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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고로 Feb 17. 2024

[미식일기] 우미집1947, 서울

뜨끈한 쌀밥에 고기국, 사랑방의 달콤한 우주

별빛이 쏟아지는 신림에서 맛있는 저녁을 지낸 고로는 다음 날, 바리스타 곰군을 만나기 위해 서울에서 뜨겁게 인기 많은 장소 중 하나인 홍익대학교 근처의 연남동으로 향했다. 곰군은 강릉에서의 오랜 거주 이후에 자신의 고향인 고양시 일산구로 돌아갔으나 마침 연남동에서 나와 보기로 한 날에 일정이 있다고 하여 겸사겸사 연남동의 골목길에서 그를 만났다.


"여어, 커피곰. 보기 좋네, 요즘도 커피 잘 마시나 봐."


"그럼요, 매일 맛있는 커피 내려 먹으니까요."


그와 시답잖은 농담 몇 마디와 서로의 일상에 대하여 근황을 나누면서 서로 처음 와보는 연남동의 구석진 골목길들을 오가며 (곰군은) 카페와 (김고로는) 식당들을 여기저기 구경하며 최근 서울 연남동의 유행은 뭔가 싶어서 처음 서울 구경을 온 지방의 토착민들처럼 걸어 다녔다.


"적당히 구경만 하다가 다니자, 너랑 점심 먹을 집은 내가 이미 다 예약을 해놨어."


"그래요? 그럼 그거 먹고서 저랑 드립 커피 한 잔 하러 가시면 되겠네요, 여기에 드립 잘하는 카페가 있어요."


"그거 좋은 소식이네."


걸어 다니면서 내가 어느 처음 생긴 프랑스식 크레페 카페 앞에서 메뉴를 구경하자 곰군은 역시나,


"형, 그거 드시고 싶어요? 제가 사드릴까요?"


"아냐, 크레페는 평소에 잘 못 보는 곳이니까 궁금해서 보고 있었어."


"그럼 이따가 드시고서 후식 배가 조금 남으시면 또 드시죠."


"그럴까, 이제 예약 시간이 다 되었으니 가보자."


서울에 오기 전날부터 미리 연남동에서 먹을 만한 곳이 있을까 하여 지도 어플과 지인들에게 물어 정한 곳이 있었다, 오래간만에 곰군을 보는 자리라서 일부러 가격대가 높아도 곰군과 한 끼를 거나하게 먹기 위해서 고른 식당 '우미집1947'.


연남동 카페거리의 인적이 드문 어느 골목으로 우리는 걸음을 옮겼다, 옛날에는 사람들이 많이 살았을 옛 단독주택들이 많은 골목으로 들어가니 왠지 '빼애애애액'하는 큰 종소리를 울리고 인터폰으로 집주인과 몇 마디를 나눈 후에야 대문이 열릴 것 같은 하얀 대문과, 커다란 돌판들과 자갈, 식물들로 꾸며져 있는 정원과 별관의 입구를 지나서 하얗게 칠해진 계단을 걸어 올라가니 집안에는 조선시대 양식의 장식과 모양, 소품들로 꾸며진 식당이 나온다.


복을 기원하는 팔각형 모양에 창호지와 한자모양으로 격자를 꾸민 전통양식의 창문, 도포와 갓, 노리개, 양반탈 등으로 외벽, 내벽 그리고 천장과 실내등들이 꾸며져 있어서 문을 열고 실내로 들어오니 1900년대 개방 이전의 조선의 어느 양반집으로 시간 여행을 온 기분이다.


"안녕하세요, 오후 14시에 예약한 김고로인데요."


가게 내부의 장식과는 다르게 깔끔하게 위, 아래로 요리사 복장을 갖춰 입으신 가게의 주인 분들께서 맞이해 주신다.


"네, 두 분이시죠? 외투는 저에게 주시면 저기 걸어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대부분의 식당과 카페가 친절한 서울이라서 그런지 외투를 맡겨도 되는 호의가 익숙지 않은 김고로는 로봇처럼 삐걱거리면서 그날 입고 간 검은 패딩재킷을 건네어드린다. 고급스러운 곡선과 직선으로 이루어진 옷걸이를 보면서 2인용 식탁에 곰군과 마주 보며 앉는다. 메뉴판을 갖다 주시는데 생각보다 내용물이 무겁다.


"맛있어 보이는 게 많아서 고민이구나."


"고민하지 말고 다 시키세요, 형."


"그래그래, 여기 언제 또 오겠니, 먹고 싶은 것 다 시켜야지."


꼬리곰탕, 우족탕에 아롱사태수육, 꼬리찜 등등에 어울리는 와인과 전통 한주까지, 나와 곰군이 반주를 즐기는 애주가들이었다면 무조건 한 병 시켜서 마셨을 설명만 보아도 맛있는 한주들이 즐비하다. 하지만 오늘은 식사를 하고서 커피를 마시러 또 2차가 예정이 되어 있기에 참는다. 우미집1947은 왕가에 진상했었던 쇠고기 중에서도 꼬리곰탕과 우족탕 등의 부위를 전문으로 하는 집이라 꼬리곰탕과 우족탕이 대표메뉴였다. 김고로는 고민에 빠졌다.


'달콤하고 맑은 꼬리곰탕을 먹을 것이냐, 진하고 구수한 우족탕을 먹을 것이냐, 그것이 문제로다.'


고민에 빠져있는 김고로에게 곰군이 또 다른 고민을 던진다,


"형, 우리 아롱사태수육 먹을까요? 아니면 이 꼬리찜 먹을까요?"


"어, 어? 그것까지 먹으려고?"


"네, 형 오셨는데 제가 오늘 크게 낼게요, 드세요."


"야 이러면 너무 고마워서 어쩌냐."


"그리고 저는 꼬리곰탕 먹을게요, 형은 뭐 드실래요?"


"으음.... 나는 고민 중인데... 둘 다 먹어보고 싶어서. 좋아, 나는 우족탕 시킬 테니까 서로 조금씩 나눠먹자."


"그래요!"


나는 홀을 담당하시는 직원을 통해서 주문을 하고서도 메뉴는 치우지 않고 계속 읽었다, 입에서 여운이 길고 진한 쇠고기의 맛이 남겨질 거라고 생각하여 솔향주나 청주와 같은 깔끔한 맛의 한주를 마시면 극락의 맛을 볼 거라고 생각했지만 알코올과 친하지 않은 우리는 극락의 문턱에서 발걸음을 멈추고 얌전히 우리의 식사를 먹어야 하는 것이 아쉬울 뿐이었다.


'아... 상쾌하고 깔끔한 솔향주 딱 한, 두 잔 정도만 먹을 수 없는 것은 아쉽구먼.'


배추 겉절이와 깍두기, 양파절임 등이 밑반찬으로 나오니 배가 꽤나 고팠던 우리들은 겉절이와 깍두기에 젓가락을 던진다. 쇠고기 육수가 근본이 된 음식으로 된 해장국, 설렁탕, 곰탕 등의 집은 대부분 김치와 깍두기가 굉장히 맛있는 것이 일반인데, 우미집1947도 그럴 거라는 생각을 하며 붉은 배추와 무조각을 입에 넣는 김고로.



아사삭 사각사각


"으음!"


"으으으음!"


김고로와 곰군의 입에서 동시에 확신의 음성이 나오며 미간이 잠시 찌푸려진다, 진실이다. 겉절이는 짭짤하면서 매콤하며 약간의 달콤함이 버무려진 맛, 깍두기에서는 깊은 시원함과 달콤함이 정육면체로 잘려 나온 무조각의 중심부에서부터 콱! 터져 나오며 여기에 밥만 먹어도 맛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역시 곰탕집이라서 그런지 김치 맛있네."


"김치부터 이미 맛있는데요?"


안 그래도 굶주려 있었던 두 사람의 입에 김치가 들어가니 분수처럼 입안에서 침이 솟아 나온다. 다행스럽게도 금방 그들의 눈앞에 등장한 꼬리곰탕과 우족탕. 냄새만 맡아도 끈적하고 구수한 꼬리곰탕과 우족탕의 국물이 눈처럼 소복하게 쌓인 다진 대파 밑에서 일렁인다.


"곰군, 얼른 먹자. 들어, 들어."


"네, 형도 얼른 드세요."


친절한 곰군은 함께 나온 여분의 공기에 자신의 꼬리곰탕 국물과 살이 두툼하게 붙은 꼬리뼈를 하나 덜어서 나에게 건네준다. 꼬리뼈에 살이 실하게 붙은 것이 제발 먹어달라고 맑은 육수를 한없이 흘린다.


'이걸 안 먹으면 나는 나쁜 김고로겠지.'


우미집1947의 꼬리곰탕


일단 반짝거리는 놋수저를 들어서 꼬리곰탕 국물을 두어 번 떠서 먹어본다.


후루룩


"어엇"


가볍고 깔끔한 질감의 육수가 혀와 입천장에 감돌자마자 진한 단맛의 감칠맛에 놀란 미각이 뇌까지 정복해 버려 잠시 뇌정지가 온다. 이건 설탕의 맛이 아니다, 인공 감미료의 맛도 아니다. 소고기의 살코기에서 진하게 우러나온 감칠맛과 함께 나오는 고기의 단맛이다, 거기에 가볍고 진하게 입안에 남는 여운이 계속 손이 간다.


"이 국물 달콤한 게 엄청난데."


"진짜 맛있어요."


김고로와 곰군은 말 한마디만 하고서는 다시 곰탕의 세계로 빠져든다, 꼬리뼈 사이사이에 숨어있기는커녕 이미 자신들의 존재를 드러내놓고 있는 쫄깃하고 부드러운 살결은 달콤한 국물을 잔뜩 머금고 입안에 육수를 투하하고서는 목젖을 스치고 넘어간다. 이전에 충무로의 온수반에서 이런 살코기를 잔뜩 우려낸 달콤한 국물을 먹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곳의 육수와 조금 다른 점은 단맛과 감칠맛이 비슷한 비율로 입안을 휘감는 것과 우육 속에서 새어 나온 지방의 맛, 고소한 기름맛이 입안에서 '쩌억'하고 끈적할 정도로 섞여있다는 것이다.


"소꼬리가 이렇게 맛있는 줄은 몰랐는데, 간장에 쪄낸 소꼬리찜보다 맛있어."


"저도 소꼬리곰탕 처음 먹어보는데 계속 들어가네요."


소꼬리의 살코기가 입에서 녹는다


곰군은 내가 조금 덜어준 우족탕을 이미 먹어치운 채 꼬리곰탕에 얼굴을 박고서 후루룩후루룩 밥을 곰탕 국물에 말아서 김치들을 곁들여 먹고 있다. 나도 나의 우족탕을 즐겁게 즐겨볼까. 국물과 파를 곁들여서 한입 먹는다.


사각사각


입안이 끈적거릴정도로 우족에서 나온 콜라겐에 점령당한 육수가 치아와 잇몸 사이로 쩍쩍 달라붙는다. 오랜만이다, 이렇게 국물을 뜨는 것만으로도 숟가락과 육수 사이의 액체가 끊어지지 않는 진한 육수. 이러한 육수를 어디에서 마지막으로 먹었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그만큼이나 끈적한 육수는 오늘날 그리 쉽게 찾을 수 있는 고기국물은 아니다. 아마도 주문진이나 원주의 어느 국밥집이었던 것 같다, 끈적한 국물은 그만큼이나 내 기억 속에 들러붙은 음식들을 불러온다.


'다진대파의 향긋한 풍미가 코로 들어오면서 구수하고 깊은, 이 끈적거리는 맛은 우족이 너덜거릴 정도로 끓여져서, 그 콜라겐에서 우러나온 식감이겠지.'


우미집1947의 우족탕


나는 곧이어 잘 삶아진 우족 힘줄에 국물과 파를 곁들여서 다시 입안에 넣는다. 쫄깃하고 부드러운 힘줄이 그렇게 단단한 소의 발을 지탱하던 것이었나 의심이 갈 정도로 입안에서 탱글거리며 씹힌다. 달콤하고 가벼우며 감칠맛이 터지는 소꼬리곰탕에 이어 입안에서 나가지 않고 쩍 달라붙어 끈적이는 무겁고 깊은 맛을 자랑하는 구수한 우족탕의 국물에 감동을 받아버리는 김고로.


"우족탕은 무겁고 구수하네, 찐득한 이 맛은 반갑고 또 반가워."


"형이 맛있게 드시니까 좋네요."


"맛있다마다, 감동적이지."


쫀득한 콜라겐 덩어리


달콤하고 끈적한 소고기 국물에 코를 처박고서 먹는 김고로와 곰군 사이로 세 번째 메뉴인 아롱사태수육이 영롱한 자태를 뽐내며 내려온다.


"아롱사태수육 나왔습니다. 부추를 올리고 여기 간장을 살짝 찍어서 드시면 더 맛있습니다."


얆게 저며진 아롱사태수육은 살코기와 지방이 적절하게 섞여서 음양, 태극과 같이 균형을 이룬 동그란 모양새, 그 밑에 깔린 부추를 함께 잡아서 간장에 콕 찍어 먹는다.


아삭아삭


으적으적


'부추의 식감과 씹히는 식감에 부드럽고 쫄깃한 사태수육, 그리고 달콤하고 짭짤하며 매콤한 고추가 섞인 간장까지. 아아, 깔끔한 술 한잔으로 마무리했으면 완벽 그 이상이었겠어.'


우미집1947의 아롱사태찜


술도 잘 못 마시는 김고로이지만 우미집1947에서 소고기를 먹을 때만큼은 약간이라도 마시고 싶어 했다. 쇠고기의 식감과 치아 사이에서 새어 나오는 육즙과 기름 맛에 알싸한 부추의 풍미가 더해지고 거기에 달콤 짭짤하며 매콤한 소스가 살짝 올라가니 서로 식감과 맛 사이에 견제와 조화가 이루어지며 나는 다시 눈을 감는다. 고개가 끄덕여진다. 김고로는 눈을 감고 고개를 천천히 끄덕이면서 천천히 아롱사태와 부추와 간장이 서로 맞물려 진정한 맛의 극락, 맛의 우주로 뻗는 순간을 경험한다.


부추와 간장, 김치와도 잘 어울리는 아롱사태찜


소꼬리곰탕과 우족탕으로 하얀색의 백지의 땅을 깔고, 부추와 김치로 하늘을 열고, 아롱사태와 간장으로 태극과 음양을 세워 김고로는 소의 울음소리가 메아리치는 우주에 둥실 떠서 유영한다.


'행복한 맛이다, 그릴에서 잘 구워진 레어 스테이크보다 더 기쁨을 주는 맛이군.'


곰군은 곰군대로 자신의 앞에 주어진 꼬리곰탕의 단맛에 빠져 뚝배기의 검은 블랙홀로 빨려 들어갔고, 나는 나의 우주에 빠져 끈적한 우주에서 육수가 가득한 검은 공간의 유영을 마쳤다.


"덕분에 잘 먹었어, 곰군."


"국물이 굉장히 맛있어서 계속 먹기만 했네요."


"식당에서는 잘 먹는 게 예의니까, 잘했어."


"이제 육수만큼이나 맛있는 커피 드시러 가시죠."


"그럴까."


곰군과 나는 맛있는 고깃국물과 쌀밥을 주신 우미집1947의 직원분들께 감사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조선시대에서 다시 21세기의 서울 연남동으로 문을 열고 발걸음을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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