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된 퇴근길 전골과 소주, 모든 이들의 속 깊고 얼큰한 친구, 닭내장탕
유난히도 추웠던 작년의 어느 겨울날에 이쁜 여자가 좋아하는 닭요리를 먹으러 가자하여 방문했던 노포가 있다. 강릉의 '용지각' 근처에 있는 어르신 부부가 운영하시는 작은 식당이 있다고 했다, 이쁜 여자는 용지각 근처에서 직장을 다닌 적이 있는데 점심시간에 몇 번 방문했던 닭내장탕 집의 맛이 상당히 괜찮다고 하여 나도 구미가 끌려 같이 방문하게 된 곳이다.
조선 초기에 고려가 망하자 강릉으로 말을 타고 돌아오던 어느 관리, 그의 말이 잘못하여 연못에 빠졌는데, 연못에 빠진 말이 용으로 변하여 하늘로 날아가 버렸다는 재밌는 전설이 서려있는 연못이 바로 용지각이다. 지금은 지자체와 보존회의 도움을 받아서 잘 관리되고 있는 강릉의 문화유산인데, 그 용지각의 버스정류장 근처에 자리 잡은 작은 식당, 배달식당. 식당의 이름만으로는 당최 어떠한 음식을 파는 식당인지 모르기도 하거니와 식당 이름에 '배달'이라는 이름이 들어가다 보니 '배달전문식당인가?' 하는 쉬운 오해를 받기도 하는 곳이지만 이곳을 점심이나 저녁 시간대에 지나가게 되면 이 허름한 노포, 술 마시는 가게 같은 곳에 왜 이리 사람이 많은 거야? 하고 보게 되는 곳이다.
용지각 근처에도 이런저런 직장이나 사업체, 건설현장등이 제법 있어서 점심, 저녁에는 용지각에 있는 식당들이 꽤나 붐비게 되는데 배달식당도 조용히 사람들로 붐비게 된다. 내가 이쁜 여자와 방문했던 그날의 겨울 저녁에도 마찬가지로 배달식당의 유리문과 반투명 시트지로 장식된 문을 열고 들어가니 이미 홀과 방안에는 거칠고 튼튼하고, 여러모로 험한 환경을 이기고 무사히 퇴근한 주인을 따라온 작업화들과 건설현장의 신반들이 방문 앞에 가득하고 바깥 홀에도 혼자서 소주와 전골을 홀짝 거리며 저녁을 해결하고 계시는 노동자분들의 모습이 보였다. 누군가 그랬지 않았는가, 지역에서 나이 많은 남자들이 모여 소주를 기울이며 왁자지껄한 소음이 있는 식당은 의외로 그 지역의 맛집일 가능성이 높다고. 나도 배달식당의 그 모습을 보며 '호오... 이 노포, 괜찮을지도 몰라'라는 생각을 했다.
"선생님! 여기 닭내장탕 작은 거 하나에 우동사리, 밥 2개요!"
배달식당의 메뉴는 닭내장탕이 전부다, 거기에 우동사리나 라면사리, 그리고 공깃밥은 따로 주문해야 한다. 한, 두 분이서 요리를 하고 홀 접대까지 다 하는 곳이기 때문에 손님접대가 소홀하지는 않을까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물도 갖다 주시고 음식도 제법 빨리 나오는 편이다, 밑반찬은 김치와 고추장아찌, 양파와 매운 고추가 전부이지만 닭내장탕이 전골냄비에 담겨서 끓는 모습을 보면 불만도 금방 사라진다. 음식이름은 닭내장'탕'이지만 전골냄비에 어느 정도 조리가 된 상태로 담겨 나와 각 식탁 위에 올려진 가스버너에 올려놓고 팔팔 끓여 먹으니 닭내장전골이라고 불러도 상관없겠지만, 누구나 이 음식은 닭내장탕이라 부른다.
"전골냄비 뜨거우니까 손대지 마시고, 펄펄 끓기 시작하면 그때 드세요. 우동사리는 금방 갖다 드릴게요."
전골냄비 가장자리와 맨 위로 국물이 찰랑찰랑 거릴 정도로 육수가 상당히 많이 담겨서 나왔다, 안에 담긴 닭내장탕의 건더기들의 모습이 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육수가 가득이지만 휴대용 가스버너 위에 다시 올려서 끓여 먹는 음식이라서 누구도 그 육수에 대한 불만을 가지지 않는다. 닭내장탕이라고는 하지만 전골이 더 맞는 말이 되겠다, 우동사리는 냉동인 상태로 다른 그릇에 담겨 나온다, 나는 얼어붙어있는 우동사리를 그대로 전골 속으로 던져 넣는다.
"여기 육수가 정말 맛있어, 너무 많이 졸이지 마."
"그래? 이렇게 먹는 방식은 전골인데 다들 탕이라고 부르는 게 신기하네."
전골냄비가 슬금슬금 기포를 만들어가며 팔팔 끓어오를 때까지 전골 안에 무엇이 들었는지 찬찬히 살펴본다. 손질이 꼼꼼하게 되었지만 '달걀'로 만들어지지 못한 노른자의 자국이 묻어있는 닭내장, 수제비, 당면, 깻잎, 감자, 미나리, 그게 전부다. 닭내장을 손질하는 일은 정말 쉽지 않고 손이 많이 가는 일인데 손질을 깔끔하게 하셨는지 닭냄새도 거의 나지 않는다. 훌륭한 전처리 실력을 가지신 주인장이심이 틀림없다.
"이제 한 입 먹어볼까."
"그래, 기대된다. 닭내장탕은 먹어본 적이 없어."
"그래? 강릉에 닭내장탕 하는 곳이 두어 군데 있는데, 그중에 하나가 여기 배달식당이고 또 하나는 강릉의 남산공원 아래에 '못잊어' 집이 있어. 거기랑 여기는 서로 맛이 달라."
나는 이쁜 여자가 강릉의 닭내장탕 집들에 대해 주는 설명을 들으면서 국자로 닭내장탕을 크게 퍼서 그릇에 담았다, 우동사리가 불어서 맛 없어지기 전에 당면과 우동도 잔뜩 가져온다. 많이 먹으려고 하는 게 아니다, 정말로 우동사리가 불어서 육수가 맛이 없어질까 봐 그런 것이다. 앞접시에 담은 닭내장탕에 숟가락을 담고 국물부터 맛을 본다, 숟가락에 담긴 육수에서 매운 고춧가루의 냄새와 진한 닭육수의 향이 피어오른다.
국물이 입안으로 들어가니 처음은 매콤하고 칼칼한 육수의 매운맛이 목젖과 목구멍을 강하게 '탁!'치는 느낌이 든다, 나는 자동반사로
"크으으으!" 하는
소리를 낸다, 소주는 한 잔도 할 줄 모르는 인간인데 마치 독한 증류주나 소주라도 한 것과 같은 강하게 목을 긁는 소리를 내버렸다. 혓바닥과 입안에 도착한 닭내장탕의 국물은 강하고 칼칼한 매운맛으로 입안을 때리더니 그 후에는 닭내장과 닭육수 특유의 고소함과 진한 맛으로 입안 전체를 감싸 안는다, 뜨끈한 국물이라서 입안이 아니라 온몸 전체를 뜨끈하게 녹이는 육수가 저절로 눈을 감게 만든다.
"와, 여기 국물이 진짜..."
"맛있지? 나중에 가면 국물까지 다 긁어먹는다니까."
뜨끈하면서 칼칼하게 목을 긁어내리는 매운맛에 닭고기와 닭내장으로 맛을 낸 닭육수 특유의 고소함, 진한 고기맛에 감칠맛, 이미 나의 혓바닥과 잇몸이 '더 줘! 더 줘!' 외치는 기분이다. 마지막으로는 깻잎과 미나리의 상큼함과 진한 풍미로 긴 육수의 여운을 남긴다. 이러한 육수를 머금은 당면과 우동의 맛은 어떨까, 신이 난다.
후루루루루룩
부들부들, 매끈거리며 우동면발과 당면이 젓가락을 타고서는 목구멍으로 휘감겨 들어온다, 고소하고 진한 감칠맛의 닭육수와 쫀득거리며 찰랑이는 면발의 식감이 환상적인 조화의 맛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저절로 눈이 감긴다. 면발에 묻은 닭내장탕의 육수 한 방울 마저도 놓치지 않고 느끼고 싶다. 소금이나 간장으로 만들어 내는 인위적인 짠맛이 아니라, 닭내장탕 안에 가득 넣어주는 닭내장과 거기에 붙은 닭껍질에서 한 방울도 놓치지 않고 빠져나온 닭의 모든 고소함과 육즙이 육수에 모두 녹아서 만들어낸 어마어마한 닭맛, 그 고소함. 따뜻한 닭내장탕의 온기는 보너스. 나는 눈을 감고 잠시 닭내장탕 고소함의 황홀경에 빠져 그 진한 여운을 즐긴다.
"내가 왜 여기를 이제야 알고 왔을까."
"지금이라도 알았으니 되었지."
나는 그제야 알 수 있었다, 왜 하루의 고된 노동과 일과를 마친 노동자들이 저녁에 이 배달식당에 굳이 발걸음을 하는지. 뜨끈하고 진한 여운을 가진 닭내장탕에 소주를 곁들이지 않고서는 하루가 개운하게 끝나지 않는 느낌일까. 진한 감칠맛의 여운이 가시지 않는 것도 좋지만, 조금 더 향긋한 매콤함도 좋겠지. 식탁마다 놓여 있는 흑후추분말을 나의 앞접시에 톡톡 털어서 넣어본다. 분명 고소한 육수에 풍부한 매콤함과 후추의 풍미는 잘 어울릴 것이다.
나는 후추가 가미된 육수에 닭내장을 하나 퍼서 눈을 감고 입에 넣어본다. 쫄깃쫄깃하게 치아를 하나씩 잡았다가 놓는 식감을 가진 야들야들한 닭내장탕은 후추의 풍부하고 톡 쏘는 향미가 묻어서 씹을 때마다 육수의 진한 감칠맛과 매콤함을 함께 뿜어낸다. 옆에 놓인 감자는 포슬포슬하고 은근하게 달달한 맛, 숟가락으로 으깨서 국물에 섞어 먹으니 이만큼 좋은 탄수화물 섭취법도 없다. 아무리 끓여도 자신의 기세를 꺾지 않고 단단한 줄기를 세운 미나리를 아삭아삭 씹어 먹으니 그 향기가 개운하다, 다시 숟가락을 들어서 국물과 수제비, 감자를 더 퍼먹고 싶지만 국물이 너무 맛있다 보니 닭내장탕이 금방 사라진다. 아, 괜히 작은 걸로 시켰나, 중간 크기로 시킬걸 그랬나 보다.
배부르게 먹고 슬슬 가려고 보니 옆과 뒤에 앉은 노동자분들의 식탁은 아직 소주잔의 행렬이 끊기지 않을 듯 보인다. 오늘 밤도, 저분들의 몸과 마음은 닭내장탕의 진한 감칠맛이 위로하고도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