찐빵집이 만두도 팔기 시작했는데, 오히려 김치만두 맛집이 되어버렸다.
3월 말이 지나고 4월 초가 되니 남쪽에서 만개를 하던 벚꽃의 파도가 강릉까지 밀려 올라오기 시작했다. 강릉 시내 근처 대도호부관아에 매화 무리를 보러, 이쁜 그녀와 발걸음을 한 기억이 어제 같은데. 강릉 시내는 물론 남대천 근처와 경포와 오죽헌까지 핑크핑크한 벚꽃 조직이 강릉을 주름잡으러 몰려왔다.
"고로야, 우리 선교장 근처로 벚꽃 보러 가자."
'흠.... 그래."
김고로는 꽃구경에 대한 낭만은 거의 한자릿수 정도로만 가진 사람이라 굳이 먼저 꽃구경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반면에 자연의 풍경과 철마다 달라지는 꽃과 나무 등 식물들에 대한 사랑을 가득 담고 사는 이쁜 그녀는 겨울에도 눈 오는 날 아침 밖으로 나가서 사진을 찍고, 꽃이 피는 계절마다 밖에 나가서 스마트폰이나 카메라에 철을 담는다. 음식을 좋아하는 김고로는 제철 음식으로 계절을 담는 편이라 꽃이 피는 명소 근처의 식당을 찾아서 서로의 욕구를 충족시키면서 제법 괜찮은 타협을 이루면서 꽃구경과 식도락을 함께 하는 커플.
주말이 아닌 평일에 선교장 근처 습지공원으로 꽃구경을 가기로 했기에 서로의 직장 일과가 끝나자마자 버스정류장으로 가서 선교장으로 가는 버스를 타는 김고로와 이쁜 그녀. 퇴근길이기에 길에는 차도 많고 사람도 많다. 하지만 평일이기에 주말에는 관광객들로 북적이는 오죽헌과 선교장 근처도 제법 한산하다, 어둠이 서서히 내리는 시간이지만 하루의 바쁜 일과를 끝내고 가족들 혹은 반려동물과 삼삼오오 모여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제법 많이 보인다.
"배가 고프니 식후경하자."
"그래. 저기 만두집 가기로 했었지."
원래는 대충 편의점에서 김밥이나 사서 저녁을 때우자는 생각이었으나, 김고로는 오죽헌 근처에 오랫동안 영업을 지속해오고 있는 작은 만두집을 기억하고 있다. 이전에 오죽헌 근처에서 버스를 기다리다가 배가 고파서 만두로 간단하게 요기를 해결했던 적이 있는데, 그 집의 만두들을 다시 먹어보고 싶었다. 그들은 오죽헌 버스정류장에서 내려 건너편, 오죽헌 입구를 향해 횡단보도를 건넌다. 선교장 근처 습지공원의 산책길은 이미 멀리서 봐도 분홍빛의 벚꽃잎들이 이리저리 바람에 흩날리며 제법 장관이다. 하지만 이미 배가 고픈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횡단보도의 초록불이 꺼질세라 후다닥 손을 잡고 내달려 '복마니 찐빵집.손만두'라고 쓰여있는 노랑 바탕의 검은 글씨로 쓰인 만두집 앞으로 간다. 커다란 은색 가마솥에서 찐빵과 만두를 쪄내는 복마니찐빵집손만두는 포장만 하는 가게다, 배달이나 식당에서 먹는 가게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오래전부터 같은 자리에 터를 잡고 계속 살아남아있는 이유가 다 있을 거라고 김고로는 짐작했다.
방충망으로 애지중지 보호하는 은색 찜기들 뒤로 외벽은 짙은 녹색으로 코팅된 통유리로 실내가 영업을 하고 있다는 신호만 가볍게 알린다. '찐빵집'이라는 단어 뒤에 '손만두'라는 단어가 붙은 이유는 처음에는 찐빵만을 팔다가 나중에 만두를 팔기로 하신 걸까, 궁금증이 이는 김고로였다.
"뭘로 드릴까요?"
천장 근처의 선반에 올려진 직사각형의 넓은 텔레비전에서 나오는 '6시내고향'을 보시던 주인아주머니께서 들어온 손님을 보고 반갑게 맞이하신다. 메뉴는 찐빵, 왕만두, 고기만두, 김치만두 단 4가지다. 저녁을 먹기로 했기에 김고로는 만두 종류를 하나씩 다 주문한다, 찐빵은 넓적한 빵에 심심한 느낌이 드는 단팥이 있었더랬지.
"왕만두, 고기만두, 김치만두 하나씩 다 주세요."
"네에~"
사장님은 냉장고 안에 보관되어 있던 생만두들을 꺼내셔서 찜기에 넣으신다, 김고로와 이쁜 그녀가 주문을 마치자 곧바로 가게 앞에 차를 세우고는 들어오신 손님은 김치만두를 2인분 주문하신다.
'김치만두가 맛있다고 했었나? 기억이 안 나네.'
왠지 모르게 가게에 자주 오는 느낌이 드는 손님이 다른 메뉴보다 김치만두만을 20개씩 주문하는 모습을 보니 김치만두만 주문해야 했었나 하는 불안감이 드는 김고로. 그래도 만두들의 맛이 기억이 안 나기에 다 먹어보고 싶다. 만두들이 쪄지는 시간은 그리 오래 걸리지 않는다, 5분에서 10분 사이를 기다렸을까, 스티로폼 용기에 만두들을 꾹꾹 담고 나무젓가락과 단무지, 휴대용 간장을 대여섯 개 봉투에 담아주신다. 갓 익어 나온 만두들을 챙긴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희희낙락 웃으면서 습지 공원의 벚꽃들이 단아하게 피어난 산책로의 벤치로 향한다.
"먹자, 먹자, 배고파!"
"여기 의자랑 간이 식탁이 있으니까 여기 놓고 먹자."
햇살 따뜻한 낮 시간이 아니라 찬 바람이 조금씩 걸어오기 시작하는 저녁 시간이었지만 뜨끈한 만두가 사라지는 열기를 채워주기에 괜찮다. 그들은 맨 위에 있는 도시락 용기를 열어 나온 왕만두를 잽싸게 먹어치우고는 그다음 고기만두를 연다.
생각보다 교자만두는 크지 않기에 손으로 집어서 한입에 꿀꺽 삼키듯 먹기도 편하다. 복마니 찐빵집손만두의 고기 만두소는 단순하다, 기름기가 많은 지방은 거의 배제하고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살코기와 당면, 그리고 약간의 채소로만 가득 차있다. 담백하고 부드러운 속이기에 부담스럽지 않고 심심하니 제법 괜찮다.
"제법 피가 얇고 쫄깃쫄깃해. 그렇다고 흐물거리지도 않고."
"응, 피가 맛있네."
그냥 배가 고픈 상태가 아닌 허기가 진 상태였는지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고기만두 한팩도 순식간에 먹어치운다. 그리고 맨 밑에 깔려있던 김치만두를 꺼내서 상에 올려놓는다, 이렇게 하나하나씩 꺼내서 먹다 보니 제법 코스요리 같아서 기분이 좋다.
'내가 바로 김치로 가득 찬 김치만두다!'라고 일갈하는 모습처럼 이미 만두피에서부터 울긋불긋한 단풍색을 발하는 만두들이 사이좋게 서로의 옆구리가 터지지 않게 붙잡고 가지런히 누웠다. 이미 만두 2팩을 해치웠음에도 불구하고 군침이 싹 돌아서 입안이 촉촉하게 적셔지고 있음을 감지한 김고로, 병아리를 낚아채는 솔개처럼 손으로 김치만두를 잡는다.
"으오오! 아까 그 사람이 김치만두만 2팩을 사가는 이유가 이거구나!"
"맛있어?"
복마니찐빵집손만두의 김치만두를 베어 물자마자 알싸하듯 매콤한 고추의 맛이 입안으로 훅 치고 들어옴과 동시에 깊고 시원하며 칼칼한 김치찌개와 같은 풍미가 코와 입안으로 쭉 뻗어나간다. 거기에 고기만두에서는 심심하다고 느꼈던 다진 고기 속이 김치와 어우러진 육즙으로 감칠맛을 더한다.
"여기는 김치만두가 최고봉이네. 잘 익은 묵은지에 고기 먹는 기분이야."
부드럽게 씹히는 다진 고기들의 미끌거리는 식감 사이로 김치와 당면 조각들이 사각사각, 탱글탱글 씹히며 그 사이사이로 칼칼함과 매콤함의 폭탄을 터뜨린다.
처음 먹을 때는 알아차리지 못했던 약간의 고추조각들이 칼칼함에 고급진 매운맛을 더한다. 굵은 고춧가루가 더해져서 치아 사이로 잘근잘근 씹는 식감에 다시 채소들이 아삭하게 씹히고 쫄깃한 만두피가 그 위를 다시 덮으며 마무리를 짓는다. 김치와 고기가 만나서 폭발하는 감칠맛과 깊은 맛이 입안에 침과 함께 다시 고인다.
"이걸 마지막에 먹게 되길 잘했네. 처음부터 먹었으면 다른 만두들한테 서운했겠어."
"그러게, 여기 김치만두 맛있네."
30분도 안 되어 만두를 모두 몸속으로 저장해 버린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쓰레기들을 봉투와 함께 챙겨 일어나 손을 잡고 발걸음을 떼었다.
"이제 꽃구경하면서 좀 걷자."
"그래, 식사 후에는 걸어야지."
마침 바람이 휘잉 불어 꽃비가 그들 위로 내리고, 김고로와 이쁜 그녀는 선교장 산책로의 벚꽃길로 사라져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