장주들의 주가를 추종하는 합성 자산(synthetic asset)을 다루는 어플리케이션이었다. 미러 프로토콜에서 합성 자산을 발행하는 방법은 UST를 과담보로 잡는 것이었다. 예를 들어, 시가 $144인 APPL의 주가를 추종하는 mAPPL을 1개 발행하고 싶은 사람은 288개의 UST($288)를 담보로 잡고 200% 담보비율로 mAPPL 1개를 발행할 수 있다. 이렇게 발행된 mAPPL을 시장에 매도한다면 일종의 공매도를 하는 것과 같다. 왜냐하면, mAPPL의 가격이 하락한다면 시장에서 mAPPL을 더 싼 값에 매수하여 갚으면 담보로 맡긴 UST를 되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핵심은 mAPPL을 누군가에게 빌리지 않고 발행하여 공매도 포지션을 취할 수 있다는 것이다. 또한, mAPPL을 발행한 유저는 UST와 페어를 묶어서 미러 내 거래소에 유동성 공급을 하고 거래 수수료를 받을 수도 있었다. 뿐만 아니라 24시간 거래가 가능했고, 전 세계 어디서나 거래할 수 있었다. 일반인이 기존의 증권거래소에서 할 수 없었던 일들을 할 수 있었기에 굉장히 혁명적인 어플리케이션이었다고 할 수 있다.
2021년 1월, 레딧 커뮤니티의 WallStreetBets 게시판 사용자들을 필두로 게임스탑 사의 주식인 GME를 매수하여 헤지펀드들의 공매도 포지션을 청산(short squeeze)시키겠다는 서학 개미 운동이 일어났다. 일론 머스크와 동학 개미까지 가세하며 GME의 주가는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았고, 실제로 멜빈 캐피털 등 몇 개의 헤지펀드가 청산을 당하게 되었다. 그런데 1월 28일, 개미들의 증권거래 앱인 로빈후드가 GME의 매수 버튼을 비활성화시켰고, 이로 인해 GME의 주가는 하락하게 된다. 이후 수많은 사람들이 로빈후드 어플리케이션을 지우고 대안을 찾아 나서게 되었는데 미러 프로토콜은 이때를 놓치지 않았다. 특정한 기관의 권력에 좌우되지 않는 검열 저항성을 가진 블록체인 플랫폼 위에서 구현된 미러 프로토콜에서는 로빈후드와 같은 사태는 일어나지 않는다고 홍보하여 많은 사람들이 미러 프로토콜로 이주해왔다. 동시에 GME의 주가를 추종하는 mGME를 미러 프로토콜에 상장시켰다.
미러 프로토콜의 사용량이 늘어나면서 합성 자산 발행을 위해 UST가 지속적으로 담보물로 묶이게 되었고, 루나의 가격 상승과 함께 테라는 서서히 성장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