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일기] 스왓띠, 강릉

태국의 고향 식탁, 맛있는 '캅쿤캅'

by 김고로

중고등학교 시절부터 대학교 시절까지를 해외에서 지내다가 한반도로 넘어와서 지금은 강릉에 정착해 살고 있는 나는, 유년시절의 경험으로 인하여 한국음식뿐만 아니라 이국음식에도 입맛이 굉장히 폭넓게 열려있다.


싫어하는 식재료(물비린내 나는 오이 같은 야채, 비린 맛과 식감이 느껴지는 해산물, 삶은 달걀 등)에는 확실한 불호감을 표하지만 한국적인 음식뿐 아니라 이국적인 음식과 요리법을 매우 환영하는 바, 평소 먹는 음식도 밥과 반찬, 찌개 등이 어우러진 전통적인 한식보다는 외국의 요리, 식재료 등이 어우러진 음식들을 상당히 선호한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한식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한식도 맛있는 음식이 많지만 외국에도 워낙 맛있는 음식이 많기 때문에 이런저런 나라의 음식들을 먹다 보니 한식을 먹는 기회가 많이 줄어든 것뿐이다. 그래서 주변의 혹자들은 내가 한식을 잘 안 먹는 줄 알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나는 한식도 요리를 곧잘 한다, 손님들이 올 때에 잘 대접하지 않을 뿐이다.


강릉에는 생각보다 태국에서 오신 태국인 분들이 많이 거주하고 있어서 강릉 IC로 나가는 길에 보면 커다란 태국 식재료 마트가 있을 정도로 태국인분들의 거주 비율이 높다. 그리고 그에 따라서 당연히 태국 음식점이 2,3개 정도 있는데 내가 오늘 얘기하고 싶은 곳은 강릉 서부시장 근처에서 제법 년수가 된 태국음식점인 '스왓띠'이다. '스왓띠'는 태국말로 '안녕'이라는 뜻이라는데 음식점의 이름과 간판 자체가 이미 손님들에게 인사를 건네고 있는 친숙한 말이다.


내가 태국음식을 처음 먹었던 기억은 지금으로부터 바야흐로 20년이 다 되어가는 고등학교 3학년 시절, 국제학교를 다녔던 터라 수학여행도 꽤나 국제적이어서 우리들은 태국의 방콕으로 수학여행을 떠났었다. 태국의 커다란 바지선을 하나 빌려서 그 안에서 식사도 해 먹고 각 지역의 시장과 관광지들을 다니면서 현지 음식들도 먹었는데, 그 와중에 처음 먹었던 음식은 태국의 어느 커다란 푸드코트에서였다.


당시 우리의 현지 가이드를 해주시던 분께서 우리들을 데려갔었는데, 음식들의 사진을 보면서 대충 시키던 다른 선생님들과 학생들과 달리 나는 그때도 음식에 대해서는 진심이었는지, 현지 가이드분께 물었다.


"아저씨, 여기서 추천해줄 만한 음식이 있어요?"


옆에 계시던 학교 선생님들은 '현지 사람의 추천을 받는다니, 탁월한 선택이구나!'라고 웃으면서 말을 하는 사이, 가이드분께서는 진지하게 잠시 생각하시고


"밥? 아니면 면? 매운 건 잘 먹어요?"


"그럼 전 면으로요!"

"오케이"


그러자 어느 음식 부스로 가이드분께서는 다가가서는 유창한 태국말로 (태국 사람이니 당연히 유창한 태국말) 무언가를 주인 분과 얘기하시더니, 음식점의 요리사분께서는 빙긋 웃고 나에게는 따봉을 척 날리신다.


"현지 사람 먹는 것처럼 맛있게 해 주겠데요"


가이드분께서는 금방 음식이 나오니 기다렸다가 받아가라고 하시고는 본인의 음식을 받아서 식탁으로 가시고 나도 곧 나온 내 첫 태국음식을 받아서 먹었다. 오징어와 새우, 양파, 태국고추 등이 들어간 볶음 쌀국수였는데 굉장히 짭짤하고 매콤한 맛이 입안에 가득 들어왔다. 열대지방에서는 음식의 상변을 막기 위해 일부러 달거나 짜게 만들어서 먹는다고 하는데, 학교에서 배운 그러한 상식들이 현장에서 그대로 증명되는 순간을 나는 태국음식으로도 겪을 수 있었다. 먹으면 먹을수록 갓 볶아져 나온 신선한 해물과 혀끝까지 매콤 해지는 태국고추에 찰랑거리고 쫄깃한 볶은 쌀국수의 맛. 인생 첫 태국음식 경험은 통렬한 미각 자극의 시간이었다.


그 이후로 호주에서도 유명한 태국음식점이 있어서 곧잘 태국음식들(그린커리, 레드커리, 팟타이 등)을 먹었었지만 한국에 들어와서는 영 맛있다고 느껴지는 태국 음식들은 먹은 적이 없었다, 주변에서도 거의 찾기 어렵기도 했고 말이다. 하지만 매우 감사하게도 내가 사는 강릉에서도 근처에 한국인-태국인 부부가 운영하시는 태국음식점 '스왓띠'를 찾게 된 것은 미식, 이국음식을 좋아하는 내 입장에서는 크나큰 행운.


이쁜 여자가 이미 알고 있던 식당이라 같이 가자고 소개를 해주어 즐겁게 따라갔었고 처음 갔던 날에도 저녁시간이었는데 현지인 분들이 2팀 정도가 이미 와서 식사를 하던 중이었다. 한국인 남사장님께서 맞아주셨지만 부엌에서는 태국인 여사장님과 부엌의 태국인 요리사분들이 바쁘게 동남아식 팬과 식재료들을 요리하며 빠른 직화 볶음소리와 향신료가 끓어 나오는 냄새가 넘치게 흘러나왔다. 이미 맛있을 거라는 기대가 점점 확신으로 변하고 있었다.


어느 나라의 음식이던지, 그 나라에 오면 그 나라의 현지화를 피해 갈 수는 없기에 그런 것을 감안하더라도 최대한 현지에서 먹었던 그 강렬한 미각을 선사하는 태국음식을 기대하고 갔었는데, 처음 먹으러 갔던 날부터 우리가 지금까지도 곧잘 먹는 음식은 주로 똠얌꿍 (시고 매운 해물탕), 팟타이 (달콤매콤짭짤한 볶음 쌀국수) 그리고 카오팟 사파롯 (태국식 파인애플볶음밥)이다. 그 외에도 레드커리와 얌운센(태국식 녹두면과 해물이 들어간 샐러드)에 대해서도 이야기를 할까 한다.


똠얌국수
똠얌꿍
똠얌꿍


똠얌꿍은 레몬그레스로 이미 육수를 시작하는 탕이라서 국물 자체가 굉장한 레몬향으로 시큼하고 상큼한 맛이 나는데 해물과 약간의 고기가 들어가서 맛이 진하고 매콤하며 시원하다. 물론 시큼하고 매콤한, 그 맛을 싫어하신다면 추천하지는 않겠지만 나와 이쁜 여자는 이 진득하고 깔끔한 해물육수가 태국식 향신료로 매콤하며 코로는 상큼한 레몬향이 올라오는 이 음식을 먹으며 '크으...' 하며 따봉을 척 올린다. 똠얌꿍도 좋지만 거기에 찰랑거리는 쌀국수를 말아먹는 똠얌국수도 추천한다, 미끈거리고 찰랑거리는 쌀국수에 시큼하고 매콤하고 진한 해물육수가 묻어서 입안으로 빨려 들어오는 맛도 좋고 중간 중간 오징어와 새우의 으적거리는 그 식감이 지루하지 않고 향신료와 산미 덕분에 고기와 해물의 잡내는 이미 사라지고 없는 음식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파인애플볶음밥으로 더 잘 알려진 '카오팟 사파롯'은 파인애플, 해물, 그리고 강황가루로 덮인 볶음밥인데 연한 강황 냄새와 달콤한 파인애플과 건포도(건포도 혐오자분들에게는 유감이다), 그리고 그 사이에 식감을 담당하는 해물들이 모여 그 누가 먹어도 달콤짭짤하니 맛있는 볶음밥이 튀어나온다. 특히나 향긋한 카레밥과 함께 뜨겁게 볶아진 파인애플이 이 사이로 갈라지며 달콤한 당분을 쏟아내는 순간을 나는 사랑한다. 물론 밥에 파인애플과 같은 과일이 들어간 것을 상상도 하고 싶어 하지 않으시는 분들에게는 비호감인 메뉴이겠지만, 동남아음식이 처음이신 분들에게는 쉽게 주문해볼 만한 메뉴임에는 틀림없다.


내가 스왓띠에서 자주 먹는 메뉴들에 대한 얘기는 잠시 제쳐두고, 최근 스왓띠에서의 미식경험에 대해서 얘기하자면, 나는 외국인을 만날 때 해당 나라의 인사법에 대해서 아는 것이 예의라고 생각하는지라,


지금도 스왓띠에 가면 태국인이신 여 사장님께 손바닥을 합장해서 친구의 위치(인사를 건네는 상대방의 위치가 높을수록 합장한 손바닥의 위치를 높여야 한다)에 놓고 '사와디 캅(남자는 어미가 '캅' 여자는 '카'로 끝나야 한다)'하며 인사를 건넨다, 그러면 사장님은 한국말로 '안녕하세요'를 건네는 즐거운 입장.


최근에 이쁜 여자와 방문했을 때에도 많은 태국분들이 식사중이어서 여기가 강릉인지 방콕인지 헷갈리기도 했다. 우리는 그날 평소에 먹던 메뉴와는 조금 다르게 먹자고 결정했다. 스왓띠가 내부 공사를 깔끔하게 한 만큼 메뉴도 대대적인 변화가 있어서 한국말로 친절하게 안내하는 메뉴들이 끝나면 그 뒤에는 다량의 페이지를 태국어와 한국어발음과 약간의 사진으로만 메뉴를 소개하고 있어서, 우리는 핸드폰으로 음식들의 이름을 검색해가며 음식 주문을 하기로 했다. 그리고 선택한 음식은 위에서도 얘기한 팟타이, 레드커리 그리고 얌운센.


아주 얇은 당면을 닮은 녹두면과 땅콩, 고추, 갖은 야채와 해물이 들어간 차가운 샐러드인 얌운센이 먼저 나왔다. 고추들이 으깨져서 샐러드에 잔뜩 뿌려져 있고 그 사이사이에 녹두면, 땅콩, 다진 고기와 양파, 잎채소들이 있었다. 젓가락으로 잔뜩 퍼서 한입 먹으니 새콤달콤한 소스가 혀를 먼저 적시고 탱글 거리는 녹두면 그리고 단단한 땅콩, 서걱거리는 다진 고기, 아삭한 양파와 채소들이 각자의 맛과 식감을 갖고 어우러지는 와중에 마지막은 어디선가 숨어있던 고수의 향긋한 끝 맛.


얌운센


한입씩을 교환한 이쁜 여자와 나는 고개를 들며 눈이 맞고는,


"맛있네?"


"어, 이거 생각보다 맛있는데?"라고


음식에 대한 놀라움을 표현하며 다시 얌운센을 파고드는데 문제가 있었다. 태국고추는 굉장히 맵다는 것을, 이 샐러드의 새콤달콤한 드레싱의 속임수에 빠져버린 내가 잊어버린 것이다. 샐러드에 넓게 뿌려져 있던 이 매운 태국산 쥐똥고추들이 입안과 내 몸 안으로 들어가니 당연한 생리적인 반응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몸이 점점 뜨거워지더니 얼굴의 모든 땀샘에서는 장마날 비가 오듯이 땀이 터져 나오고 나는 이미 얼굴을 땀으로 세수하고 있었다.


"Comma야, 너 땀 많이나"


"어... 어... 고추가 많이 맵네?"


"그만 먹어야 되는 거 아니야?


나는 고개를 저었다, 고개를 저으니 얼굴에서 흐르고 있던 땀들이 양옆으로 날아가며 떨어진다.


"아냐, 그래도 먹을래, 거의 다 먹었기도 하고, 이거 엄청 맛있어."


얼굴에서 나오는 땀인지, 눈에서 나오는 땀인지 구분을 할 수 없는 얼굴을 젓는 나와 이쁜 여자의 사이에 놓인 얌운센 그릇은 이미 바닥을 거의 다 드러내 놓고 있었다. 하지만 더 이상의 위험을 방지하기 위해서 고추조각들은 그릇의 가장자리들로 빼놓았은 것이었다.


그리고 음식들이 이어서 나온다, 쥐똥고추만큼 뜨겁고 매워 보이는 레드커리와 이미 매워 보이는 쥐똥고추가루와 땅콩가루를 끼얹어 비벼먹는 팟타이.


"음... 지금 당장 레드커리와 팟타이를 먹으면 나는 아마 오늘 땀으로 샤워를 하겠지."


"그러면 조금 쉬엄쉬엄 먹어."


"아냐, 맛있으니까 계속 먹을 거야."


"쳇, 안 통하는군"


"......?"


얌운센이 품속에 숨기고 있던 쥐똥고추의 공격으로 나의 미식 시간을 방해를 받을 수도 있었지만 나는 굴하지 않고 나의 젓가락을 팟타이로 향했다. 옆에 놓인 레몬 조각을 쥐어짜며 한 바퀴 레몬즙을 두르고 옆에 모래처럼 쌓여있는 땅콩가루와 쥐똥고추가루를 숟가락으로 면에 끼얹고 포크와 숟가락으로 팟타이를 버무렸다. 그리고 다시 고수로 향긋한 마무리.


팟타이


달걀과 타마린 주스, 코코넛 설탕등으로 부드럽고 달콤하게 볶아져 나온 팟타이의 면이 고소한 땅콩가루, 매콤하고 톡 쏘는 고춧가루와 버무려져 입안으로 들어온다. 씹으면 씹을수록 쫄깃한 쌀국수와 달콤한 타마린, 코코넛 설탕의 은은하고 부드러운 유지방과 같은 맛이 땅콩, 고추와 버무려져 매콤달콤하니 뜨겁고 얼얼한 와중에도 입을 '후하후하'거리면서 팟타이를 씹어먹는다. 찰랑거리는 볶음면에 다양한 미각과 식감들이 어우러지는 것이 팟타이의 매력.



그리고 다음은, 이미 적당히 김이 피어오를 정도로 식은 매콤하고 부드러운 레드커리. 붉은 태국고추에 코코넛우유로 육수를 잡고 돼지고기와 동그란 구슬처럼 생긴 태국의 아기 가지를 넣어먹는 레드커리. 생긴 외관과는 다르게, 코코넛우유와 고추, 고기가 들어간 육수 맛이 강해서 달착지근하고 고소하지만 그 끝 맛이 매콤하고 진한 고기 맛이 난다. 그리고 한국에서는 거의 찾을 수 없는 태국 애기가지가 레드커리 육수를 머금고 있다가 입안에서 아삭아삭거리면서 터질 때 그 커리를 내뿜는데, 나는 그 맛이 좋다. 겉은 탱글탱글거려서 반질반질한 식감이지만 한껏 레드커리를 머금고 부들부들해진 육질을 자랑하는 애기가지는 스왓띠에서 내놓는 그린커리와 레드커리의 주연인 식재료이다.


결국 나는 얼얼함으로 울고 있는 나의 혀와 입을 부여잡고 레드커리도 바닥이 보일만큼 끝까지 먹었다, 그 부드럽고 달착지근하지만 매콤한 맛에 코코넛의 향긋함이 나를 계속 잡아끄는데 빠져나올 수가 없는 것이다.


얼굴로만 땀을 한 바가지를 흘리고 평소에는 잘 마시지도 않는 찬물을 마시며 멍하니 앉아서 있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우리는 집으로 향했다.


나가면서도 나는 양손을 합장하며 부엌에 계신 태국인 사장님께 '캅쿤캅(감사합니다)'를 외치고는 '감사합니다'라는 사장님의 화답을 받고 집으로 나선다.


"앞으로 태국고추는 조심해서 먹어야겠어. 얼굴로 땀을 이만큼 흘린 것이 언제 적인지 모르겠군."


나는 스스로에게 앞으로 태국음식을 먹을 때에는 매운 향신료를 조심하자는 다짐을 하며 이쁜 여 자의 손을 잡고 집으로 향했다. 내일도, 또 다른 맛있는 내일이 나를 기다릴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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