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예술가나 기술자들 중에서도 어떠한 기술에 정통한 사람들을 흔히 '장인'이라고 부르고 온갖 짤과 밈에서도 '~~ 장인'이라는 말을 자주 쓰고 있다. 오늘날에는 생각보다 자주 쓰이는 말이 '장인'이라는 말인데, 사실 장인의 '匠'자는 큰 상자를 뜻하는 한자와 큰 자귀(목재를 긁어 다듬는 도구)가 합쳐서 만들어진 한자로 나무를 다듬어 물건을 만드는 목수들에게 붙여지던 말이지만 목재 외에도 다른 재료도로 물건을 만드는 일이 많으니 이제는 온갖 기술자와 예술가들에게 붙여지는 말이다, 요리 분야의 기술자들에게도 마찬가지.
어느 도시에나 어떠한 기술에 정통한 사람들이 많듯이, 강릉에도 많은 장인분들이 계시다. 나는 요리 쪽의 장인 분들을 잘 아는데, 내가 사랑하는 바리스타 장인분들이나 피자 장인, 머핀 장인, 속초에 가면 뵐 수 있는 수타 우동 장인, 그리고 내가 아직까지는 브런치를 빌어 소개한 적은 없는 일식 메밀면 장인이다.
이전에 한국식 분틀로 메밀면을 뽑는 한식 메밀면 장인은 소개한 적이 있지만, 그만큼이나 맛있는 '소바'를 뽑는 일식 메밀면의 장인이 운영하는 '오무라안'은 소개한 적이 없다. 현재 서울 역삼역에서 오무라안 본점을 운영하시는 일본인 메밀소바 장인의 수제자로 일을 하시다 독립을 하셔서 강릉에 동명의 메밀소바 전문점을 개업하신 분이다. 일본에서는 어떠한 기술이나 전문점을 오랫동안 운영하고 전래하는 문화가 발달을 해서 이름난 장인이나 명인들이 많다, 한국에도 장인들이나 명인들이 없는 것은 아니지만 시간과 문화의 흐름으로 인하여 조금씩 조용히 사라져 가는 한국의 전통문화들을 보고 있으려니 잠시 먹먹한 기분이 들기도 하지만,
나는 미식 경험을 다루는 사람이니, 일식 메밀국수 전문점 오무라안에 대해서 얘기를 시작해 본다. 사실 내가 이 집을 처음 가는 것은 아니다, 이전부터 종종 이쁜 여자와 가서 소바나 연어덮밥이나 튀김을 먹던 곳이다. 집에서는 어느 정도 거리가 있는 곳이기 때문에 잘 가지 않은 것뿐.
포남동의 먹자골목 근처에 위치를 하고 있는 오무라안은 '골목'에 자리를 잡고 있기에 차량으로 방문하려고 하시면 주차하기 쉽지 않아서 주변의 공영주차장을 잘 알아보시거나 골목의 빈자리를 잘 찾아보시기를, 필자는 자전거로 시내 곳곳을 돌아다니는 사람이라 '주차대란'이라는 말을 모른다.
가게에 가면 바로 겉면에 강릉점의 장인이 서울에서 수제자이던 시절, 스승과 메밀국수를 만들던 추억에 대해서 짤막하게 적어놓은 글귀를 볼 수 있고 '소바, 우동 전문점'이라고 강조해서 적어놓은 종이들이 창문에 큼지막하게 붙어있다. 아무래도 가게 분위기가 일반적인 일식 주점 노포와 같은 분위기가 나서, 무엇을 하는 음식점인지 잘 모르고 방문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런 것인지는 몰라도, 오무라안의 정체성을 확실하게 밝히고 있다.
"어서 오세요~ 몇 분이세요?"
"한 명이예요"
"저쪽 안으로 가서 앉으시면 돼요~"
사람이 많지 않은 시간에 방문해서 그런지 4인용 테이블에 안내를 해주시는 홀 직원분, 얘기를 하다 보면 한국분은 아니라는 것을 금방 알아차리게 되지만 음식만 맛있으면 그만이다.
가게의 벽에는 온갖 메뉴들의 사진들과 가격이 전람회처럼 붙어있고 안쪽 부엌에서는 메밀을 계속 반죽하고 있는 장인의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리고 메밀국수의 장인이라는 명패도 눈에 들어오고 바닥에 앉아 메밀국수를 먹는 손님들이 가득이다. 가게의 벽과 칸막이는 모두 다 반질반질 윤이 나는 원목으로 장식이 되어 마치 대나무로 만들어진 집에 들어온 기분이다.
오무라안의 산미소바, 11시 방향부터 튀김, 갈린 마, 명란으로 이루어진 클린업 트리오
각설, 제법 배가 고프니 빠르게 주문해 본다. 이것저것 먹어보고 싶은 마음에 텐모리소바(튀김이 함께 나오는 메밀면)와 산미소바(각 다른 토핑이 올려진 3그릇의 메밀국수)를 큰 사이즈로 주문한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몰랐다, 오무라안의 메밀국수의 양이 그렇게 많을 줄은.
메밀면이라서 그런지 역시나 굉장히 빠르게 음식이 나온다. 메밀이 가진 특유의 향 덕분에 나는 메밀면을 사랑하지만, 이렇게 음식이 빠르게 나온다는 점은 내가 메밀을 더 사랑하게 되는 이유다.
오무라안의 메밀면은 메밀껍질은 거의 넣지 않은 매우 밝은 회색 혹은 연갈색의 빛이 나는 면이다. 봉평에서 직접 공수해 오는 메밀가루로 만드는 메밀면이다.
텐모리소바(튀김과 메밀국수)
"어디 한번 먹어볼까"
메밀국수를 찍어먹을 간장을 간장색과 닮은 검은 사발에 붓고 다진파와 눈처럼 뽀얗게 갈린 무를 넣고 고추냉이를 살짝 넣어 섞는다. 육수를 함께 들이키며 마시는 한국의 메밀국수와는 다르게 일본식 메밀국수는 메밀면을 간장에 살짝 담가, 적셔서 먹는 것이 일반적으로 맛있게 먹는 방법이다. 나도 젓가락으로 메밀국수를 들어 간장 사발에 담근다. 젓가락으로 건드릴 때부터 이미 툭툭 고개를 떨구며 건조한 무게감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면발이다.
밀가루를 넣지 않는 여느 메밀면들이 다 그렇듯이 찰기나 윤기는 없기에 '면치기'를 하기에는 어렵다, 다만 젓가락으로 잘 말아서 입안에 툭툭 떨어지는 느낌으로 먹는다.
역시나 처음 혀에 닿는 맛은 달콤하고 짭짤한 일본식 간장 '쯔유'의 맛, 달달하면서 간이 있는 맛이지만 무겁거나 혀의 미뢰세포들을 강하게 자극하는 자극적인 맛은 아니다. 오히려 가볍게 입안에 떨어지며 혀 전체로 달콤함과 짭짤함이 서서히 번져가며 정신을 번쩍 들게 하는 맛이다. 이미 기분이 좋아진 상태로 치아를 꼭꼭 움직이며 저작활동을 시작한다.
장인의 단단하고 튼튼한 악력과 손끝으로 꾹꾹 눌리며 만들어졌음을 증명하듯, 입안에서도 치아 사이에서 꼬들꼬들하고 탄탄한 식감으로 나를 즐겁게 한다. 누군가는 무미건조하고 재미없는 식감과 풍미라고 할 수 있지만, 그것은 오무라안의 메밀면을 끝까지 즐기지 않았을 때 나오는 반응이렸다. 메밀국수를 입안에서 오랫동안 씹으면 침과 함께 섞여 메밀향이 맛이 죽는다, 적당히 씹고 메밀면을 보내준다.
"오.... 뭐지 이거."
이미 입에서 메밀국수는 떠난 지 오래인데 입안 뒤쪽, 혀뿌리 쪽에서 고소하고 향긋한 메밀향이 보이지 않는 풍성한 질감과 향미로 소독차에서 연막이 '부아아아 앙'하면서 뿜어져 나오듯 몰려온다. 고소한 메밀의 향기가 입안과 콧속을 가득 덮으니 나도 모르게 웃음을 지었다. 꼭꼭 씹히는 면발은 기대했었던 바이지만 언제 와도 신기한 것은, 오무라안의 메밀면은 목구멍 안에서 메밀의 향미가 스멀스멀 입안으로 기어들어와서 확 나의 오감을 장악한다는 것이다.
일식 메밀국수는 간장에 살짝 적셔 먹을수록 맛이 좋다
달콤함과 짭짤한 간장으로 미각을 깨우고 나서 메밀면으로 이의 촉감과 코의 후각을 장악하는 오무라안의 모리소바, 미식을 원하는 사람에게는 즐거운 조합이다. 그렇게 있다 보니 함께 나온 튀김에게는 눈길도 주지 않고 메밀면 한판을 순식간에 비워버렸다.
"아차, 튀김은 따끈할 때 먹어야지."
느타리버섯 튀김, 그 뒤로 시소(차조기)튀김도 보인다
오무라안에서 제공하는 튀김은 전형적인 일식 '텐푸라'이다. 튀김덮밥인 '텐동'류에 올라가는 바싹 튀겨지고 마르고, 가벼운 식감의 튀김과 다른 점은 바삭함은 뒤처지지 않으며 바삭함 안에는 튀겨진 재료의 본래 풍미와 그 재료를 덮은 튀김옷의 촉촉함이 남아있다는 것이 차이다. 이 '촉촉함'의 차이 때문에 본인은 일반적인 텐동집의 튀김보다는 속이 촉촉한 '텐푸라'를 더 선호한다. 물론 튀김옷의 반죽 배합이나, 한번 튀기느냐 두 번 튀기느냐 등의 튀김 방법을 다르게 사용하는 것으로 차이를 두어 튀김의 용도에 따라 다르게 튀겨진 것이기에 어느 것이 맛이 좋으냐 나쁘냐가 아니라 본인의 취향에 맞는 튀김을 찾으면 되는 것이라.
바사사사삭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났음에도 오무라안의 튀김은 처음 나왔을 때와 동일한 바삭함을 갖고 있다, 아마 서늘하게 식어도 바삭함이 변치는 않을 거라고 본다. 바삭하고 사각거리기까지 하는 훌륭한 품질의 튀김옷, 그리고 고유의 재료맛을 해치지 않는 반죽, 느타리버섯 튀김을 씹었는데 버섯의 향이 바삭한 튀김옷과 함께 그대로 코로 전달이 된다. 버섯이나 채소류를 튀김으로 먹을 때에는 그저 바삭함만이 오무라안 튀김의 매력인 것 같지만, 오무라안 튀김의 매력을 절정으로 만날 수 있는 튀김은 새우튀김이다. 그렇다, 새우는 뭘 해도 맛있는 음식이다. 구워도 맛있고 끓여도 맛있고 생으로 졸여도 맛있는 새우이지만 나는 새우 중에서 일식 텐푸라로 튀겨낸 새우를 가장 좋아하며, 오무라안의 새우튀김은 속초의 새우강정에 비길 만큼 바삭하고 맛있다.
처음 앞니와 혀에 닿을 때에 느껴지는 뾰족 거리는 바삭함과 터지는 별처럼 부서지는 튀김옷, 하지만 그 안에 숨어있는 새우속살을 감싸는 촉촉하게 젖어있는 포근한 튀김옷. 바삭함과 촉촉함이라는 상반된 식감의 조화가 우리의 혀에 얼마나 기쁜 감각을 선사하는지 튀김을 사랑하는 자들은 충분히 알고 남음이라. 입안을 콕콕 찌를 정도로 바삭한 튀김이 씹고 나면 그렇게 부드러울 수 없다, 까칠하지만 정이 많아 마음은 약한, 미워할 수 없는 우리 주변의 누군가를 간접적으로 느껴보는 마음이다.
그렇게 즐겁게 텐모리소바 큰 사이즈를 해치우고 나니 내가 간과한 것이 있었다, 바로 메밀면은 섬유질이 풍부하기에 일반 밀가루면보다 훨씬 더 빨리 포만감이 느껴진다는 것. 내가 함께 주문한 산미소바(3가지의 메밀면이 작은 그릇에 나오는데 각각 갈린 마, 명란, 텐푸라가 토핑으로 올려져 있다)는 위에 올려진 토핑들과 함께 먹는 둥 마는 둥 하다가 결국 많이 먹지도 못했다.
토로로소바, 명란소바, 텐푸라소바. 이 맛있는 녀석들을 반도 못 먹고 나와야 했던 미련한 콤마.
아, 미식을 사랑하는 사람으로서 이 얼마나 미련하고 어리석으며 슬픈 모습인가. 배가 부르고, 자리도 계속 차지할 수 없으니 자리에서 일어서야 하기는 하는데, 이걸 아무 말도 안 하고 그냥 가버리면 분명 맛이 없어서 남겼을 거라고 생각할 거라는 걱정 아닌 걱정이 든다. 계산을 하러 가서 홀을 보시는 분께 말씀드리려는데, 먼저 말을 꺼내시는 점원 선생님,
"큰 사이즈를 다 드신 거예요?"
나는 멋쩍은 웃음과 손사래를 치며 답한다,
"아뇨, 아뇨, 모리소바라고 해서 양이 많이 안 나올 줄 알았는데 이렇게 양이 많을 줄은 몰랐어요. 텐모리소바를 먹고 나니까 산미소바를 못 먹겠더라고요."
"에고고, 저도 다 먹을 수 있을 줄 알았네요, 산미소바는 반도 못 먹었는데요, 선생님, 제가 저거 절대 맛이 없어서 남긴 게 아닙니다. 오늘 소바랑 튀김 아주 맛있었어요."
사실 내가 식단을 시작한 이후로 먹는 양이 많이 줄어든 탓도 있지만, 저 맛있는 모리소바를 다 먹지도 못하고 떠난다는 사실이 통탄스러운 마음이었다. 내가 얼마나 먹을 수 있는지 예상할 수가 없게 되어 버린, 어리석은 본인이다.
"그러셨구나~ 괜찮아요~"
"많이 남겨서 죄송합니다, 훌륭한 메밀소바, 감사합니다."
오무라안은 분명 일식 메밀국수와 우동(가락국수) 전문점이지만 그 외에도 다양한 음식들이 많다. 사케동(연어덮밥)이나 튀김이 훌륭하기에 텐동(튀김덮밥), 그리고 규동(쇠고기덮밥)도 추천할만한 메뉴이다. 다만 처음 방문하시는 분이라면 우선 소바장인의 메밀면의 매력에 먼저 빠져보시는 것은 어떨까. 서울 역삼역 근처에 장인의 스승님께서 하시는 본점이 있으니 수도권에 사시는 분들은 그곳을 방문하셔도 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