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내가 일하고 있는 직장의 강릉 사무소가 생긴 이후, 처음으로 들어온 방문 출장 의뢰였다. 그 목적지는 원주.
영동과 영서로, 한반도를 동쪽과 서쪽을 나누어주는 기준이 되는 백두대간의 태백산맥은 강원도도 영동과 영서로 나누어주고 있는데, 영동지방의 주요 도시 중 하나인 강릉에서 강원도의 '강'을 담당하는 동안, 춘천과 함께 영서지방의 큰 도시이자 강원도의 '원'을 담당하고 있는 원주는 나에게 있어서는 맛있는 장소들이 많다고 인식되는 곳 중 하나이다.
제가 즐겨 보는 프로들에 곧잘 등장하시는 백선생님께서 진행했던 어느 프로그램이 방문을 했던 중앙시장도 있고 속초에서 살던 시절, 지금까지도 연을 맺어오고 있는 친애하는 형님과의 짧은 추억이 있기도 한 곳이어서 처음 출장지가 '원주'라는 것을 들었을 때 반가움 반, 설렘 반, 내 마음은 이미 즐거워지고 있었다.
출장지에서 업무가 시작되는 시간은 14시, 즉 그 전에 원주에 조금 더 일찍 도착해서 빠르게 점심을 먹을 수 있는 여유가 있다는 뜻이었다. 나는 함께 출장을 가게 될 J팀장님께
"저는 오전에 조금 더 일찍 가는 버스를 타고 원주에 미리 도착해서 국밥 한 그릇 먹고 업무 장소로 가겠습니다." 라며
미리 업무 장소에는 늦지 않게, 점심을 먹고 가겠다는 전언을 남기고 아침 일찍 원주로 향하는 버스에 몸을 실었다.
지금으로부터 대략 5년은 된 이야기이다, 나는 이제 막 30이 되었던 청년이었고 강원도 고성에서의 군 복무 이후에 속초에서 거주한 지 2년 정도가 넘어가는 시기였다. 당시 문화예술 관련 어느 협회에서 봉사활동으로 일을 하다가 만났던 L형과 함께 협회 업무차 원주를 방문했던 적이 있었다. 우리나라의 유명한 SKY 중 하나인 Y대의 원주캠퍼스에서 공부를 했던지라, 속초에서 직장을 다니고 있었지만 원주의 지리에 대해서는 매우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나를 자신이 아주 잘 아는 맛있는 집으로 데려가 주겠다며 나를 원주의 중앙시장 근처 지하상가로 이끌었던 기억이 있다.
원주의 버스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영서지방의 분지 지역인 원주의 차원이 다른 더위와 습기가 나를 덮쳐왔다.
"아.... 역시나 덥네..."
이마와 목에서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지만, 수년 전 L형과 방문했었던 원주 중앙시장 지하상가에서 나를 원주에 살고 싶게 만들었던 그 순대국밥을 먹기 위해서 나는 빠르게 발을 움직였다. 폐와 기도를 타고 뜨거운 공기가 후욱거리면서 나는 증기기관차처럼 숨을 헐떡였지만 그 더위가 원주에서 추억의 순대국밥을 먹기 위한 나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다.
원주 터미널 앞에서 타는 대부분의 시내버스들은 원주 중앙시장과 지하상가 근처를 지나쳐서 가는 지라 나는 어렵지 않게 시내버스를 잡아타고 지하상가로 향했다, 오전 11시가 다 되어가고 있는 시간이라서 지금쯤 가면 손님이 많지 않을 테니 손쉽게 자리를 잡고 식사를 할 수 있을 거라는 생각에 가슴이 두근거렸다. 그 이전에 다른 직장에서 근무를 했었을 때, 원주에 혼자 왔던 때에 시간에 쫓겨 이 순대국밥집, '강릉집'에서 우두커니 서서 기다리기만 하다가 업무를 하러 갈 수밖에 없었던 기억이 있어서 나도 모르게 걸음이 빨라지고 있었다.
원주 중앙시장 근처 버스정류장에 내린 나는 다시 초록색 지도창을 열어서 내가 가려고 하는 순대국밥집 '강릉집'의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여기서 조금만 시장 안쪽으로 들어가서 그대로 지하계단을 따라서 내려가면....'
손만두와 손칼국수를 만들어서 나오는 지하상가의 구역과 돈가스와 만두를 파는 구역, 그곳을 뚜벅뚜벅 걸어서 지나니 어느 한 곳에만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서 국밥을 먹고 있는 곳이 눈에 들어왔다. 원주에 있지만 식당 이름은 '강릉집'. 순대와 각종 돼지 부속물로 국밥을 말아 팔지만 그 이름은 '강릉집'. 아주 운이 좋게도 내가 가자마자 어느 신사분께서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혼자서 앉을 수 있었기에 나는 함박웃음을 지으며 자리에 떡하니 차지하고, 정장 자켓의 단추를 풀며 앉았다.
자리에 앉으니 그 수년 전 L형과 이 자리에 앉아서 고소한 순대, 그리고 구수한 국밥을 한 그릇씩 빠르게 먹어치우고 주차장 근처의 오래된 옛 빙수와 음료를 파는 카페에서 음료를 한잔씩 나눠먹으며 중앙시장을 걸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했던 기억이 흑백영화처럼 흘러갔다. 한동안 이런저런 마음고생을 하며 속앓이로 힘들어하던 나에게 L형이 사줬던 그 순대국밥, 그리고 격려와 충고들, 그리고 그 와중에 나는 외쳤다.
"형, 여기 순대국밥 진짜 맛있어! 내가 원주 살면 나는 여기 매일 올 거야, 진짜로!"
그렇게 감탄과 칭찬을 연발하며 순식간에 순대와 국밥을 먹어치우는 나를 보며 L형은 특유의 큰 웃음을 터트리며 진심으로 재미있어했고, 즐겁게 웃었다. 그 모습들이 머릿속에 휘리릭 지나가는 것은 잠시, 이제는 35살이 되어버린 유부남이요, 어느 회사의 회사원이 되어버린 comma로, 정장을 입은 채로 업무용 서류가 든 가방은 옆에 내려놓은 채로, 나는 그렇게 다시 몇 년 만에 강릉집에 순대국밥을 먹기 위해 앉아있었다. 그때 당시에 국밥과 순대를 주시던 사장님과 함께 일하시는 선생님들도 그대로여서 나의 내적 반가움이 널을 뛰었다.
그때 당시에 6천 원이었던 순대국밥은 어쩔 수 없이, 세월과 물가의 영향을 받아 아주 약간의 가격 인상이 있었지만 상관없다. 나는 강릉집의 순대국밥과 부속물을 먹으러 왔다. 그 맛은 변치 않았으리라.
"사장님, 여기도 국밥 하나만요."
"어떻게 드릴까? 다 넣어드려?"
강릉집에서는 여러 돼지 부속물들을 갖고 있기에 국밥에 그 부속물들을 종류 가릴 것 없이 다 먹겠냐는 종업원 선생님의 물음에 나는,
"네네, 다 주세요. 내장, 허파, 간, 순대, 귀, 오소리감투 등등 다요."
"그래요~ 앞에 주문이 몰려있으니 조금만 기다려요."
그렇게 내가 주문을 하며 옛 추억에 잠긴 사이 내가 앉아있던 의자의 근처, 양 옆과 뒤로 금방 또 손님들이 몰려 자리를 기다리거나 포장 주문을 넣은 것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모, 자리 있어요?"
"여, 자리 있나아?"
남녀노소, 성별과 나이, 신분을 가릴 것 없이 강릉집에 몰려 있는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근처의 다른 국밥집들에는 사람이 없는 모습은, 내가 봐도 참 미안할 정도였지만 어쩌겠는가... 강릉집의 맛이 독보적인걸.
그리고 나는 사람들이 기다리든지 말든지, 내 앞에서 내가 먹을 뚝배기 안에 밥알들과 육수가 함께 국자로 어우러져서 오르락내리락거리며 최고의 국밥을 내어주시기 위한 토렴 되는 모습을 직관했다. 육수 솥에서 육수가 뚝배기로 오가면서, 뚝배기 속의 쌀알들과 함께 오가면서도, 신기한 것은 육수 솥에 절대 쌀알들이 실수로라도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이다. 물론, 육수의 구수한 맛을 위해서 쌀알이 조금씩 미리 들어가는 집들도 있지만 강릉집에서는 어떻게 하는지는 내가 알 수 없는 것이다.
드디어 뜨끈뜨끈한 토렴을 마치고 내 앞에 등장한 뜨거운 그대, 순대국밥, 매콤하고 투박한 양념장과 얇게 썰린 귀, 오소리감투, 간, 내장 들과 다진 파, 쌀알들과 함께 김을 내고 있는 그 모습은 아름답다. 한입을 떠서 입으로 넣는다, 구수하고 찰진, 고기와 육수가 어우러진 감칠맛. 그 옛날 L형과 먹던 그 시절이, 그 추억이 떠올라 눈물이 핑 돌 뻔했다.
"여기에 몇 년 전에 총각일 때 오고, 다시 오는데 하나도 바뀌지 않았네요."
"그래요? 우리는 계속 여기 있었으니까."
종업원 선생님께서는 흐뭇한 미소를 남기시며 맛있게 드시라며 말을 남기시고는 국밥을 다시 토렴 하시기 시작했다.
"아줌마, 나는 내장 빼고 줘요."
"이모, 저는 내장하고 순대만 주세요."
옆에서 이어지는 사람들의 주문에 나이가 지긋하신 종업원 선생님들은 손님들의 맞춤 주문에 공을 들이시느라 바빴다.
뽀얗고 우유와도 같은 육수, 구수하고 매우 진한 그 맛이 뜨끈하게 식도와 위를 점점 적시고, 입안에 향긋한 돼지의 맛이 점차 쌓여가면서 그 입안으로 쫄깃하며 탱글 거리는 돼지 부속물들이 얹어진다. 비위가 약하거나, 돼지의 부속물들을 먹기 힘들어하시는 분들은 좋아하지 않겠지만, 나의 경우는 부속물들을 상당히 좋아하기에 쫄깃하고 탱글 거리는 위장과 내장, 그리고 꼬독꼬독한 귀, 유들 거리고 맛이 진한, 얇게 썰린 간, 육수와 쌀알, 부속물들이 한 곳에 어우러져서 복합적인 맛과 식감이 나를 역시나 즐겁게 한다.
"선생님, 나는 순대 빼고 줘요!"
국밥을 주문하시던 옆에 계시던 노신사분께서 외치자, 나는 문득 '설마, 나도 순대 안 주시는 건 아니겠지?'라는 생각이 들어 급하게,
"선생님, 저는 순대 먹습니다!"하고 외치자
마침 주변에 앉아계시던 손님분들은 다 나이가 있으신 어르신들이었는데, 사장님과 다 함께 웃음을 터트리셨다, 나이 지긋하신 사람들 사이로 젊은 친구가 외치던 국밥에 대한 열정과 패기가 그들에게 웃음을 드렸던 것일까, 웃음을 멈추지 않은 채 사장님은,
"알겠네, 알겠어"하시고는
기다랗게 말려져 있던 순대를 한 똬리 꺼내셔서 숭덩숭덩 대충 자르는 듯 하지만 정확하게 비슷한 크기로 자르셔서 손으로 가득 모아서 내 국밥에 수북하게, 그리고 옆 옆에 계시는 순대를 좋아한다는 손님분들의 국밥 위에도 수북하게 올려주신다. 그 옛날에 L형과 왔을 때에도 이렇게 순대를 올려 주셨었지.
순대 속에서 고소한 고기와 돼지의 피맛과 채소의 맛이 이 사이로 씹힐 때마다 터져나간다. 아삭거리면서 부드러운 버터처럼 으깨지고 입안에서 씹히는 순대의 맛. 그 사이에 얇게 썰린 돼지고기를 매콤한 새우젓에 적셔서 씹으니 고깃결 사이사이의 쫄깃한 식감과 육수에 젖은 그 맛이 환상적이다. 식사의 처음부터 끝까지, 곁들여먹는 깍두기까지도, 그 어느 것 빠질 것이 없이 진하고 구수하며 서로 식감과 맛과 균형을 맞추고 채워가며 자연스럽게 뚝배기 안의 협업을 이루어 간다. 그 어느 것 하나 자신의 맛과 식감을 내세우지 않고 협업하며 사람들의 입맛을 채운다. 거기에 내 개인적인 추억의 맛은 덤.
갓 30이 되었을 당시, 사그라들고 꺼져버리는 불꽃이 될 뻔했던 나의 시간들을 함께 덥혀준 사람에 대한 기억, 그리고 함께 했던 그 맛, 따뜻한 맛, 잊지 못하는 맛, 그래서 강릉집의 국밥은 나에게 더 특별한 것이 아닐까.
식사를 다 마치고 나서 나는 밥만 먹었지만 몸이 땀에 젖은 채로 일어나 출장을 온 목적지를 향해서 움직였다. 시장 외곽으로 나가서 다시 차들과 사람들이 뒤엉켜 시끄럽고 습기가 끈적거리는 더운 원주의 한 복판으로. 그럼에도 불구, 든든한 국밥의 격려와 추억에 힘을 받은 나는, 일을 하기 위해 다시 다른 시내버스에 몸을 싣고, 다음에도 또 오면 꼭 먹겠다는 나만의 결심을 맺은 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