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이 번쩍, 침이 꼴깍, 혀가 화들짝, 고기와 치즈의 원초적 핵펀치
종로 5가에서 쌀국수 한 그릇과 반쎄오로 잠시 베트남의 맛과 정취를 만끽한 피자대장님과 김고로. 지하철을 타고서 이동하면 그리 멀지 않은 용산구 이태원으로 향했다.
피자대장님이 방송인 겸 요리사, 외식사업가로 유명한 '홍선생님'의 도움으로 서울 이태원에서 샌마르 피자의 팝업 행사를 했었던 이태원의 어느 점포 근처에 있는 수제버거집을 가기 위함이었다.
피자대장님과의 일정은 종로 5가에서의 점심을 제외하면 모두 이태원에서의 식도락 탐방으로 짜여있었기 때문에 동선을 고려하면 매우 괜찮은 선택.
"거기가 유명한 외식 컨설팅 유튜버인 'ㅇ'씨가 다녀가기도 했던 집이에요."
"그래요? 수제버거는 제가 워낙 좋아해서요. 기대되네요."
피자대장님과 김고로는 이태원역의 지하철 출구에서 빠져나와 시원하게 뚫린 이태원의 도로를 따라서 걸었다. 화요일, 평일 낮의 이태원이었기 때문에 김고로가 생각했던 인파는 없고 '한적하다'라는 표현을 써도 부족할 만큼 방문객들이 보이지 않는다.
"제 생각보다는 사람이 없네요. 평일이라 그런가?"
"이전에 그.. 안타까운 사건이 있고 나서 상권이 더 죽기도 했고요, 아직 평일의 낮 시간이니까요."
김고로는 피자대장님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면서 주위를 둘러보며 걸음을 옮겼다. 역시나 이태원이라 그런지 태국, 터키, 중국, 인도 등 다양한 국적을 가진 식당들과 카페들이 이태원을 가로지르는 도로 양옆에 즐비했지만, 그만큼이나 대형 프랜차이즈 식당들과 카페들도 사이사이에 눈에 띄었다.
'내가 이태원을 마지막으로 방문했을 때가 거의 15년 전이니, 풍경이 변한 건 당연한 거구나.'
그때 당시 막 고등학교를 졸업한 김고로는 혼자 서울을 여행하던 중, 용산역에서 길을 잃은 외국인 관광객 무리를 만나게 된다. 마침 자유롭게 돌아다니고 시간도 많았던지라, 그날, 한국말을 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관광객들에게 음식과 교통비를 지원받으며 함께 이태원과 서울시내를 돌아다녔던 추억에 잠시 잠긴 김고로였다.
대장님과 김고로는 어느덧 이태원의 중심상권이라고 할 수 있는 지역에 들어섰고, 피자대장님은 김고로를 자신이 이전에 팝업을 진행했었던 비탈길 골목으로 안내했다.
"여기가 제가 팝업 했던 자리죠."
피자대장님의 사업에 많은 도움과 멘토가 돼주고 있는 '홍선생님'의 사진이 떡하니 걸려있는 점포는 이제 이자카야가 들어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공사가 한창이 그 점포를 보며 곧 들어올 식당이 잘되기를 바라보는 김고로였다.
아스팔트와 시멘트, 벽돌들로 이루어진 건물과 원룸, 담장을 따라서 조금 더 내려가다 보니 피자대장님이 양고기 꼬치가 맛있다며 귀띔해 주는 중국요릿집을 지나서 주황색 외관과 어닝, 부엌으로 크게 뚫린 창과 대기석이 인상적이 '벅벅' 이태원점이 나타났다.
수제버거가 수줍게 웃고 있는 그림이 걸린 울타리 너머에 주황색 의자들이 도열한 대기석과 그 너머로 보이는 검은 조리복을 입은 점원들. 인조잔디가 깔린 낮은 계단을 지나서 올라가면 좁고 길쭉한 주방이 보이고 계산대 앞 키오스크에서 주문을 한다. 방금 점심을 먹고 온 그들이지만 다시, 그 어떤 식사도 하지 않은 것처럼 자연스럽게 주문을 시작했다.
"저는 패티 1장 들어간 벅벅 버거로 할 건데, 고로님은 어떤 걸로 드시겠어요?"
김고로는 잠시 고민했다, 쇠고기 패티와 치즈를 넣은 버거를 잘하는 곳이면 '더블'이 정석이라 믿는 그. 이제 막 점심을 먹고 왔기에 어느 정도 배가 차 있기에 1장이냐 2장이냐는 어려운 고민이었지만, 금방 결정해 버린다.
"치즈버거는 무조건 더블이죠. 더블벅 버거로 가겠습니다."
"와, 드실 수 있으세요?"
"감자튀김을 추가하지 않으니까 괜찮아요, 음료수는 닥터페퍼로 할게요."
주문을 마친 그들은 점원의 안내를 받아서 '벅벅 대기공간'으로 향했다. 그곳에 앉아있다가 번호표가 주문완료로 뜨면 픽업을 하는 일반적인 패스트푸드점과 같은 셀프서비스였다.
"아까 내려오다가 주황색 틀과 의자들 놓여있던 빈 공간 있죠? 거기로 가면 됩니다."
"아하, 거기가 사람이 없을 때에는 이런 용도군요."
벅벅의 주문이 몰리는 시간대에는 인파들이 버거를 픽업하기 위해 대기하는 용도로 쓰이는 공간이지만 오늘과 같이 한적한 날에는 홀처럼 식사 장소가 되는 벅벅의 대기공간. 주황색의 낮은 의자들과 노란색의 테이블, 그리고 하얀 벽과 천장은 벅벅에 방문한 손님들의 애정이 담긴 스티커노트로 도배가 되듯이 한 광경.
"이야 저 천장에는 어떻게 저걸 붙였데."
"키가 엄청 큰 사람이 있었거나 의자를 놓고 올라간 게 아닐까요."
"그러게요, 납득되는군요."
피자대장님과 귀여운 의자와 식탁에 마주 보고 앉아서 식당과 SNS에서 화제 되는 곳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주문현황을 알려주는 천장에 매달린 모니터에 우리의 번호가 '띵동'거리면서 반가운 소리를 낸다.
"먹어볼까요, 진짜 군침 싹돌게 생겼네."
"더블버거는 정말 외모가 깡패예요. 이 육즙, 흐르는 치즈. 흥분되는군요."
하-압
우적우적
아직 다 굳지 않고 끈적이며 흐르는 치즈의 고소하고 짭짤한 맛이 혀와 입안을 먼저 덮고 그 위로 육즙이 은혜롭게 흐르는 쇠고기가 치아 사이로 갈라지며 내 혀에 육향 세례를 하사한다.
혀 위로 쏟아지는 치즈와 버거의 풍미 폭격에 한입만에 김고로의 눈이 번쩍 뜨이며 입에는 미소가 번진다.
"우와, 이 씨...!"
"미쳤죠? 진짜 맛있어요."
"이 버거 맛이 돌았네요."
벅벅의 치즈버거는 어떤 햄버거빵을 쓰는지 크게 상관없을 정도로 파괴적인 속조합을 쌓아두었다. 뜨끈뜨끈한 쇠고기 패티 사이에서 미처 굳지 못한 치즈가 쇠고기 패티 사이와 입안에서 끈적하게 달라붙으면서 고소함과 진한 유지방의 맛을 뿜는다.
거기에 빵과 함께 베어물리며 부드럽게 바스러지는 쇠고기 패티 사이에서 응축되어 있던 육즙과 질감들이 치아와 혀 위로 쏟아지며 소고기의 풍미를 물폭탄처럼 터뜨린다.
고기조각들 사이 틈틈이 빛에 반사되어 반짝이는 육즙들만큼이나, 더블치즈버거를 한입 베어문 김고로의 눈도 반짝이며 입과 손을 멈추지 못한다.
"거기다가 어느 쇠고기 수제버거하는 집을 가도 이런 매콤하고 부드러운 소스를 잘 쓰더라고요. 버거가 느끼하지 않게 균형을 잘 잡아주는 완벽한 '킥'이에요."
살구색으로 패티와 번 사이에서 찰랑거리며 입안을 콕콕 찌르는 소스도 넉넉하게 들었다. 매콤하고 부드럽지만 치즈와 고기의 풍미를 방해하지 않고 조화를 이루며 섞여 더블버거를 한자리에서 적어도 2개는 더 먹을 수 있게 하는 역할이다.
맨 위의 패티 위에는 패티의 면적을 덮을 정도의 작은 피클들이 새콤하고 달달한 맛을 사각거리는 훈연향으로 달달한 캐러멜라이즈 양파와 함께 고기와 치즈로 인하여 지루해질 수도 있는 버거의 맛에 상큼함을 불어넣는다.
단단하게 씹히지만 말랑거리면서 부서지는 피클이 고기와 치즈사이에서 뿌리는 신맛과 양파의 훈연향이 입안에서 섞여 철판에서 지글거리던 치즈와 쇠고기의 향기가 콧속까지 밀려 올라오는 착각이 들 정도이다.
깔끔하게 먹기 위해 비닐장갑을 한 손에 장착하고 '더블벅'을 들어 올려 먹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되었는데, 버거가 사라져 버렸다. 내 뱃속으로.
"고로님, 그걸 벌써 다 드셨어요?"
원래 잘 먹는 사람인줄은 알았지만, 점심을 이미 먹고 온 사람이, 이렇게나 빨리 먹을 줄은 상상을 못 하셨는지 대장님이 놀란 토끼눈으로 김고로를 쳐다본다.
"무슨 소리예요. 그냥 입에서 사라지던데, 먹긴 뭘 먹어요."
김고로는 치즈와 육즙으로 반짝이는 입가와 입술을 냅킨으로 슥삭 닦아내면서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시치미를 뚝 뗀다. 버거가 나온 지 10분? 15분도 안되어 증발하자 '요리는 힘들지만 식사는 한순간이다'라는 사람들의 말이 생각나게 하는 벅벅의 버거였다.
"천천히 먹으려고 하기는 했는데요, 실패했네요."
"하하하, 역시 고로님. 여기서 조금 앉아있다가 커피 한잔하러 가시죠."
"히히, 그럴까요."
하루에만 점심을 두 번 먹는 김고로와 피자대장은 버거가 가득한 미소로 웃으며 다음 목적지에 대해서 얘기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