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건 중화요릿집의 팔보채와 지마고, 교대에서 커피 향을 뿜는 건물
추석 연휴라서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부산의 이곳저곳을 자유롭게 돌아다니기는 시간에 제약을 받지 않으니 참 좋았으나, 우리가 자유롭다고 해서 우리가 원하던 음식점을 모두 방문할 수 있다는 생각은 방심이었다. 동래에서 숙소를 알아보면서 함께 검색했던 그나마 괜찮을듯한 식당들은 추석 연휴에 함께 쉬는 집들이 많다는 점은 강릉의 식당 및 카페들과 비슷한 점이 많았다. 그렇다, 연휴 동안에 손님들을 받아서 더 수익을 낼 기회를 엿볼지 아니면 연휴에 맞춰 적당히 쉬면서 조상님께 차례도 지내고 가족들의 얼굴도 보는 시간을 보낼지는 자영업자라면 누구나 겪는 갈등이겠지. 그중에서 김고로는 추석 연휴에도 일을 하시기로 결정한 사장님들의 결정에 보탬이 되는 일을 하는 사람이고.
동래의 숙소 근처에서 버스를 타러 나가면서 눈에 금방 띄는 식당 이름이 하나 있었으니, 딱 들어도 '음, 여기는 중화요리를 팔겠군'하고 고개를 끄덕이게 되는 '지썅지썅'이라는 중화요릿집이다. 한번 들으면 뇌리에 딱 꽂히는 이름도 이름이거니와 그리 규모가 크지 않은 집이 꽤나 오랜 시간 동안 살아온 외관을 보이기에 김고로의 정보력을 활용하여 알아보니 부산에서는 고기를 사용하지 않는 비건 메뉴를 제공함으로 유명한 중화요릿집. 샐러드바나 브런치를 하는 식당도 아닌데 '중화요리가 굳이?'라는 생각을 했으나 이곳의 단골로 보이는 사람들이 표고버섯탕수육이나 고기가 들어가지 않은 요리, 식사류를 먹은 사람들은 엄청난 만족감을 표하고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김고로는 지썅지썅에서 비건 중화요리 메뉴를 먹었느냐? 아니다, 김고로는 채식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에 굳이 그런 메뉴를 택하지는 않았다. 물론 표고버섯탕수육과 채식 짜장면은 구미가 당기는 메뉴이기는 하지만 김고로 혼자 먹는 식사 시간이 아니니까. 이쁜 그녀와 함께 김고로의 어머님을 모시고 지썅지썅에 들어서니 추석 당일이라면 모를까, 전날의 저녁이라서 그런지 손님은 우리를 제외하고는 1팀이 전부였고 그 외에는 배달주문이 들어왔다는 알림음이 끊임없이 울리고 있었다. 이 글에서는, 김고로가 지썅지썅을 다녀오면서 촬영했던 사진 중에 지금도 보면서 입맛을 다시게 했던 메뉴들을 소개하려고 한다.
지썅지썅에서 먹었던 요리류에서 지금도 사진을 보면서 침을 흘리게 하는 음식은 단연코 팔보채, 음식의 이름대로 여덟 가지의 귀한 재료만 들어간 음식이 아니라 여덟 가지 이상의 푸짐한 수의 재료들이 다진 마늘의 알싸함이 알맞게 튀는 향신료 기름들에 버무려져 어떤 재료를 씹어먹든 그 끝에 묘한 감칠맛과 부드럽게 깔끔한 마무리를 낸다. 일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오징어, 새우, 청경채, 표고버섯, 죽순에 더해서 알배추, 파프리카, 낙지, 동태살, 브로콜리, 소라, 목이버섯, 은행 등이 더 들어가서 섞였으나 그 재료들의 합이 맛의 균형을 꽉 잡아준다. 고춧기름, 마늘, 참기름으로 이어지는 향신료들의 방정식에 어우러져 완벽한 값을 내는 음식이 지썅지썅의 팔보채다.
그리고 마늘이 많아서 입안에서 거슬릴 거라고 예상되던 김고로의 어리석음과는 달리 촉촉하며 끈적거려 느끼할 수도 있겠다는 표면적인 선입견을 와장창 부수는 과도할 정도로 많은 다진 마늘 덕분에 참기름과 고춧기름의 맛을 극강의 고소함으로 끌어올려 글을 쓰는 지금도 지썅지썅 팔보채가 혀를 꽉 잡아서 끌어당기던 그 맛을 상상할 수 있을 정도다. 일반적인 팔보채가 아닌 지썅지썅의 연륜이 가미된 '지썅지썅식' 팔보채다. 별다른 기대 없이 '어머니가 팔보채를 좋아하니까' 가볍게 팔보채를 주문한 김고로는 기대 이상의 만족감을 얻었다.
처음 무얼 주문할지 메뉴판을 보던 김고로는 식사 후에 디저트처럼 먹을 수 있는 메뉴가 무엇이 있으려나 보다가 중화요릿집에서 으레 자그마한 디저트로 내놓는 작은 옥수수빵인 '옥수수빠스'가 아닌 중국식 깨찰빵인 '지마고'의 이름을 보고는 잠시 고민 후 주문을 결정했다. 고급 중화요릿집의 코스메뉴를 주문한다고 하더라도 김고로가 방문했었던 대부분의 집들은 지마고보다는 옥수수빠스를 내놓기 때문에, 지마고가 김고로의 눈에 더 들어옴은 당연지사.
중국에 거주할 시절에도 몇 번 먹어보지 못했던 음식이다, 동글동글한 작은 찹쌀공 안에 달콤하고 비단처럼 부드러운 팥앙금이 바삭바삭한 찹쌀튀김 그리고 톡톡 터지는 깨알들이 서로 시너지 효과를 내는 식감. 오래간만에 보는 오랜 친구와 악수하는 기분인 김고로였다.
바사사삭
와작와작
한입에 세 가지의 식감을 한꺼번에 맛볼 수 있는 지마고는 단팥을 싫어하지 않는다면, 누구나 좋아할 메뉴다. 찹쌀튀김옷과 통깨가 함께 입으로 들어오지만 바삭하게 튀겨진 겉면이 치아의 표면과 만나며 불꽃처럼 파바바박 튀는 바삭함에 뒤이어 달달한 팥앙금이 무스처럼 매끄럽게 혀의 돌기들 위에서 뛰어논다, 동시에 통깨가 어금니들 사이에서 불꽃놀이처럼 팡팡 터진다. 바삭거림과 파박파박 터지는 식감들이 바삭함과 쫄깃함, 고소함을 사랑하는 한국인들의 입맛 취향을 저격한다. 그렇기에 김고로는 결국 고개를 끄덕이며 '주문하기를 잘했어, 내 선택은 틀리지 않았군'이라며 자화자찬으로 식사를 마쳤다.
그 전날, H군과 식사를 하면서 '교대 쪽에 항상 눈에 띄는 커다란 건물의 카페가 있다'라는 말을 듣고는 한번 가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숙소인 동래에서 가까운 교대 앞의 모노스코프에서 커피타임을 갖기로 하고는 방문했었다. 엘리베이터가 설치되어 있는 5층 건물 전체가 하나의 커피 회사인 '모노스코프'. 1층에서는 판매와 카운터, 3층의 홀을 제외한 다른 층은 창고, 로스터리실, 연구실, 강의실 등으로 사용하고 있었다. 이전에 강릉에서 마시고는 반해버렸던 원두인 핑크버번, 옐로허니 등 익숙한 싱글 오리진 원두들을 판매하고 있었기에 신난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집에서도 마시고 싶은 드립백으로 잔뜩 사 왔다는 사실은 안 비밀.
김고로가 커피에 대해서 많은 식견이 있는 사람은 아닌지라, 이런저런 얘기를 하기는 어렵지만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고른 과일의 산미와 달콤함이 우러나온 드립커피는 원하고 기대하던 커피의 풍미를 즐기기 충분했다. 드립커피를 선호하시는 분들이 방문하면 만족스러울 거라고 예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