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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할매곱창, 태백

연탄 위의 양념곱창, 태백에 가야 할 이유

by 김고로

경산의 진경돼지찌개와 커피고래에서의 즐거운 시간을 마치고 이쁜 여자와 나는 강릉으로 돌아가는 길에 태백에서 하루를 묵기로 했다. 과거 추석 귀가 길에 결정했던 것처럼 갑자기 결정한 것은 아니고, 어차피 영동선을 따라서 올라오는 길이니까 잠깐 우회해서 태백365세이프타운에서 안전교육 겸 체험을 하기 위해서였다.

(혹시나 태백에 갈 생각이 있으신 분들을 위해서 말씀드리자면, 태백365세이프 센터에서는 온갖 자연재해나 위기상황에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다양한 체험과 놀이기구로 알려주는 곳이니 꼭 한번 방문해 보는 것을 추천해 드리는 바이다. 그중에서 소방안전체험관은 꼭 예약해서 체험해 보시길. 안전교육은 이론보다는 실전경험이 최고임을 경험했다.)


눈이 아직 다 녹지 않은 태백에서 하룻밤을 지내고 태백365세이프센터에서 낮 시간을 보낸 후에 우리는 강릉으로 돌아가기 전에 내가 전날 검색했었던 태백의 식당들 중 하나를 들려서 점심을 먹고 가기로 했다. 태백에서 유명한 음식은 물닭갈비와 태백한우. 물닭갈비는 삼척 도계읍처럼 광부들에 의해서 발달한 식문화이고, 한우구이는 태백이 (남한에서는 비교적) 고산지대라는 점과 석탄산업으로 인한 연탄이 많이 생산되는 곳이기에 발달한 문화이다. 굳이 한우가 아니더라도 연탄으로 고기를 구워서 먹는다면 어떤 고기가 맛이 없을까.


하지만 우리가 처음 결정한 식당은 태백365세이프센터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어느 동네의 중국집이었다. 허나,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우리가 해당 중국집에 도착했을 때, 문은 굳게 닫혀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어........ 망했네."


"여기 일요일은 장사를 안 하나 보네."


"작은 동네에서 장사하는 식당이라서 그런가 봐. 다른 곳을 좀 찾아볼까."


"그래, 다른 데 가보자."


식도락 여행에서는 여러 사정으로 인하여 많은 애로사항들과 우연한 일정들이 발생한다, 그것도 식도락 여행의 매력이라고 한다면 매력이다. 우리는 재빨리 차에 탑승해서 지도앱을 켜서는 주변의 식당들을 검색해 보기 시작했다. 태백이라서 그런지 역시나 연탄구이집들이 상당히 많이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 내 눈에 들어온 준수한 평가를 가진 어느 연탄구이집, 양념곱창을 주력 메뉴로 하는 '할매곱창'이라는 집이었다. 어느 동네에나 하나씩 있을 것 같은 이름의 구이집이었지만 방문객들의 평가는 밑반찬이 부실하다는 얘기 외에는 그럭저럭 좋았다.


"여기서 10분 정도밖에 안 떨어져 있는데, 여기 가보자."


"그래, 나 배고파."


이쁜 여자는 배가 고프면 신체적으로 '절전모드'에 들어가기 시작하기 때문에 얼른 식사를 대접해 드리는 것이 중요하다. 나는 급한 마음으로 액셀을 밟아 태백의 철암동으로 향했고 할매곱창이 위치한 곳은 철암동에 위치한 기차역인 철암역 바로 옆이었다. 왕복 1차선의 좁은 도로였지만 근처에 주차할 곳이 적당해서 그리 불편하지는 않았다. 우리가 방문한 시간은 오후 3시가 다 되어가는 시간이라 미리 전화를 하니 영업을 한다고 하셔서 부담 없이 가게문을 열고 들어갔다. 노상에 옛날옛적에 뚝딱뚝딱 지어놓은 베란다와 같은 통유리 문을 열고 들어가니, 가게를 조금 더 증축해서 연탄구이를 할 수 있는 테이블과 설비가 보이고 실내에는 중국집과 같은 원형테이블, 낡은 형광등과 재방송 드라마를 시청하고 계시는 종업원 선생님이 계신다.


"영업하시죠? 전화했던 사람인데요."


벌컥하고 문이 열리면서 손님이 들어오자 편하게 눕듯이 앉아 드라마를 보시던 선생님께서 벌떡 일어나 우리를 맞이한다.


"네, 네, 밖에 앉으셔요."


나는 그리고 메뉴판을 슬쩍 훑어보고는 바로 주문을 넣었다. 지도어플에서 봤던 것처럼 고기메뉴 외에 식사메뉴는 막국수가 유일하다.


"갈매기살 하나에 양념곱창 2인분 주시겠어요?"


"네~ 상 차려 드릴게요."


나와 이쁜 여자는 바깥에 한자리를 차지하고 앉았고, 얼마 안 있어 새카맣고 둥근 연탄이 테이블 안으로 쏙 들어가서는 불을 밝힌다. 이래서 밖에 앉으라고 하신 거구나, 연탄으로 덥혀서 안 추우니까. 태백은 고산지대에 있는 곳이라 여름에도 이불을 덥고 잘 정도로 기후가 선선하고 냉랭한 곳이어서 그날도 공기가 제법 차가웠지만 연탄으로 불을 밝히니 추위는 우리 테이블 주변에서 점점 물러가고 있었다.


할매곱창의 상차림


그리고 밑반찬으로 나오는 반찬 서너 가지와 쌈채소와 쌈장, 얘기했던 대로 밑반찬들은 종류수가 일반적인 고기나 갈빗집에 비해서 적은 편이었지만 하나하나 맛이 좋아서 나와 이쁜 여자는 불만이 없었다. 그리고 한꺼번에 우리가 주문한 고기들이 올라왔다, 갈매기살은 간이 어느 정도 되어있는 생고기였고 양념곱창은 한번 초벌을 해서 나온 모양이었다. 연탄 위에 반짝반짝거리는 망 사이사이에 약간의 그을음이 보이는 석쇠를 살며시 올리고 나는 간이 덜 되어있는 갈매기살부터 굽기 시작했다.


할매곱창의 갈매기살


숯불에 굽는 것보다는 구워지는 속도가 조금 느렸지만 연탄불에 의해 슬며시 지글거리는 시작하는 고기들의 냄새가 코로 올라오기 시작하니 이미 배고픈 상황에 위장이 요동쳤다. 갈매기살은 횡격막에 해당하는 부위다 보니 쫄깃쫄깃하고 꼬독거리는 식감을 가진 부위다, 꼬독거리는 식감을 더 증폭시키기 위해 근막을 일부러 남겨두는 곳도 있다. 적당히 기름지고 살코기도 충분히 있는 부위라 짙은 베이지색이 될 때까지 굽고서 한입을 입안으로 가져간다. 육즙이 투명하게 영글거리는 겉에 후춧가루가 넓게 박혀있다.


알맞게 구워진 갈매기살


쫄깃쫄깃


꼬독꼬독


부드럽게 탱글거리는 고기의 식감이 치아에 닿으면서 씹히고, 고기에서는 온천수처럼 끓어오른 따뜻한 육즙이 '펑'하고 폭발하듯 새어 나온다. 진하고 고소한 돼지의 육즙이 입안 가득 덮쳐온다, 육즙의 홍수다, 어떠한 치아와 혀도 빠져나갈 수 없다.


"와, 얼른 먹어봐, 빨리."


갈매기살의 육즙과 식감이 훌륭하다


맛있는 것을 먹을 때 나오는 나의 반응 중 하나인 '음식에 삿대질'이 나오며 내가 고개를 미친 듯 끄덕이자 이쁜 여자는 확신의 젓가락질로 완벽하게 익은 갈매기살을 먹는다.


"진짜 고소하고 촉촉하네. 식감도 좋아."


아무리 시장이 반찬이라지만, 정말 맛있는 음식은 시장이라는 반찬이 없어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그것이 딱, 할매곱창에서의 우리였다.


"쫄깃한 식감의 육질을 씹을 때마다 육즙이 터져, 갈매기살이 원래 이렇게 맛있는 거였나?"


"내가 이전에 먹었을 때에도 이렇게까지는 아니었던 것 같아."


사실 나는 고깃집에 대한 글은 잘 쓰지 않는다, 양념된 고기를 그리 좋아하는 편이 아니기도 하고 생고기를 굽는 식당의 경우 식당주인의 요리실력보다는 어디서 고기를 가져오는지에 따라서 맛이 달라진다고 생각하기 때문에(좋은 생산지에서 좋은 고기를 선별해서 가져오는 것도 실력이라고 하신다면 할 말은 없다, 당신 말이 맞다). 여하튼, 고기는 아무 조미를 하지 않아도 구우면 맛있는 것이지 않는가. 하지만 할매곱창에서 먹고 있는 갈매기살은 분명히 후추와 소금 등으로 전처리가 되어서 나왔고 잡내도 하나 없는 맛이었기 때문에 나는 이것을 단순한 고기구이가 아닌 요리사의 손을 거친, 할매곱창만의 요리법이 적용된 요리로 인정하기로 했다.


'돼지고기가 이렇게 맛있다고? 갈매기살이? 평소에 먹는 삼겹살이나 수육도 이렇게 맛있었지는 않았어. 연탄에 직화로 먹어서 그런가? 아닌데, 숯불로 돼지고기를 구워 먹었을 때에도 이 정도까지는 아니었어.'


나와 이쁜 여자가 쫄깃하며 촉촉하고, 고소한 육즙을 끊임없이 내뿜는 갈매기살에 빠져 먹다 보니 전채요리처럼 주문한 갈매기살은 금방 동이 나버렸다. 그렇다면, 이제 할매곱창의 대표메뉴인 양념곱창을 맛볼 차례인 것이지.


초벌 되어 나온 양념곱창을 보니 곱창만 있는 것이 아니라 나팔관, 대창, 막창, 신장, 간 등 돼지부속부위가 함께 양념이 되어있었다. 이전에 서울 불광동에서 맛 좋은 돼지부속 구이를 먹어본 경험이 있던 나는 이 여러 돼지부속을 보고서 느낌이 좋았다. 갈매기살로 보아서 전처리하는 실력이 매우 좋은 식당인데, 이 부속들도 전처리가 잘되어있었을 것이 분명하니까.


"양념이 묻어서 금방 탈 것 같으니 조심해서 구워야겠네."


"철망 위에 볶듯이 굴려야겠어."


양념곱창은 굽기 편하게, 초벌이 되어 나온다


나는 초벌 된 양념곱창의 반을 덜어 연탄이 아직 이글거리고 있는 석쇠 위에 가능한 평평하게 넓혀서 굽기 시작했다. 양념이 묻어있는 고기라서 자칫 신경 쓰지 않으면 금방 검정숯처럼 타기 십상이다, 양념고기라는 녀석들은. 양념은 고추장과 설탕으로 주로 이루어져 있는지 부속들은 구워지면서 달콤함과 매콤함이 섞인 냄새로 연탄불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기대가 되는 향기다.


양념곱창에 조금씩 그을음이 묻어 나오기 시작했을 때, 나는 선언했다.


"이제 먹자, 얼른."


"오, 예!"


연탄 주변에서 불을 쬐고 있는 부속의 모습이다


다 익은 부속들은 석쇠의 가장자리로 옮기고 가운데에 다시 초벌 된 양념부속들을 넣어서 평평하게 펴준다. 그리고 다 익은 부속들을 한 젓가락 집어서 다른 세계로의 경험을 재촉한다.


"와, 양념의 감칠맛이 엄청나네."


"맞아, 매콤 달콤한 게 익숙한 맛인데 계속 끄는 맛이 있어."


부속에 비는 곳이 없이, 양념이 묻어있다


쫄깃한 부속을 씹으면 그와 함께 육즙과 양념이 흘러나오는데, 달착지근한 (많이 달지 않다) 맛과 뭉근한 고추장의 찰기 섞인 매콤함이 혀를 휘감는다. 그리고 부속이라 튼튼한 식감을 갖고 있기에, 계속 쫄깃쫄깃 씹다 보면 부속에 묻은 양념의 맛이 끊어지지 않고 계속 나온다. 달콤하면서 매콤한데 그 맛이 과하지 않다, 하지만 그 풍미가 계속 혀와 입안에 남아서 입과 혀를 끌어당긴다. 양념의 맛과 부속의 육즙이 조화를 이루어 미묘한 감칠맛이 입안의 침에 섞여 들어오니 삼키고 싶지 않은 맛이다, 그 미묘한 감칠맛을 계속 즐기고 싶었다.


"이거 술 드시는 분들은 술을 열댓 병 마실 맛인데."


"그러게, 내가 운전하지만 않았어도 술 한 잔 했을 거야."


육질을 씹을 때에 나오는 매콤 달콤한 그 감칠맛이, 씹어 삼키고 나면 깔끔하게 입안에서 사라진다, 고추장의 약간의 텁텁함만을 남긴 채. 부속 중에서도 제일 맛있는 부위는 곱창이었다.


곱창 속이 비어보이지만, 씹으면 무슨 맛일까?


"곱창 안에 곱이랑 들어있는 이 양념 좀 봐."


"붉은색으로 가득 찼네."


다른 부속부위보다도 곱창이 우리에게 인기 부위였는데, 야들야들한 식감 안에 감칠맛이 가득 담겨 있어서 마치 맛있는 해물탕 안에서 국물을 잔뜩 머금은 미더덕을 먹는 기분이었다. 곱창 외에 다른 부위가 쫄깃한 식감과 양념을 슬금슬금 흘리고 가는 느낌이라면, 곱창은 한번 씹을 때마다 양념이 곱과 함께 왈칵! 하고 쏟아져 나오니 이전에 내가 먹던 양념곱창은 대체 뭐였나 싶다. 일반적인 바비큐가 아니라 연탄에 구워서 더 맛있는 것인지, 아니면 양념이 잘 되어서 맛있는 것인지 나는 알 수 없지만 양념곱창이 나를 이리 황홀하게 만들 줄 누가 알았을까.


"나는 조금 부족한데, 막국수 하나 먹을까?"


"그러자, 나도 먹을래."


우리는 매우 배가 고팠던 터라 고기들을 다 구워 먹고도 아직 위에 자리가 남아 막국수까지 끝내기로 했다. 내가 안으로 들어가서 막국수를 주문하고 나서 얼마 안 있어 식당 뒤에서


퍽! 퍽! 퍽!


단단한 금속도구로 무언가를 때리는 소리가 가게 앞까지 들려온다.


"뭐지? 저 소리 들려?"


"응, 아까부터 들리네."


"북어라도 패는 건가?"


"여기 고깃집인데?"


"사장님들이 북엇국 끓여 먹을 수도 있잖아."


막국수를 기다리며 이쁜 여자와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니 막국수가 나온다. 면발이 시커멓고 얇은 것이 우리가 아는 막국수가 아니다, 이름은 막국수지만 면발은 함흥냉면 면발이다. 그리고,


살얼음으로 가득찬 할매곱창 막국수(?)


"하하, 아까 그 뭐 때리던 소리가 이거였나 봐."


투명한 막국수 육수에는 살얼음과 부드러운 얼음 덩어리가 가득했다, 그렇다, 식당 뒤편에서 들리던 그 소리는 얼어있던 막국수(?)의 육수를 깨는 소리였던 것이다. 선 고기 후 냉면은 맛있을 수밖에 없는 법칙인데, 냉면 육수에 살얼음까지 둥둥 띄워져 있다? 이건 못 참지.


막국수 육수에 냉면사리는 생각보다 잘 어울린다


막국수를 주문했는데 면발은 냉면 면발이라서 조금 당황했지만 시원하고 달달한 육수를 들이켜니 모든 것이 용서가 된다. 면 위에 올라가는 양념도 직접 만드신 것인지 기성품인지 알 수 없지만 (왠지 직접 만드셨을 것 같은데...) 육수와 함께 섞이니 약간의 신맛과 시원한 달콤함이 식사의 마무리를 깔끔하게 지어준다. '막국수'까지 들이키면서 할매곱창에서의 식사를 마무리 지은 후 이쁜 여자와 함께 강릉으로 돌아오는 길,


"와, 이번 태백 방문 이후로 태백에는 또 올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래?"


"어, 근데 이제 태백에 다시 와야 할 이유가 생겼네."


"그렇지? 할매곱창의 양념곱창이 한동안 생각날 것 같아."


"그래, 나중에 태백에 또 와서 하루 자면서 할매곱창 또 오자. 저 양념곱창이 매력적이야."


"태백에 자연휴양림에 숙소도 있고 하던데, 거기 갈까?"


"그래, 거기 하루에 얼만데?"


"어디 보자...."


태백에 다시는 갈 일이 굳이 없을 거라고 단언했던 우리였지만, 할매곱창을 경험한 우리는 다시 태백에 언제 와서 어디서 묵을지 계획 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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