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한 번은 코피를 흘린다. 코를 파다가도, 코를 풀다가도, 자다가도 피가 난다. 대개는 코를 두 손으로 막거나 휴지로 코 안을 틀어막는 것만으로 몇 분 만에 피가 그친다. 대부분은 코 앞쪽에 있는 혈관이 터지는 경우로, <전방 비출혈>이다.
그런데 가끔 코피가 멎지 않는 경우가 있다. 코 안쪽 깊숙한 곳의 혈관에 문제가 생기는 <후방 비출혈>인 경우다. 대부분 고령 환자로 고혈압이 있거나, 항응고제 등을 먹는다. 후방 비출혈은 전방 출혈에 비해 큰 혈관의 문제로 출혈양이 많고 코 안 쪽 깊숙이 위치하여 치료가 어렵다. 또한 어떻게 지혈에 성공한다고 하더라도 재출혈의 위험이 높아, 의사는 물론이고 이비인후과 의사라도 피하고 싶게 만드는 증상이다.
OO 병원 응급실로 코피를 흘리는 환자가 왔다. 70대 여자 환자로 심장 문제로 피를 묽게 만드는 약을 먹는 분이었다. OO 병원에는 이비인후과 의사가 없었기에 응급실 선생님은 일단 코안에 지혈 튜브를 넣어 출혈을 막은 후, 다음날 다른 병원 이비인후과에서 지혈 튜브를 제거한 후 이상이 없는지 확인하라고 보냈다.
다음날 환자는 다시 낮에 응급실로 찾아왔다. 코피가 멈추지 않아서 온 것이 아니었다. 이비인후과 의원을 세 군데나 갔지만, 의사 모두가 튜브를 제거한 후 후방출혈일 경우 감당할 수 없기에 튜브를 제거할 수 없다고 거절하여 환자는 어쩔 수 없이 처음 지혈 튜브를 넣어주었던 응급실로 다시 온 것이다.
이비인후과에서 단순히 지혈 튜브를 제거하면, 13,810원(비내이물제거술 수가)을 받는다. 피를 묽게 만드는 약을 복용 중이라, 재출혈의 위험도 높고, 앞서 말한 후방 비출혈이 가능성도 높다. 기껏 십 수 분간 지혈에 성공해도 32,140원(비출혈지혈법 수가)이다.
단순히 낮은 수가를 떠나, 고령의 피를 맑게 해주는 약을 먹는 환자의 코피는 의사에게는 폭탄과 같다. 후방 비출혈의 경우, 출혈 부위가 목 뒤쪽이라 자칫 피가 기도로 넘어가면 흡인성 폐렴이나 호흡곤란 등을 일으킬 수 있다.
단순 패킹으로 지혈에 실패하면 내시경적 결찰술이나 동맥 결찰술이나 동맥 색전술 등을 해야 하는데 이 또한 실패할 확률과 부작용이 있다. 자신이 시도하여 실패해도, 다른 병원으로 쉽게 전원이 가능하면 그래도 시도할만하다. 거기다 출혈을 막기 위해서는 항응고제를 끊는 것도 고려해야 하는데 항응고제를 끊었다가 뇌혈관이나 심장 혈관이 막히는 뇌경색이나 심근경색이 생기면, 의사는 소송을 피해 갈 수 없다.
실제로 맹장염 환자에게 항응고제를 끊고 수술했다가 뇌경색이 왔다고 법원은 의사에게 1억 천만 원의 배상을 하라고 판결을 내렸다. 수술하지 않으면 사람이 죽는 맹장염 수술도 이런데, 기껏? 코피를 멈추기 위해 항응고제를 끊었다가 뇌경색이 왔다면 수억 아니 수십억의 배상을 피해 갈 수 없다. 심지어 귀지를 제거하다 피가 났다고 보호자가 2천만 원의 소송을 거는 나라가 한국이다.
그러므로 이비인후과 의사 입장에서는 뇌관, 아니 지혈 튜브를 건드리지 않는 게 상책이기에 3곳의 이비인후과 병원 모두 지혈 튜브를 제거하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환자는 돌고 돌아 처음 지혈 튜브를 꽂은 응급실로 온 것이다.
사실 처음부터 코피가 난 고령 환자는 아예 안 보는 게 가장 안전하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폭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응급실 선생님은 환자를 보았고, 지혈 튜브로 코피를 막았으며, 지혈 튜브를 넣은 죄로 지혈 튜브를 빼야만 했다.
정부는 싼 값을, 법원은 폭탄을 만들었다. 바이탈과와 필수과가 몰락한 이유다. 이러한 상황에서 이번에 혼자 마음 고생하신 응급실 선생님은 똑같은 상황에서 그 환자를 보려고 할까? 아니, 보아야 할까? 다 떠나서 당신이라면 그 환자를 보겠는가? 누가 싼 값에 자기 목숨을 걸고 폭탄을 제거하겠는가?
개인의 선의에 바탕을 둔 정책은 유지될 수 없다
이는 내가 한 말이 아니라, 슈카 형의 말이다. 주식투자자가 국장(한국 증시)을 버리고 미장(미국 증시)을 가듯, 의사라면 바이탈은 버리고 비바이탈로 가는 게 정답이다.
High Risk, Law & Low Return. And Then There Were None.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