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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Dec 16. 2023

[미식일기] 굴사랑, 강릉

식도락가들을 위한 시원한 바다우유 애찬

적어도 내가 아는 지식 안에서, 동해안에서는 굴 양식을 하지는 않는다, 자연적으로 굴이 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 영동지방에서 거주를 한 지 10년이 넘었지만 내가 영동지역에서 자생하는 다른 조개들보다도 굴을 더 좋아하는 이유는 20대 시절 부산에서 즐겨 먹었던 어느 중국집의 부추굴탕면의 영향이 컸다.


친가와 어머니댁이 모두 부산에 있었기에 나는 휴일에는 여가기간에 부산에서 시간을 자주 보냈는데 해운대구의 어느 기계공고 근처에 있는 '타이완' 혹은 '대만'이라는 중국집을 곧잘 갔었다. 원래는 어머니께서 이곳의 군만두가 맛이 매우 좋다고 하여 갔었던 곳이다. 현재 동명의 가게가 수영구에 있는 것을 확인했고 맛이 좋다는 사람들의 평이 많지만 이전에 해운대에서 있던 그 집인지는 모르겠다, 다만 아직도 군만두에 대한 호평이 이어지는 것을 보아 내가 갔었던 그 집일 확률이 높다고 생각한다.


여하튼, 그렇게 군만두에 대한 기대를 품고 갔었던 집인데 때마침 철이 겨울이어서 계절 별미로 부추굴탕면을 판매한다는 메뉴를 보고 주문한 굴탕면은 그 이전까지 굴에 대해서는 그저 이상한 어패류의 비린맛이 나는 물컹거리고 미끈거리는 식재료로만 알고 있던 나의 고정관념을 깨버린 최초의 굴로 만들어진 메뉴였다. 크고 실한 굴에서 나오는 쫄깃한 식감과 시원한 바다의 맛이 어우러진 국물의 맛, 굴에서 우러나온 국물까지 모두 깔끔하게 먹은 이후로 나에게 (아직까지 생굴을 먹는 것은 싫지만) 익은 굴은 국물의 맛을 시원하고 깊게 변화시켜 준다는 좋은 인식을 만들어주었다.


그래서 그 이후로 나는 9월이 넘어가게 되면 시장에 굴이 나오는 철인지 확인하고서 겨울에는 항상 굴을 사서 여러 요리로 해 먹는 것을 빼먹지 않고 있다. 올해 가을만 해도 남해안에 사는 친구에게 굴을 선물 받아 파스타와 굴전으로 먹었기에 나의 굴사랑은 이어지고 있다.


내가 익힌 굴 먹는 것을 좋아하시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런저런 일을 의논하기 위해 저녁 식사 겸 회의를 위해 만난 어느 형님께서


"저녁도 먹을 겸 택지의 굴사랑 갑시다."라고 하시기에


굴사랑이라는 곳이 대체로 무엇을 하는 식당인지는 모르지만 익힌 굴을 좋아하는 필자는 좋다고 따라나섰다. 필자보다 더 오랫동안 강릉에 거주한 이쁜 여자의 말에 의하면 본점은 수도권에 있는 굴요리 전문점이지만 강릉에 있는 체인점도 영업을 이어온 지는 오래되었고 굴국밥이 맛있었다는 귀띔까지 더해주었다.


강릉 택지의 대학가 먹자골목에 자리 잡은 굴사랑의 문을 열고 들어가니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을 받을 수 있는 매끈거리는 나무 의자와 식탁들, 거기에 삼삼오오 모여서 굴국밥이나 굴밥에 파전을 곁들여서 먹고 있는 사람들, 벽에는 굴에 대한 효능과 메뉴 소개, 천장 근처 벽의 벽걸이 텔레비전에서는 저녁 예능방송이 나오는데 홀의 가운데에서는 주문 응대를 모두 끝내신 주인분과 주방장분께서 담소 중이셨다.


"선생님, 여기 두 사람이요."


"네~ 거기 편하신 곳 앉으세요."


식탁에 앉아서 물을 따르고 손수건으로 손을 닦으면서 메뉴판을 구경하니 '굴사랑' 하는 사람들의 식당의 이름만큼이나 굴을 사용한 거의 대부분의 메뉴들을 하는 식당임이 분명함을 알 수 있었다. 생굴을 사용한 굴회부터 굴국, 굴전, 굴파전, 굴밥, 굴국밥 등등... 메뉴의 처음부터 끝까지 주류나 공깃밥을 제외하고는 모두 다 굴이었다.


'나도 굴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이렇게 종류가 많으니까 뭘 먹어야 할지 고민인걸.'


굴국밥이 맛있다고 얘기는 들었지만 다른 굴메뉴들도 맛보고 싶은 마음이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콤마, 여기는 굴밥이 맛이 좋아, 저번에도 굴밥 먹었는데 괜찮더라고. 거기에 우리 굴해물파전이나 같이 먹지."


"형님이 그렇게 말씀하시는 것이면 당연히 좋겠지요, 네 그러시죠."


굴로 된 음식은 굴파스타, 굴국밥이나 굴짬뽕, 굴회까지만 알던 나에게 굴밥과 굴해물파전은 새로운 영역이었기에 형님의 제안을 나는 덥석 물었다. 우리의 주문이 들어가는 동시에 새로운 손님들이 더 들어오기 시작했고 홀에서 여유롭게 잠시 계시던 분들은 각자 주방과 홀을 분주하게 오가며 일을 시작하셨다.


"여기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이 오네요."


"암, 여기 꽤 오래된 집이고 음식 괜찮거든, 나는 저번주에도 왔었어."


맛있어 보이는 바람에 사진을 찍기 전에 파전을 찢어버린 것에 대해 심심한 사과를 표하는 바이다


우리가 이런저런 말을 나누고 얼마 있지 않아서 지글거리는 소리가 끝나고 굴과 해물, 채소가 가득 들어간 파전이 등장했다. 내가 아는 파전과는 다르게 달걀을 파전의 주 재료로 하여 채소와 해물이 많이 들어간 모습, 샛노란 모습이 색다르다. 피자처럼 한쪽씩 잘려서 나오니 먹기도 편하다. 한쪽씩 각자 앞접시에 담고서 굴을 함께 집고 입에 넣어본다.


바사삭


'....! 밀가루로 된 파전이 아니네?'


입에 넣자마자 가벼운 식감의 파전이 파사삭, 바사삭 부서지며 속에 있던 채소들과 해물들이 입안 가득 씹힌다. 내 생각으로는 달걀물과 튀김가루를 적게 쓰고 속재료들을 가득 넣어서 튀기듯이 부쳐낸 파전이 틀림없었다. 다른 매체로는 많이 봤어도 내가 실제로 먹어보는 것은 처음이다, 밀가루나 전분 대신에 튀김가루로 반죽을 시작해서 달걀물의 비율이 많아서 그런지 무겁지 않아서 개인적으로 마음에 들었다. 거기에 튀김처럼 기름에 익혀낸 달걀은 내가 좋아하는 음식이고 식감이다.


"여기 부침가루를 안 쓰고 튀김가루를 쓴 느낌이네요, 직접 본 것은 아니라 확실하지는 않아도. 달걀을 튀겨내듯이 전을 부쳐낸 것이 식감이 훌륭해요."


"그래? 나는 여기 바삭한 게 맛있어서 또 시켰지."


바사삭 아사사삭


하지만 그저 가볍고 바삭한 식감만 있었다면 내가 이렇게 글까지는 쓰지 않았겠지, 굴과 새우를 포함한 채소들이 빈틈없이 파전의 원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입안에서도 아삭거리고 쫄깃한 맛을 더한다. 기름에 익은 달걀과 채소들의 고소한 맛은 덤이겠지.


사진은 음식의 맛을 담기 어렵다


"자자, 뚝배기 뜨겁습니다~ 조심조심~"


일식집에서 알밥이 뚝배기에 담겨 뜨겁게 나오듯, 굴사랑에서는 굴밥이 암흑처럼 검고 단단한 뚝배기에 지글지글거리는 소리를 내며 등장했다. 흑미가 섞인 보랏빛의 흑미밥 위에 반투명한 우윳빛, 촉촉한 무생채들이 꿈틀거리고 옆은 살짝 익혀낸 굴들, 밝고 투명한 주황색의 날치알에 파릇파릇한 부추, 그 옆에 포슬거리는 김가루. 뚝배기의 안쪽 면에는 참기름을 넉넉하게 발라서 쌀알들이 뚝배기에 눌어붙지 못하게 처리를 슬기롭게 해 놓으셨다. 그렇지, 뜨거운 뚝배기에 튀겨지듯 구워진 누룽지 밥알은 참을 수 없다. 조금만 시간을 들이면 맛있고 바삭한 식감을 먹을 수 있지.


"콤마, 여기에다가 여기 양념간장을 딱 세 숟갈만 넣어서 먹어, 내가 해줄게. 하나, 둘, 셋."


"양념간장이 따로 있군요, 어쩐지 그냥 보기에는 싱거워 보이는데."


뚝배기에서 피어오르는 참깨의 향기와는 조금 다른 참깨의 향기가 양념간장에서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부추와 참기름이 섞여서 파전을 찍어먹는 간장보다는 더 투명해 보이는 간장, 밥에 섞는 이유는 뭘지 궁금했다. 양념간장을 넣어서 섞을수록 굴은 점점 더 짙은 회색빛을 띄기 시작했고 하얀 무나물은 조금 더 노란빛을 띠었다. 그리고 그 사이에서 공기 중에 퍼지는 참깨의 견과류 향기와 새콤한 산미. 신맛 가득한 초의 냄새가 코를 찌르자 바다의 맛이 나는 굴과는 상당히 좋은 친구가 될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굴과 김, 무채를 밥 위에 올려 한입에 넣어본다.


번들거려보이는 것과는 다르게, 식감이 바삭바삭하다


"음....!"


참기름의 풍미가 먼저 코를 덮고 시원한 굴맛이 고슬 거리고 바삭거리는 누룽지 밥과 씹히면서 모래가 섞인 파도가 입안에 철썩인다. 거기에 무의 은은한 단맛과 말캉거리는 식감이 섞인 무채가 부드럽게 씹히고 톡톡 터지는 날치알의 맛이 혀 위에서 터진다. 그리고 상큼한 양념간장의 깔끔한 마무리. 굴이 들어간 음식이지만 생선은 보이지 않는다, 광활하고 푸른 바다만 있을 뿐.


"이거 예상외로 맛이 아주 훌륭한데요, 이 정도일 줄은 생각도 못했어요."


"그래? 나는 이게 맛있어서 굴사랑에서는 굴밥만 먹어. 굴밥에 굴파전."


굴밥의 밥과 뚝배기가 뜨겁기 때문에 굴은 살짝만 익혀서 넣어줘도 밥과 뚝배기에서 구르다 보면 맛있게 익고 비린내는 점점 사라진다, 썰물처럼 빠지고 깊은 바다의 맛만이 밀려들어온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탱글거리는 식감과 쫄깃한 맛은 사라지지 않는다, 거기에 뚝배기 겉면에 참기름과 함께 누룽지로 구워진 밥알이 물컹거릴 수도 있는 굴의 식감을 바삭함과 사각거리는 식감으로 덮어주고 고소한 참깨로 코까지 덮어준다. 그리고 상큼한 신맛으로 굴의 비릴 수도 있는 풍미를 깔끔하게 마무리, 누가 이 굴밥의 메뉴를 만들어냈는지는 몰라도 손님의 오감을 완벽하게 잡아주는 메뉴다.


굴밥 위의 재료들을 다양한 색채로 꾸며 시각을 잡고, 지글거리는 소리로 청각을, 고소한 참기름과 바다냄새로 후각을, 바삭거리고 쫄깃한 식재료로 식감, 마지막으로 재료들과 양념장이 어우러진 미각까지. 사람의 오감을 만족시키는 '파인다이닝'을 한 뚝배기에 담은 훌륭한 한국의 음식이다.


"여기 옆에 구운 김도 따로 주시네요."


"응, 김에다가 밥을 싸 먹어도 맛있어."


구운 김에 싹 싸먹는 것이다, 굴밥에서 바다의 맛이 더 잘 나는 것이다


직화구이의 불맛이 섞인 심심한 맛의 구운 김을 들어서 굴밥을 싸악 싸서 입에 넣는다. 이번에는 맑은 바다의 김맛과 얕은 바다 갯벌의 진한 맛이 어우러지면서 밥만 먹는 것보다는 조금 더 풍부한 바다의 맛이 난다, 누룽지처럼 구워진 밥알과는 조금 다른 건조하고 부스러지는 김의 조각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해조류의 풍미가 구수하고 신선하기까지 하다.


"굴밥을 처음 먹어보는데, 여태까지 안 먹어본 시간이 후회스러울 정도인데요."


"허허, 그 정도인가?"


친한 동생 겸 친구를 처음 데려온 식당, 미식을 좋아하는 그 친구가 진심으로 전하는 음식에 대한 칭찬과 웃음. 밥이 싹 비워진 뚝배기의 반짝이는 밑바닥에서 식도락가들의 미소가 환하게 빛나는 굴사랑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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