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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동궁염소탕, 강릉

탱글거리고 쫄깃한 식감, 이렇게 맛있을 줄 알았으면 특으로 시킬걸.

by 김고로

언제부터인가 기하급수적으로 둘레를 넓혀가는 나의 복부와 허리 부분을 보며, 나는 맛있는 식사를 이어가는 삶을 어떻게 하면 지속할 수 있을까 하는 고민을 하기 시작했다. 별 거 있나, 덜 먹고 더 많이 운동하는 것뿐. 최근 유행한다는 8주짜리 식단과 운동메뉴에 대한 책을 사서 따라 하기 시작했고, 내가 안 보이기 시작하면 이 사람이 살았는지 죽었는지, 왜 잘 오던 사람이 안 오는지 걱정을 하실 주변의 수많은 단골 식당과 카페 사장님들께는 이제 다이어트와 식단을 시작하니 잘 안 보이시더라도 걱정하지 마시라는 SNS 통보를 게시했다.


여기저기 오며 가며 얼굴을 잘 비추고 잘 사 먹던 터라 이렇게라도 알려서 다이어트가 끝나고 나면 나중에 들리겠다는 얘기를 하는 것이다, 이제는 '이웃'이 돼버린 사이이니 이렇게라도 하는 것이 서로를 위한 도리가 아니겠는가. 아무리 손님과 사장님 사이이지만 '사람 대 사람'으로의 관계가 쌓인 후에는 서로에 대해 관심을 갖고 걱정을 해주기 마련이니.


식단에 본격적으로 돌입하기 전에 나는 나만의 미식과 몸보신을 위하여 강릉에서 보신 음식으로는 대표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염소탕 집으로 갈 마음을 먹었다. '동궁염소탕'이라 하면 강릉에서 '염소탕'으로 굉장히 이름이 있는 노포 터줏대감 중 하나이다. 나도 그 명성만을 들어봤지 실제로 가본 적은 없는지라 염소고기의 맛이 궁금하기도 하여 시내에 자리 잡은 분점으로 자전거를 끌고 달렸다.


분점도 그리 규모가 작은 편이 아니라서 통으로 된 여닫이 문을 활짝 열고 들어가 앉으니 각 테이블이나 미닫이문으로 칸이 나뉜 방 안에서 각각 전골이나 탕을 드시고 계신 분들은 예상대로 어르신들이나 50대 이상의 분들이 많아 보였다. 토요일이지만 건설현장에서 육체노동으로 피곤한 몸을 이끌고 와서 뜨끈한 염소고깃국에 소주 한잔을 기울이시며 쉬는 시간을 보내고 계신 분들부터 해서 두런두런 즐거운 담소를 나누며 염소탕을 즐기고 계신 어르신분들 사이로 비교적 나이가 젊은 내가 앉아서 염소탕을 주문하려니 내가 못 올 곳을 온 것도 아닌데 괜히 기분이 이상하다. 하지만 맛있는 음식 먹으러 왔는데, 그게 무슨 상관이랴, 메뉴판부터 쳐다본다.


기본적인 염소탕부터 해서 염소의 갈빗살만을 먹을 수 있는 전골, 그리고 수육 메뉴까지 있지만 나는 소규모로 왔기 때문에 기본적인 염소탕만을 주문한다. 마음 같아서는 고기를 더 먹을 수 있는 특을 시키고 싶었지만 명심해야 했다, 나는 식단 중이라는 것을. 자기 자신의 마음을 다스리고 일반 염소탕을 주문했다.


강릉 동궁염소탕 염소 보신.jpg 기본적인 김치와 마늘장아찌, 김치, 매운 고추와 염소고기를 찍어먹기 위한 양념장이 나온다

양념장이 나왔는데 고소하고 진한 들기름 향이 확 올라온다, 양념장을 젓가락으로 슥슥 저어서 냄새를 맡아보니 달콤한 찰진 맛은 올라오지 않는 것으로 보아 고추장이 들어가기보다는 된장, 고춧가루가 주된 재료로 사용된 양념장으로 생각이 된다. 맛이 어떤지 궁금해서 젓가락에 양념장을 잔뜩 묻혀서 입으로 가져가본다. 아주 약간의 텁텁함과 매콤함, 그리고 들깨의 강한 고소함이 코로 확 올라온다, 양념장의 붉은색만큼 강한 매운맛이 없다, 거기에 쌈장과 비슷한 색깔이라고 생각했는데 달콤한 맛도 나지 않는다. 약간의 매콤함과 텁텁함과 고소함, 혹시 염소고기에 남아 있을지도 모르는 잡내를 잡기 위한 양념장인가 보다.

강릉 동궁염소탕 염소 보신 2.jpg 쌈장과 같은 색에 들깨와 들기름이 가득 들어간 염소탕 양념장

그리고 곧이어 가게의 사장님께서 3칸짜리 식당용 카트를 드르륵 밀고 오시며 커다란 뚝배기에 담긴 염소탕을 가져다주신다. 고소하고 짭짤한 냄새, 뚝배기를 받아보니 황톳빛의 된장육수에 올라간 고기와 부추, 가지런히 누워있는 팽이버섯 고명. 된장육수에도 들깨가 많이 들었다. 염소고기가 아무래도 독특한 냄새를 갖고 있는 고기이다 보니 들깨와 부추, 된장을 비롯한 양념과 향신료들로 맛을 내는 것은 한국에서 볼 수 있는 보신용 음식과 같다.


내가 염소고기를 처음 먹었던 것은 호주 유학 시절, 인도식 마살라 가게에서 염소갈비 마살라를 먹었던 것인데 당시에는 인도식 향신료로 맛을 낸 마살라에 들어있던 염소고기라서 잡내라는 것은 하나도 느끼지 못했고 굉장히 쫄깃하고 부드러운 고기라는 식감을 즐기며 식사를 했던 기억이 있다. 당시에 식당의 인도 사람들은 염소젖을 발효시켜 만든 요거트 음료를 기본적으로 마셨는데, 굉장히 시고 짠맛이라 같이 갔던 한국 사람들 중에서는 나만 그 염소젖 요거트 음료를 서너 컵 마셨었다. 그 음료도 '라씨'라고 불렀기에 그 이후로 같은 이름을 가진 음료를 경험할 때면 항상 그때의 그 염소마살라와 식당의 생각이 난다.


강릉 동궁염소탕 염소 보신 1.jpg 겉보기에는 부추와 돼지고기가 들어간 국밥처럼 보인다, 하지만 비계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걸.

국물을 먼저 맛본다, 염소고기로 맛을 낸 육수는 어떠한 맛인가 싶다.


후룩


들깨와 된장육수로 인하여 극강의 고소한 맛이 먼저 혀에 닿고 그 뒤로 염소고기의 육즙이 들어간 것인지, 깊고 진하지만 가벼운 맛이 느껴진다. 염소고기라고 해서 양고기와 비슷한 느낌이려나 싶었지만 양고기와는 전혀 다른 맛이다, 진하고 깊다. 그래서 국물이나 고기에서 특유의 냄새가 날 것이라는 편견을 한 번에 깨버린다.


'생각보다, 가볍네? 그리고 깊어.'


강릉 동궁염소탕 염소 보신 3.jpg 탕에는 살코기와 비계가 함께 들어있다.

탕을 살짝 뒤적이면 고기와 비계가 함께 들어있으니 각각의 맛이 궁금하다. 탱글거리다 못해 찰랑거리는 비계를 젓가락으로 잡고 양념장을 슥슥 비벼서 입으로 가져가본다.


'비계는 어떤 맛이려나.'


말캉말캉


쫄깃하고 질긴 맛이 있을 거라고 예상했지만 젓가락에서도 덜렁거린 것만큼 입안에서도 쉽고 부드럽게 씹힌다, 그렇다고 해서 뚝뚝 끊어지는 식감도 아니다. 부드럽고 쫄깃한 식감을 유지하면서 치아 사이에서 걸리적거리지 않고 기분 좋게 씹힌다. 비계 쪽이라서 그런지 고소하고 기름진 맛도 새어 나오면서 씹는 매력이 좋다.


'비계와 껍질이 이렇게 맛이 좋다면 살코기는 당연히 맛있지 않을까, 아니면 반대로 조금 뻑뻑하려나'


강릉 동궁염소탕 염소 보신 4.jpg 눈으로 봐도 탱글탱글하고 매끈거린다

탕에 함께 있는 부추와 고기를 함께 국물과 떠서 입으로 가져가본다, 양념장을 찍어서 먹기 전에 고기 자체의 맛을 보고 싶어서이다.


쫄깃쫄깃


'고기가 튕기는 것처럼 쫄깃하고 말랑해'


살코기라고 하면 부드럽거나 뻑뻑한 질감이 있을 것을 기대했는데, 말랑말랑하고 쫄깃하며 입안에서 튕기는 맛이 있다. 얼마나 쫄깃하고 탄력이 있는지 씹을 때마다 고기가 치아 사이로 튕겨 올라온다. 적어도 내가 여태껏 먹어본 고기들 중에서 복어와 버금갈 정도로 쫄깃함과 씹는 맛이 훌륭한 고기다. 잡내가 있냐고 물어본다면 전처리가 워낙 잘 되어 나와서 군내가 하나도 없다. 그리고 그 탱글거리는 고깃결 사이로 머금은 육수가 혀로 새어 나오니 와, 염소고기가 이 정도로 맛있을 거라고 예상 못 했는데.


강릉 동궁염소탕 염소 보신 5.jpg 부추와 파를 함께 올려서 입안 가득 넣어본다

부추를 가득 올려서 고기와 함께 씹어본다, 쫄깃함이 끊어지지 않는 식감 사이로 고소한 들깨와 된장의 짭짤함이 올라오고 마무리는 사각거리는 부추의 식감과 약간의 알싸함이 더해진 향으로 깔끔하게 마무리... 가 아니고 사각거리는 부추 사이로 계속 씹히는 탱글거리는 염소고기의 진한 맛과 고소함이 끝나지 않아서 입안에서 계속 씹고 싶지만 결국에는 식도로 삼켜야 하는 것이 운명. 아, 목으로 넘기기 아쉬운 맛이다.


맛있는 고기는 맛있는 양념을 만나면 더 맛있어지는 것이 사실, 이 고기를 찍어먹기 위해서 준비된 양념장에 고기와 부추를 함께 집어 휙휙 휘저어 양념을 묻힌다. 너무 많이 묻히고 싶지는 않다, 겉면에 넓게 묻혀서 고기의 맛과 조화를 이룰 만큼만 고기에 얹는다.


강릉 동궁염소탕 염소 보신 6.jpg 양념장, 살코기, 부추, 삼합.

고소함과 들깨의 향과 매콤함이 쫄깃한 고기들 사이로 진한 육즙과 함께 씹히고 아삭거리는 부추의 식감과 풍미가 지루해질 수 있는 양념장과 고기의 맛을 감싸 안는다. 와, 양념장은 역시 양념장인가. 염소탕이 이렇게 맛있을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고기가 더 많이 들어간 '특' 염소탕을 주문할 걸 그랬다. 괜히 '특' 사이즈가 있는 게 아닐 텐데, 나의 모자란 판단력과 예측이 상당히 아쉬운 날이다. 존경하는 '백' 선생님이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서 항상 '아, 두 개 시킬걸' '아, 곱빼기 시킬걸'하는 후회가 나에게도 몰려오는 것이다.


혹시나 해서 먹으러 간 염소탕 집이었고, 다음부터는 무조건 '특 염소탕'을 주문하겠다는 다짐을 했고, 여러 명이서 온다면 수육이나 갈빗살 전골도 먹어봐야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일반적인 고기가 이렇게 맛있다면 갈빗살은 또 어떤 식감이려나. 다음 마음껏 먹는 날이 오는 것을 기다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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