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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일기] 홍제맨션, 강릉

골목 속의 쉼, 나만 알고 싶은 달콤함

by 김고로

사이폰 커피에 대해서 들어봤는가? 위, 아래로 배치된 유리 플라스크의 증기압과 중력 차이를 이용해 원두를 우려내는 커피이다. 평소 커피에 대해서 많이 관심이 없으신 분들이라면 잘 모르실 텐데, 나는 강릉에서 이 사이폰커피를 잘, 그리고 유일하게 취급하는 '홍제맨션'이 내가 사랑하는 단골 카페들 중 하나이다.

이전 미식일기 글들을 읽어온 독자들이라면, 내가 몇 번 언급을 많이 해서 이미 알겠지만, 나는 생각보다 커피를 매우 좋아한다. 에스프레소 콘파냐로 커피의 세계에 입문을 해서, 절친한 친구인 바리스타 곰군에 의해 드립커피의 세계로 건너와서는, 요즘은 에스프레소의 세계에서 매주 한, 두 번은 시간을 보내고는 한다. 그리고 그 사이사이에 나는 홍제맨션에 와서 사이폰 커피를 곧잘 마신다.


'홍제맨션'이라는 이름처럼 강릉의 홍제동이라는 곳에 위치한 이 조용한 카페는 필자가 사는 집에서 거리가 꽤 있고 홍제동 골목 구석에 자리 잡은 한적한 곳이라 오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내가 굳이 시간을 들여 발걸음을 하는 것에는 이유가 있지 않겠는가. 어떠한 그 누구도 아무런 이유 없이 굳이 식당이나 카페의 단골손님이 되지는 않는다.


강릉에서 차들이 제일 많이 오가는 곳 중 하나인 강릉터미널 앞 오거리에서 아파트들이 대나무밭처럼 빽빽하게 자리 잡고 있는 홍제동 깊숙한 골목으로 길을 따라서 들어가면 '여기가 맞나?' 싶을 정도로 사람 그림자와 길고양이가 몇 마리 겨우 보일 정도의 골목 안에 벽돌로 지어진 어느 가정집. 그 가정집 안에서, 마침 구수하며 향긋한 커피 원두 볶는 냄새가 살랑거리면서 날아온다.


내가 이쁜 여자와 이곳을 처음 왔던 때는 밝은 해가 내리쬐지만 시원한 바람이 잠시 오갈 정도로 여유가 있었던 어느 여름날이었다. 홍제맨션의 고동색 벽돌들이 차곡차곡 쌓여 만든 대문에 들어서니 발코니 앞 가지런히 자라고 있는 오죽(烏竹)들이 바람에 따라 흔들거리면서 자기들끼리 수군거리듯, 사각거리는 소리를 낸다. 통유리와 낡은 스테인리스 창문으로 이루어진 창가에 통원목과 남은 시멘트 자재로 만들어진 작은 바, 그리고 청잔에는 손님들의 휴식을 밝혀주는 작은 별빛과 같은 등불.


'저기 앉아서 글을 쓰면 딱 좋겠군'


"저기 앉자."


나는 홍제맨션의 두껍고 어두운, 그 가운데에는 불투명한 유리로 가려진 7~80년대 단독주택에서 곧잘 볼만한 문을 열고 들어간다. 한눈에 들어오는 사이폰커피를 내리는 플라스크들과 유리로 된 진열장, 그리고 홀 가운데 놓인 볶은 원두들. 커피를 파는 것만이 아닌 직접 로스팅한 원두도 판매한다는 것을 보아서 이곳도 여느 강릉 카페들과 마찬가지로 참 커피에 진심이구나 하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홀에서 안쪽으로 들어가면 조용하고 침침한 환경을 좋아하는 사람들을 위한 작은 방과, 반층을 내려가면 영화에 나오는 어느 비밀방에 나오는 것처럼 아늑한 거실과 같은 공간, 거기에 바깥을 여유롭게 감상하며 커피를 마실 수 있는 통유리를 바라보며 앉을 수 있는 안방과도 같은 공간이 손님을 위한 곳이다.


홀 옆에 작게 나있는 작은 방안에는 커다란 로스팅 기계가 묵묵히 앉아있고, 가게 밖에 있는 뒷마당으로 나가면 날 좋을 때에 광합성을 하며 음료와 디저트를 즐길 수 있는 녹색 페인트 바닥의 마당과 큰 파라솔과 테이블들이 당신을 반긴다.


"어서 오세요~"


나긋하고 친절한 어투로 홍제맨션의 바리스타님께서 나와 이쁜 여자를 맞이한다. 어느 누구에게나 한결같이 친절한 분이셔서, 이미 들어올 때부터 기분이 한결 좋아지는 곳이다. 잠잠하며 아늑하고 집과 같이 편안한 분위기의 카페라는 곳이 내가 생각하는 홍제맨션의 최대 장점이지 않는가 싶다.


"오늘은... 예가체프에 과테말라요. 테린느도 하나 주시겠어요?"


"네~ 곧 준비해 드릴게요~"


손님이 원하는 바에 따라서 샷에 물을 넣거나, 차갑게 드립을 내리거나, 사이폰 방식으로 커피를 마실 수 있지만 이왕 홍제맨션에 왔으니 나는 사이폰 방식의 커피를 마시는 것을 선호한다.

흥미롭게 생긴 과학기구를 닮은 사이폰기구에 드립잔이 함께 이쁜 여자와 나의 앞으로 도착한다.


"사이폰 커피는 여기 손잡이를 잡으시고 잔에 따라 드시면 되어요~"


처음 보는 기구가 익숙지 않을 손님들을 위해서 사이폰 커피를 어떻게 따라 마셔야 하는지 항상 부가 설명은 무료다. 사이폰 커피를 따라 마시다가 슬픈 일을 겪은 손님들이 많아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런 설명은 누구에게나 필요한 법이다.

사이폰 커피와 드립 커피에 대체 맛의 무슨 차이가 있냐고 물어본다면, 둘 다 물에서 원두를 우려냈다는 점에서는 큰 차이가 없다. 하지만 맛이나 질감에서 미묘한 차이가 있는데, 드립커피의 경우 바리스타마다 물을 필터에 어떻게 내리느냐에 따라서 커피의 질감과 농도가 많이 달라지고, 대체로 농도가 짙은 편이다. 쉽게 얘기하자면 커피가 '진하게' 내려지고 각 원두의 개성이 제법 강하게 표현된다.


사이폰 커피의 경우 커피를 내리는 방식이 정형화되어있고 바리스타가 어떻게 물을 내리느냐는 중요치 않다, 방법이 정해진 기구에 물을 넣고 끓여서 열과 증기압을 통해서 일률적으로 커피 원두가 추출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이 직접 내리는 드립 커피에 비해서 농도가 옅고 비교적 가볍다, 각 원두의 개성이 강하게 표현되지는 않지만 항상 깔끔하고 무난한 맛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에 싱글 오리진에 처음 입문하는 분들이나 어디서나 무난하고 깔끔한 커피를 원하시는 분들에게 접근성이 높다. 커피 전문가분들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는 모르겠지만, 여기까지가 나의 드립과 사이폰의 차이에 대한 의견이다. 개인적으로는 커피에 처음 입문하시는 분들에게는 사이폰 커피를 더 추천드리고 싶다, 드립 커피는 워낙 바리스타의 실력에 맛이 달라지는 커피인지라 카페를 잘 찾아가야 하기 때문에. 첫 경험이 좋아야 그 이후로도 계속 원두커피를 찾지 않겠는가.

강릉의 경우 드립커피를 잘하는 카페도 많고, 사이폰 커피를 하는 홍제맨션도 있어서 자유로운 선택의 폭을 보유한 도시라고 얘기할 수 있겠다.


"테린느 드릴게요~"


검은색 석판 그릇에 말차 파운드케이크를 닮은 말차 테린느가 나온다.

"내가 여기 테린느를 참 좋아하지"


"그런데 강릉에서 테린느를 하는 곳이 여기 말고 또 있나?"


"글쎄, 포남동 카페거리에 가면 있을지도? 안 찾아봐서 잘을 모르겠어."


내가 아는 지식 상으로는 강릉에서 테린느를 하는 곳은 홍제맨션이 유일하다. 다른 멀리 있는 동네로 카페원정을 가지는 않기 때문에 잘 모르겠지만, 여하튼 그렇다. 테린느가 뭐냐고 물으신다면 케이크와 반죽 사이의 질감을 가진 케이크이다. 원래 테린느는 도자기로 만들어진 '테린느' 틀에 고기나 생선을 채워 놓고 오븐에 구워 먹는 음식이었다고 하는데 일본의 어느 카페에서 테린느라는 지금 우리가 보는 형태의 디저트를 처음 만들어내었다고 한다. 육안으로 볼 때에는 넓고 촉촉한 파운드케이크를 닮았지만 실제로 썰어서 먹어보면 식감이 매우 독특하다.


말차가루가 듬뿍 들어가서 입안에 들어가면 말차향을 폭탄처럼 뻥하고 터뜨리는데, 씹으면 씹을수록 매우 부드럽고 입에서 녹아내리는 두부와 같은 식감이다, 쫀득거리기도 하며 치아 사이와 입천장과 혀 사이에 찐득하게 눌어붙는 것 같지만 질척거리지는 않는 미묘한 식감, 그리고 그 사이에서 유지방의 고소함과 말차의 텁텁함, 당분의 끈적이는 달콤함이 입안 전체에서 유분이 많이 들어간 젤라토 아이스크림처럼 사르륵 녹아내린다.


"테린느를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건데, 가열하지 않은 쿠키 반죽을 생으로 먹는 느낌이야"


"근데 맛있어"


이쁜 여자와 나는 포크 사이에 들러붙어서 끈적끈적하게 잘라지고 있는 테린느를 다시 들어 올려 입으로 가져간다.

질척거리는 말차 테린느의 달콤함이 입천장과 혀를 통해서 미뢰신경을 타고 뇌로 흘러간다, 혀를 귀찮게 하는 식감과 당분을 통해서 머릿속에 환한 전구가 켜지는 느낌이다. 질척거리는 식감만큼 입안에 짙고 강한 잔여감을 남기는 것이 테린느다, 달달함과 텁텁함이 한 곳에 어울려 사라지지 않고 미적거리고 있는데 그게 밉지 않아서 쫓아내고 싶지 않다. 굳이 쫓아내고 싶다면 함께 주문한 사이폰 커피 한잔으로 휙 씻어내면 그만이다. 테린느에 곁들여서 나오는 강릉에서 나고 자란 딸기 조각을 서걱서걱 씹어먹어도 완벽한 마무리다.


"테린느는 맛이 좀 어떠세요?"


우리가 방문한 시간이 홍제맨션에는 손님이 잘 없을 시간이라서 그런지 바에서 이런저런 일을 하시던 바리스타님께서 우리의 안부를 잠시 물으신다.


"찰떡같은 맛이 입안에 착 달라붙네요."


"좋은 말씀 감사해요"


좋은 의도를 가진 질문에는 친절한 대답으로 돌려드리는 것이 인지상정. 사장님들과의 대화를 즐기는 나로서는 이러한 기분 좋은 대화는 환영이다.


맛있는 테린느가 바닥에 조금 눌어붙은 것도 아까워 포크로 싹싹 긁어먹은 우리는 커피 한잔을 더 주문하면서 조금 더 홍제맨션에서 시간을 보내기로 한다. 날이 좋아서 창문을 넓게 열어놓은 터라서 뺨과 머리카락을 시원한 바람이 간지럽히며 지나간다.


"밖에 나가볼까, 아까 뒷마당이 괜찮던데"


"그래."


마침 홍제맨션에 와서 하려고 했던 작업을 다 했던 터라 나와 이쁜 여자는 볕이 따뜻한 뒷마당에 있는 작은 의자와 테이블에 앉아서 커피를 마신다. 따뜻한 햇빛, 시원한 바람, 그리고 여유로운 시간의 카페. 휴일에 휴식 시간을 보내기에는 딱 좋은 환경이다. 이따금 들리는 홍제맨션 어딘가에 달려있는 풍등 소리나 대나무의 사각거리는 소리, 그리고 동네 길고양이들이 근처에서 살포시 뛰어다니는 모습마저 홍제맨션이 담고 있는 쉼의 시간이다.

바쁜 도심에서, 빛과 바람만이 흘러가는 쉼의 시간을 원한다면, 홍제맨션에서 사이폰커피와 함께 잠시 달콤한 휴식을 갖는 것은 어떤가 싶다. 내가 이쁜 여자와 함께 그러는 것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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