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아내리는 닭한마리와 실한 전복이 있었는데요, 입에 들어가니 없었습니다.
그날은, 날이 후덥지근하니, 여름날의 햇살에 몸이 푹 젖어들어가려다가 오후에 불어오는 시원한 바람에 마음을 놓고 푹 쉬다가 동네 산책 한 바퀴를 하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던, 그런 여름이었다.
이쁜 여자가 일을 하고 있던 갤러리샵 오어즈(Oars)의 부부이신 '훔'과 '경' 부부의 저녁식사 초대를 받아 석양이 핑크빛으로 내려가던 하늘을 등지고 우리는 송정으로 향했다. 평소에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내가 유난히 음식에 관심이 많고 브런치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에 본인들이 알고 있는 제법 괜찮은 집으로 함께 가자며 나와 이쁜 여자를 이끌었다.
주변의 많은 사람들이 오해할 법한 것이, 내가 미식가인양 행세를 한다고 해서 어느 음식에나 꽤 날카롭게 비판하거나 까다로울 거라고 생각하시는데, 전혀 아니올시다. 나는 생각보다 남이 요리를 해주거나 대접해 주는 식사에 매우 관대하다. 내가 까다로운 음식은 내가 내 시간과 돈을 들여서 사 먹는 음식이나, 내가 직접 요리하는 내 음식에 나는 관대하지 못하다. 남이 요리를 해줄 때에는, 요리를 해주는 사람의 성의와 진심이 담겨 있기에 좋은 얘기만 해주는 것이 옳은 것이며, 남이 사주거나 대접해 주는 요리를 먹을 때에도 그 사람이 나를 생각하여 금전과 시간을 투자해 주는 마음씨에 감사를 해야 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다. 물론, 상대방이 당황할만한 상황이 발생하지 않게 하기 위하여 사전에 미리 내가 어떠한 식재료와 방식을 못 먹는지 언질을 주는 편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위와 같은 나의 미식 기준을 잘 모르기 때문에, 초대라거나 음식을 고르는 것은 쉽지 않아 한다. 그래서 내가 주로 사람들을 많이 초대하는 편이며, 저녁 약속 식사를 잡을 때에도 메뉴는 내가 고르는 편이다. 오히려, 뚜렷한 주관이 있는 사람이 상대방과 (무장을 해제한 후) 협의를 통하여 메뉴를 결정하는 것이 효율적인 것이다. 그날의 오어즈 부부의 초대는 협의가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이전에 있었던 사소한 대화들을 통해서 나와 이쁜 여자가 선호하는 것들을 알고 계셨기에 본인들이 알고 있던 식당들 중에서 훌륭하다고 생각하는 곳을 정하셨었다.
"comma님 삼계탕 좋아하세요?"
"삼계탕이요?"
훔님이 운을 띄우고, 옆에서 경님이 입을 여신다. 그녀는 부산 출신이기에 경상도 사투리 억양이 섞인 목소리, 강원도에서는 듣기 쉽지 않은 한국어가 들려왔다.
"송정에~ 유명한 전복삼계탕 집이 있는데 진짜 맛있거든요~ 여기 사장님이 부산에 가족분들이 있으신지 부산에 분점들이 있어요~"
"호오, 그거 흥미롭네요."
'송정'이라는 지명은 강릉에도 있고 부산에도 있는 지명이다. 강릉의 송정동도 해수욕장이 있고, 부산의 송정동도 해수욕장이 있다. 그러한 점에서 강릉의 송정동에 위치한 이 전복삼계탕 집이 강릉이 본점이지만 부산에 분점들이 있다는 것이 재미있다고 생각했다.
"저희한테는 굉장히 맛이 좋고 닭도 괜찮은데 comma님 입맛에는 맞으실지 모르겠네요."
"훔님한테 맛이 좋으면 저한테도 맛있겠죠, 하하."
버스를 타고서 가려고 한다면 꽤나 멀게 느껴지는 송정동이지만 자가용을 탔을 때는 15분이면 뚝딱하고 도착하는 동네가 송정동이다. 송정동은 울창한 해송(海松) 군락으로 유명한 송정해수욕장이 있는 동네인데, 해송 군락을 끼고서 안목까지 이어져있는 산책로가 강릉의 지역주민들과 관광객들도 자주 찾는 명소다. 실제로 송정해수욕장에 가면 산책을 하는 수많은 사람들을 볼 수 있다.
나와 이쁜 여자는 송정해수욕장으로 가는 길을 따라가며 조금씩 좁아지는 도로 옆, 깔끔하고 빽빽하게 지어진 어느 아파트단지의 상가 근처로 '김윤미전복삼계탕'이라는 누가 봐도 장사가 엄청 잘 되는 집으로 보이는 식당이 크게 자리 잡고 있었다. 왠지 모르게, 식당에 들어가면 옷은 곱게 차려입고 몸에는 금이나 보석으로 된 반짝반짝한 장신구와 액세서리를 많이 착용하신 여사장님을 뵐 수 있을 것 같은 느낌이 드는 그런 식당이었다.
자동문을 통해서 들어가니 나무와 격자 유리로 된 큰 미닫이문이 다시 수문장 역할을 하고 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굉장히 밝고 광활하다고 말할 만큼 넓은 실내에 오와 열을 맞춰서 각을 잡고 있는 의자와 탁자들. 그 중간에 교장선생님의 단상처럼 자리를 잡은 커다란 텔레비전과 스피커. 평소에 어느 정도 규모의 손님들을 감당하고 있는지 바로 알 수 있는 숫자의 테이블수였다. 우측에는 가게의 4~5분의 1 정도 넓이를 차지하는 큰 주방이 있었는데 주방의 천장에는 음식들의 큰 사진과 이름이 나열된 메뉴판이 박물관의 파노라마처럼 붙어있었다.
"뭘 드셔보시겠어요?"
"가장 대표적인 메뉴를 먹어야겠죠."
이쁜 여자와 나는 주인장이 이름을 걸고 요리해서 판매하는 전복삼계탕을 주문했다. 가게의 이름에 본인의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한다는 것은, 그만큼 자신의 모든 것을 걸고 훌륭한 제품을 판매하고 그만큼이나 큰 책임을 지면서 손님들에게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뜻이다, 대체로 우리가 아는 바는 그렇다. 하지만 나는 본인의 이름을 걸고 장사를 하면서도 생각보다 좋지 않고, 책임감도 없는 음식과 음식점을 경험해 본 적도 꽤 있는터라 이름을 걸고 장사한다고 하여 특별한 기대를 하지는 않았다. 정작 나를 기대하고 있었던 것은 '김윤미'선생님의 이름이 아니라 주방에서 스멀스멀, 내 코로 번져오고 있는 진한 전복내장과 진득한 삼계탕의 육수 냄새. 믿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직접 보고 경험하는 것이 최고이듯이, 음식에 진심인 사람들에게는 직접 먹어보는 것이 최고다. 오감으로 경험하는 음식의 풍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오어즈 부부분들과 우리는 잠시 자리에 앉아 김치와 깍두기를 직접 가져다 먹으며 음식에 대한 얘기나, 근황에 대한 얘기를 하기 시작했고 워낙 배가 고팠던 탓에 전복삼계탕이 상당히 늦게 나오는 기분이었지만 실제로 시계를 보니 나오는 시간이 늦지는 않았다.
드르르르륵
이윽고 홀에서 빠르게 음식을 나르는 선반카트의 소리가 들리며 모락모락 김이 끊임없이 피어오르는 전복삼계탕이 모습을 드러냈다, 내가 음식을 기다리며 맡았던 진득한 풍미에 어울리는 끈적거리는 국물에 풍미.
"와, 이건 맛이 없으면 이상하겠는데요."
식탁에 앉아있던 4인방은 각자의 삼계탕을 받자마자 함박웃음이 되어 코와 입을 음식에 들이대기 시작한다, 삼계탕과 전복이 우리들을 부담스러워하지 않기를 바라면서 말이다. 우리가 이미 얼굴을 뚝배기에 가져다 대기 전부터 고소하고 진한 닭육수의 냄새와 끈적거리는 바다의 향기를 풍기는 전복의 냄새가 눈앞에서 아른거린다.
너무나 궁금한 마음에 전복을 먼저 젓가락으로 집어 앞접시에 덜어놓는다. 젓가락으로 집을 때부터 완벽히 속살까지 함께 삶아진 전복은 푹신한 감촉과 젓가락이 튕겨 나올듯한 쫄깃함으로 앞접시에 톡, 살포시 떨어진다. 젓가락으로 한번 잡아보니 아무리 잘 삶아졌더라도 숟가락으로는 그 탄력을 이길 수가 없기에 가위를 사용해서 슥슥 전복을 잘라먹는다. 구운 전복이나 전복회는 곧잘 먹었지만 이렇게 부드럽게 (그것도 닭육수에) 삶아진 전복은 먹어본 적이 없다.
말캉말캉
잘 삶아진 전복이 갖고 있는 특유의 바다맛이 아직 뜨끈한 속살로부터 나와 입안에 살며시 번진다. 치아 사이에서 느껴지는 이 푹신하고 튕기듯이 탄력 있는 식감이 훌륭한 애피타이저 자격을 가졌다. 그리고 전복 안에서 잠들어있던 전복의 육즙이 씹을 때마다 함께 나오는 것이 기분 좋다, 전복의 육질이 입안에서 문드러지기 전까지 슬쩍 씹다가 위로 양보해 준다. 아무리 맛있어도 언젠가는 속에서 소화를 시켜야 온전히 내 것이 된다.
'전복을 다 먹어보았으니, 이제 육수와 닭을 즐겨볼 차례구나.'
나는 사실 전복의 맛보다도 (배가 고파서 전복을 먼저 먹긴 했지만) 국물이 맛이 훨씬 궁금했다. 전복삼계탕이라고 했지만 김윤미전복삼계탕의 국물은 우리가 아는 여느 삼계탕의 국물처럼 맑고 고우며 깔끔한 그런 국물이라기보다는 이미 찹쌀에 곱게 갈린 전복내장이 들어가 있어서 '전복 내장이 들어간 닭죽'과도 같은 국물이다. 뚝배기에 남아있는 열감으로 인하여, 용암이 부글부글 끓어오르듯이 아직 작은 기포들이 볼록 올라와서는 폭 터지면서 사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이 국물의 농도가 상당히 짙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농도가 짙다? 육수에 재료가 넘칠 정도로 가득 들어가서 졸여졌구나, 나는 그렇게 믿기로 했다.
'겁나 맛있겠다'
속으로 군침을 대여섯 번은 삼키고는 삼계탕을 한 숟갈 떠서 입안에 조심스럽게 넣어준다, 처음 만나는 친구들이라 내 수줍은 미뢰세포들이 부끄러움이 움츠러들지는 않을까 섬세한 접근을 시도하는 것이다.... 는 아니고, 부끄러움은 무슨 그냥 뚝배기가 아직까지 너무나 뜨겁기 때문이었다.
후루룩
가벼운 질감의 국물이 아니라서 긴 호흡으로 흡입을 하기는 어렵지만, 아무런 문제나 화상 없이 입안에 안착하는 닭죽. 처음에는 삼계탕에 들어간 참기름과 통깨의 견과류 같은 고소함이 먼저 입안을 감싸 안지만 그것은 이내 열과 압력으로 녹아내릴 정도로 익어버린 닭에서 빠져나와 육수로 도망친 닭육즙 포효로 바뀌었다. 닭죽을 입안에 밀어 넣어서 혀와 맞닿자마자 고소함이 먼저 펑 터지더니 깊은 닭육수의 감칠맛과 단백질의 고소함으로 연쇄다발적인 맛의 표현이 일어난다. 입안 곳곳에서 참고 있던 침샘의 방류가 일어나는 순간이었다.
"좀 어떠세요? 입에 맞으세요?"
입안에 전복삼계'죽'을 두어 숟갈정도 먹으면서 맛있음을 즐기고 있던 나에게 질문을 하시는 오어즈 부부분들, 나는 심각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맛있을 때 나오는 나의 검지손가락질과 함께.
"이곳은 제 글에 등장할 것입니다."
"와!"
사실 내가 쓰는 이런 글들이 뭐라고, 하지만, 그래도, 나라는 그리 대단치 않은 사람일지라도, 내가 본인들의 맛집을 만족스러워하고 좋아하는 것이 뿌듯하신 모습이었다. 그렇지 않은가? 내가 맛있어하고 좋아하는 식당에 다른 사람들을 처음 데려갔을 때 그들도 맛있어하고 나만큼이나 좋아한다면 그만큼 뿌듯한 순간이 없다. 자신이 만든 요리를 맛있게 먹고 엄지손가락을 척 들어 올리는 손님들의 모습을 보는 요리사만큼이나 기쁜 순간인 것이다.
삼계탕의 국물이 그만큼 맛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본격적으로 주 재료인 닭고기를 먹어봐야 한다. 사실 삼계탕에서 모든 것이 다 좋아도 닭살이 퍽퍽하고 수분이 없다면 그건 참 슬픈 일이니까. 젓가락으로 닭살을 살며시 찢어서 위로 올려본다.
주우우욱
어떠한 저항도 없이, 하지만 탄력은 잃지 않고 부드럽고 촉촉하게 찢어지는 닭의 등살과 가슴살, 애초에 퍽퍽할 거라고 예상하며 찔러본 부위인데 닭의 부위 중에서도 텁텁하기로 유명한 부위가 이렇게 촉촉하다면 다른 부위의 육질은 이미 말을 할 것도 없다. 등살을 크게 찢어서 입에 넣어본다, 부드러움과 수분이 가득한 육질이 치아 사이사이로 달라붙듯이 씹힌다. 가벼운 솜털을 씹는 듯한 느낌이면서 혀를 간지럽힌다. 뻑뻑하거나 텁텁한 닭의 속살을 먹을 때 느껴지는 그런 답답한 감정도 이곳에서는 느끼지 않는다, 턱의 저작운동을 충분히 활용해서 조심스럽게 닭의 부드러운 속살을 느끼면서 먹다 보면 어느새 닭은 입안에서 녹아서 사라져 있다.
탄탄하고 쫄깃할 거라고만 생각했던 잘 삶아진 닭살이, 극강의 열과 압력을 만나면 이렇게 입안에서 녹아내릴 수도 있구나. 연하고 쫄깃하다고 소문난 다릿살과 날갯살을 젓가락으로 만져본다, 젓가락으로 살짝 힘을 줘서 당기니 아무렇지도 않게 '스르륵'하고 관절들이 분해되고 살이 연골과 뼈에서 갈려 저서 나온다. 입안에 넣어서 살짝 씹으니 나도 모르게 녹아서 사라져 있다, 닭살이 입안에 있었는데요, 없었습니다.
전복삼계탕의 닭살이 워낙 잘 분해가 되다 보니, '살과 뼈를 분리시켜 주마'라는 말은 삼계탕을 먹을 때 쉽게 쓸 수 있는 말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김윤미전복삼계탕 집에서 삼계탕을 먹기 전에는 닭살들이 놀라서 금방 입안에서 녹아버리지 않도록 꼭 '너의 살과 뼈를 분리시켜 주마'라는 말을 미리 하시고 식사를 시작하시기 바란다, 아니면 육질을 씹는 즐거움을 느끼기도 전에 입안에서 닭살이 사라질 것이다.
어느 정도 큼지막한 살들을 발라서 입안에서 녹여먹은 뒤, 나는 모든 살코기들을 발라서 잘게 자르고는 삼계탕의 육수에 넣어서 찹쌀들과 섞어 진정한 닭죽을 만들었다. 찹쌀들의 질감이 고슬고슬하고 단단한 식감들이 살아있기에 삼계탕 육수, 그리고 닭고기와 잘 어울릴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 쫄깃하고 탄탄하면서도 부드러운 식감을 잃어버리지 않은 작은 닭고기 조각들은 고슬고슬한 식감과 강도가 살아있는 찹쌀을 만나서 식감의 차이로 혀와 잇몸을 재밌게 하면서, 진한 닭육수와 전복의 맛이 녹아든 전복삼계탕 국물이 사이사이를 채워주니 나는 순식간에 뚝배기를 비워냈다. 뚝배기는 아직 열기를 잊지 못하고 충분히 따뜻했다.
'내가 삼계탕을 그리 좋아하는 건 아닌데, 이 집은 만약에 집에서 가까웠다면 제법 자주 왔을 집이야.'
내가 사는 곳에서 송정동은 버스로 오가기에는 거리도 있고, 버스의 배차간격도 꽤 멀기 때문에 쉽게 올 수 있는 곳은 아니지만 든든하고 원기를 돋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그래도 오게 되지 않을까 싶었다.
추신.
처음 방문 때에는 시장하기도 하고, 맛이 좋기도 하여 사진 찍을 정신도 없이 먹어치웠기에 최근에 재방문하여 사진촬영을 하고 드디어 글을 쓰게 되었음을 알리는 바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