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고로 Jun 01. 2024

[미식일기] 꽈배기가 맛있는집, 강릉

사장님의 자부심을 튀겨 넣은, 제목이 곧 맛, 더 이상의 설명은 생략한다

이제는 김고로의 전 전 직장이 있던 시장으로 들어가는 길목, 강릉시내로 관광을 오는 차들이 모두 강릉에서 제일 교통량이 많은 어느 대형 유통사 앞 오거리를 지나 시장의 주차장으로 돌입하기 때문에 평일 오후와 공휴일들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연휴가 되면 오거리부터 중앙시장 공영주차장, 월화거리를 가로질러 택시부광장에서 시장골목이 끝날 때까지 거대한 주차장이 조성된 것을 볼 수 있는 곳이다.


H유통사의 주차장으로 들어가려는 차량들과 시장으로 들어가려는 차량들이 서로 머리를 들이밀고 아웅다웅 다투는 탓에 시장과 그 주변 골목과 근처 남대천의 공원에 몰린 어르신들 인파로 시장과 H유통사 인근은 조용할 날이 거의 없다. 시장으로 들어가는 골목을 따라 들어가면 원래는 이런저런 밥집과 상점들이 몰려있던 상점가였지만 이제는 조금 더 유행의 물을 먹은 대게집, 꽃집, 안경집, 빵집, 카페 등등 작고 큰 점포들이 어깨를 마주하고 있는 그 사이로 통유리를 사장님의 자부심 넘치는 말들로 장식해 놓은, 주변의 분위기와는 동떨어진 외관을 가진 꽈배기 전문점, '꽈배기가 맛있는 집'이 자리하고 있다.


이전에 이쁜 그녀에게서 '여태 것 먹은 꽈배기 중에 제일 맛있는 꽈배기였다'라는 평가를 받았었고 이전 단골카페의 사장님이었던 구사장님께서는 '사장님이 그리 친절하시지는 않지만 꽈배기 하나를 먹기 위해서라면 감수하고 가볼 만한 집'이라는 말을 김고로에게 남기셨었다. 그래서 머릿속에서는 '한 번 가봐야지'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실제로는 최근에 방문을 해보기 전까지는 가지 않았다. 평소 식생활에서는 정제된 탄수화물과 액상과당 등을 멀리하는 김고로이기 때문에 정제된 탄수화물을 반죽하여 기름에 튀기고 설탕까지 잔뜩 묻혀낸 한국식 디저트를 달가워하지는 않은 것이다.


김고로가 꽈배기가 맛있는 집을 처음 방문한 날은 오늘로부터 그리 오래지 않다. 김고로가 사랑하는 식재료로 손꼽히는 메밀을 전통 면틀로 내려서 시원한 동치미에 말아주는 권오복 메밀국숫집을 이쁜 그녀와 방문하여 집으로 가면서 산책도 할 겸 시내로 걸어오던 길이었다. 권오복메밀국수 집에서 큰 다리로 남대천을 건너서 H유통사 근처를 당연히 지나가게 되는데 이쁜 그녀의 시선에 꽈배기가 맛있는 집이 포착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어, 꽈배기다! 나 꽈배기 먹을래!"


메밀국수로 점심도 맛있게 먹었으니 후식은 무엇으로 먹을지 김고로는 이쁜 그녀와 이런저런 달콤함에 대해서 논의하던 중이었는데 꽈배기가 맛있는 집을 보자마자 이쁜 그녀는 김고로의 손을 잡고서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 나갔다. 사실, '꽈배기가 맛있는 집'의 외관은 그리 손님을 환영하는 모습을 하고 있지 않다. 옅은 갈색 배경에 흰 글씨로 상호를 알리는 큰 간판에 통유리로 된 벽과 문에는 2016년의 어느 날이 이 꽈배기가 맛있는 집에서 '역사적'으로 첫 꽈배기가 튀겨진 날이라는 사장님의 자부심 넘치는 문장이 큼지막하게 붙어있고 그 외에는 가게 내부로 들어오는 자연광을 막은 흰 천들로 장식이 되어있기에 가게 안에서 누가, 무엇을, 어떻게 요리해서 얼마에 파는지 알 수가 없지 않겠는가. 아마도 이것이 이곳의 꽈배기를 한 번이라도 먹어본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가게의 문을 열고서 들어오고 싶은 마음이 들지 않을 이유라면 이유겠지.


이전에 혼자서 혹은 친구들과 꽈배기가 맛있는 집을 방문해 본 이쁜 그녀는 내 손을 잡고서 말끔하고 둥글게 빛나는 스테인리스 손잡이를 잡고서 힘차게 열고 입장한다.


"어서 오세요. 꽈배기 드릴까요?"


가게에 들어가니 가게 벽과 주방의 타일들마저 흰색으로 보이는 착각이 들었다, 사장님께서는 앞치마를 입으셔서 그런 건가나. 안쪽에는 꽈배기를 만드는 재료인 밀가루를 포함한 이런저런 재료의 포대들과 반죽기, 사장님이 서계신 뒤에서는 커다란 튀김기가 열기를 내뿜고 유리로 진열장 안에는 넓고 깊이가 얕은 스테인리스 바트에 키친타월이 깔려있고 이제 꽈배기가 튀겨 나왔는지 노릇노릇한 색감과 자태를 뽐내며 사장님이 붉은색 헤어드라이기로 뿜어주는 찬바람으로 몸을 식히고 있다. 어린아이의 팔뚝보다 얇은 굵기의 꽈배기가 두어 번 정도만 크게 꼬인 모습으로 두툼한 부피를 자랑하는 꽈배기, 식혀진 꽈배기들은 옆에 놓인 스테인리스 위에 백설탕과 계핏가루가 눈과 흙이 섞인 겨울날의 옛날 운동장처럼 소복이 쌓인 곳에서 뒹굴다가, 손님에게 판매될 준비가 되면 된 꽃가루를 흠뻑 맞은 상태로 황토색종이봉투에 담겨서 나오게 된다. 여기까지 봤으면 이미 눈치를 챘겠지만, 가게 이름 그대로, 이곳의 메뉴는 꽈배기 하나뿐이다.


"네, 잠시만요... 음..."


"왜? 무얼 고민해? 여기 꽈배기만 파는 곳인데."


"너 얼마나 먹을 거야? 몇 개 살지 생각 중이야."


꽈배기는 먼 옛날, 동유럽에 있는 어느 양반이 전쟁을 일으켜서 밀가루 값이 폭등하기 전, 한 개에 500원이라는 저렴한 가격에 팔았다고 하지만 지금은 1개당 1000원이라는 여전히 저렴한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 3개를 사면 3000원이지만 6개를 사면 5000원, 11개를 사면 10000원이라는 가격설명에 당연히 많이 살 수록 좋다는 얘기, 그렇다, 맛있는 음식은 많이 사서 먹을수록 더 좋지.


"그러면 모자란 것보다 남는 것이 낫지, 6개로 진행시켜."


"사장님, 6개 주세요!"


"네~ 6개 드릴게요!"


3개보다는 비교적 더 많은 숫자의 꽈배기를 구입하는 손님의 결정에 사장님이 함박웃음을 짓는다, 황토색 봉투에 '꽈배기가 맛있는 집'이라는 상호와 사장님의 전화번호가 적힌 스티커가 붙었다. 꽈배기의 가격을 안내해 주는, 주방 타일벽에 붙어있던 종이 옆에는 '5개 이상 구입하시는 경우, 미리 예약해 주시면 기다림 없이 포장 가능합니다'라는 친절한 안내문이 붙어있었던 것을 기억하면 꽈배기집 사장님의 전화번호를 스티커에 적어 놓은 것이 괜한 일은 아니구나 하는 이해를 하게 된다.



꽈배기가 맛있는 집 사장님께 꾸벅 인사를 드리고 가게를 나오며 옅은 회색의 대리석처럼 보이는 인도 위를 걸으며 휴일이라 많은 사람들이 모여있는 월화거리 쪽으로 걸어가며,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각자 3개의 꽈배기를 담은 종이봉투에서 두툼하고 짙은 금빛으로 노릇하게 빛나는 꽈배기를 검지와 엄지 손가락 집게 사이로 살포시 집는다.


"앗 뜨거워!"


"조심해, 조금 뜨겁네."


꽈배기가 조금 뜨겁다는 것은 꽈배기가 갓 나왔다는 이야기이고, 꽈배기가 갓 나왔다는 이야기는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산 꽈배기가 매우 맛있을 예정이라는 징표. 밖으로 나오기는 부끄러운 마음에 아직 뜨거운 꽈배기의 심정을 이해하며, 조금 시간이 지나서 꽈배기의 달아오른 몸이 따뜻한 정도가 되었을 때에 이쁜 그녀와 김고로는 다시 푹신한 꽈배기의 몸을 손가락 집게로 집는다. 아, 부슬부슬하고 솜과 같은 이 꽈배기의 촉감, 맛있음을 보장하는 촉감이 손가락으로부터 짜릿하게 말초와 중추신경을 통해 뇌까지 전해진다. 그 촉감을 느낀 뇌는 바로 다음 명령을 김고로의 손과 입에 전달한다, '빨리 먹어봐!'



바삭 쫄깃쫄깃


처음 입술과 앞니를 통해서 느껴지는 잘게 튀겨진 꽈배기 입자들의 바삭바삭한 겉면에서 얇은 꽈배기의 튀김면이 부서지는 소리가 나면서 갓 나온 두부를 먹는 듯한 매끄럽고 부드러운 탄수화물 반죽이 입천장과 혀를 통해서 동시에 느껴진다, 혀에 미리 안착해 있던 계피와 설탕가루가 그제야 서둘러 꽈배기의 반죽 식감을 좇아오며 입안으로 돌진.


"우와!"


위선과 가식과 거짓 없는 순수한 웃음이, 설탕 묻은 꽈배기 하나로 김고로의 얼굴에서 번쩍 터져 나온다. '여태 것 먹었던 꽈배기 중에 가장 맛있는 꽈배기'라는 이쁜 그녀의 찬사는 이 꽈배기에 대한 칭찬으로 부족하다, 몇 년 전 전국을 휩쓴 튀긴 꽈배기 유행을 이끈 체인점의 본점이 이 꽈배기 집이 될 수도 있었고 한국을 넘어 한국인이 아닌 다른 나라의 사람이 먹어도 맛있다는 반응을 보일 맛이다. 꽈배기 하나로 이렇게 기쁠 수가 있나.


"맛있지? 나도 오래전에 왔어서 오래간만에 먹는데 정말 맛있어."


"여기를 내가 왜 더 일찍 오지 않았을까."


"안 먹어봤으니까."


"어, 그건 맞지... 인정."


다시 한번 참지 못하고 꽈배기를 깨무는 김고로, 바삭한 튀김의 겉면이 다시 그의 입을 덮친다.


바사삭


으적으적 쫄깃쫄깃



바삭하게 으깨지는 꽈배기의 겉면은 설탕, 계피와 어우러져 마치 크림브륄레의 어두운 설탕은 톡톡 깨서 부숴 먹는 맛을 가졌다, 정제된 순수한 달콤함은 자주 먹으면 신체 건강에 중대한 위해를 가할 수 있지만 이렇게 아주 가끔 먹으면 중대한 즐거움을 가져온다.


"꽈배기 안이 진한 바닐라 아이스크림처럼 샛노랗네. 찹쌀가루랑 밀가루로만 튀기는 것이 아니라 옥수수가루와 다른 것들이 더 들어갔겠지."


"씹으면 씹을수록 고소해."


바삭함에 숨어있던 튀김 식용유 고유의 고소한 맛이 꽈배기 반죽에 얼굴이 노랗게 질려 숨어있는 옥수수가루의 특유 고소함과 함께 어울려 꽈배기가 덜 익은 반죽이 아닌가 오해를 할 정도로 어금니 사이에서 쫄깃하게 저작운동을 촉진하고 씹을 때마다 옥수수 특유의 풍미와 맛이 뿜어져 나온다. 밀가루로만 반죽되어 튀겨진 꽈배기가 시간이 지날수록 조금씩 뻑뻑하고 질겨져 씹기 어려워 '맛이 없어'짐과는 다르게 시간이 지나도 처음 나온 것처럼 부드럽고 쫄깃하다, 매끈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바삭하고 쫄깃하며 달콤하고 고소하다, 인간이 좋아하는 대부분의 맛과 식감을 다 갖고 있는 간식이다. 시장에서 판매하는 찹쌀도넛도, 조금 더 달콤하지만 오늘날까지 인기 있는 한국인의 간식으로 남아있는 이유겠지.


쫄깃하고 바삭하며 달콤한 꽈배기에 홀려서 순식간에 함께 먹기 위해 샀던 꽈배기 6개가 사라졌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의 입 속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 것이다. 이럴 때면 항상 후회가 몰려온다.


"아, 그냥 한 11개는 무슨, 20개 넘게 잔뜩 사서 집에 가서 두고두고 먹을 걸."


"그럴걸 그랬나. 맛있지?"


"응, 맛있다를 넘어서 환상적이네."


꽈배기를 잃어버린 종이봉투 속 설탕과 계핏가루들이 김고로가 붙잡고 위아래로 움직일 때마다 함께 움직여 찰랑찰랑 소리가 난다. 달콤한 찰랑거림과 함께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강릉 월화거리의 버스정류장으로 향했다.

작가의 이전글 [미식일기] 도화루, 강릉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