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식일기] 진짜루, 강릉

'짬뽕전문점'을 빙자한, 탕수육이 상큼한 중국집

by 김고로

전국이 심하게 더워지기 시작한 나날들이 지나가고 있었다, 7월 초로 접어든 강릉의 날씨는 아주 짧은 우기를 지나고 나니 (그 이후에 또 우기가 이어져 버렸지만) 매미가 쌔액거리고 잠자리들이 쌔앵 거리면서 날아다니는 전형적인 여름이었다.


시내에 위치한 우리의 새 사무실 주변에는 이러저러한 작고 구불구불한 골목들, 중앙시장과 강릉의 구시가지, 월화거리 등등 구석구석 숨어있는 작은 밥집들이 많은 덕분에, 점심시간마다 강릉의 새로운 밥집들을 찾아가는 즐거움이 늘어난 것은 새로운 직장으로 이직한 장점 중에 하나였다.


강릉이 강원도의 큰 도시 중에 하나임은 그 누구도 반박하지 않을 사실이지만, 그 커다란 서울특별시에도 골목과 아직 삐까뻔쩍한 빌딩으로 재개발되지 않은 곳들이 많듯이, 강릉도 아직은 옛 정취가 고스란히 남아있는 골목들이 참 많다. 그래서 그런지 거리를 지나치다 보면 '이런 곳에 식당이 다 있네?'라고 생각이 들만한 자리에 식당이 있는 경우가 제법 있다. '진짜루'도 그러한 식당이었다.


"여기에... 중국집이 다 있네요?"


"그러게."


강릉의 거의 모든 교통량이 모여드는 시내의 옥천오거리, 원래는 신호등이 여럿, 즐비하게 망루처럼 서있던 교차로였으나 전임 시장 시절 지금과도 같은 둥글둥글한 원형교차로로 변해버린 한 구석. 아침마다 의료용 알코올 냄새로 청소를 하느라 코를 찌르는 술냄새가 풍기고, 평소에는 예초기와 잔디깎이 기계와 공구들 사이에서 피어오르는 매캐한 연기와 기름 냄새로 둘러싸인 그 옥천오거리의 한 구석에서 커다란 대문에 '진짜루'라고 적힌 옛스러운 간판을 보면


'여기에 진짜 식당이 있는 거냐?'라는 질문이 자연스럽게 떠오를 정도의 위치에 진짜로 '진짜루'라는 중국집이 있었다. 그 이전에는 분식을 주력으로 하는 어느 식당이 있었지만 그 이후에 중국 요릿집 '진짜루'가 생긴지는 어언 2년 정도 된 것 같은, 그런 기억. 세월의 때가 묻은 커다란 철문에 짬뽕전문점이라는 간판을 내걸고 그곳에 중식집이 있다.


걸어가면서, 버스를 타고 가면서, 그 앞을 지나가게 되면 나는 항상 그곳으로 고개를 돌려 보면서 '아, 여기 중국집이 하나 있었지, 한번쯤 가보고 싶은데'라는 생각이 들게 하는, 나의 식당 탐방의 욕구를 불러일으키는 그런 집이었다. 생각만 하면 무엇이 이루어질쏘냐, 직접 가봐야지.


점심시간 식당 방문의 기본은 '가까운 곳에 빨리 나오는' 식당을 찾는 것이 우선이다. 그러한 점에서 우리 사무소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진짜루'는 가깝고, 중식이기에 금방 나올 거라고 예상이 가능한 집이라 나는, 나도 처음 가보지만 함께 강릉 사무소에서 일하게 된 J팀장님과 균을 이끌고 '진짜루'로 향했다.


연분홍색의 큰 대문이 활짝 열려있으니 '겁먹지 말고 들어오세요'라는 말을 우리에게 하는 듯했다. 붉은 바탕에 샛노란 궁서체로 '진짜루'라고 적혀있으니 제법 중국집스러운 분위기가 난다. 자갈과 큰 바위판으로 놓인 징검다리와도 같은 길을 따라가니 원목 야외테이블에 커다란 파라솔이 꽂힌 식탁이 있고 그 안에서 더 들어가니 작은 가정집을 개조한 듯한 식당이 나온다. 반투명 유리가 끼여진 양철문을 밀고 들어가니 함바집 같은 모습을 가진 식당에서 중국집의 기름 냄새가 내 코로 쏟아져 들어온다.


워낙 더운 날이라서 우리는 에어컨 바로 앞자리에 앉았다.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다가 '진짜루'라는 식당 이름에 짬뽕전문점이라고 적혀있는 것을 기억해내고는 소고기 짬뽕을 3개에 미니탕수육을 주문한다. 각자 짬뽕 1개 만을 먹으면 약간 부족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 탕수육도 주문한 것인데, 이것은 매우 잘한 결정이었다.


주방 안에서 웍과 국자가 달그락거리고 중식의 화끈한 냄새가 식당에 울려 퍼지는 그 사이에도, 사장님들 사이에서 얌전하게 앉아있는, 어느 정도 지긋하게 나이가 있어 보이시는 어르신 말티즈는 미동도 없이 바깥에서 들어오는 햇살을 맞으며 졸고 있는 모습이 매우 평화로운 어느 식당의 점심시간의 풍경이었다.


우리가 첫 손님이어서 웍을 달구고 요리를 시작하느라 요리하는 시간이 좀 더 소요가 되기는 했지만 중식의 장점이 무엇인가? 요리가 빨리 된다는 것이지 않은가. 그렇다, 소고기 짬뽕이 금방 나왔다.


시뻘건 국물에 차돌박이, 숙주, 새우, 홍합, 오징어, 바지락 등의 기본기 튼튼한 재료들과 푸짐한 양의 국수. 매콤한 불냄새가 스멀스멀 내 코로 기어올라오는 것을 느끼니 기분이 점점 좋아진다.


나는 짬뽕을 먹을 때, 위에 있는 야채, 고기, 해물과 같은 재료들부터 먼저 국물과 함께 싹 먹어치운다. 양파와 당근, 숙주가 아삭아삭하게 씹히고 홍합, 오징어, 바지락의 쫄깃한 식감이 매콤하게 입안으로 들어온다, 좋다, 괜찮은 짬뽕이다. 이내 젓가락을 내려놓고 숟가락을 들어 국물을 한입, 그리고 다시 한입, 호로록.


매콤하지만 쇠고기와 해물의 시원하고 고소한 맛에 끝 맛이 깔끔하게 떨어지는 국물. 밑에서부터 끌고 올라오는 시원하고 농후한 해물과 고기의 육수나, 고운 고춧가루의 진한 육수 맛은 아니다, 다만 호불호를 크게 가리지 않을 적당한 시원함과 매콤함, 그리고 깔끔한 불맛으로 무장한 무난한 짬뽕. 이미 옆과 앞에 앉은 팀장님과 균은 시장하기도 했는데 맛이 괜찮으니 맛있다고 하시면서 잘 드신다.


그렇다면 이제 탕수육도 기대가 된다, 탕수육에는 토핑으로 말린 귤이 올라가 있었다, 냄새가 상큼하면서 시트러스 향기가 난다. 오렌지인지, 감귤인지 헷갈렸다, 분명 크기로는 감귤인데 완전 건조가 되어서 크기가 줄어들었나?



탕수육은 적당히 바삭하면서 튀김옷이 부드럽고 폭신하다. 입안에서 고기와 튀김옷이 푹신푹신하게, 부드럽게 씹히면서 겉옷처럼 입고 있던 갈색 탕수 코트를 혀 위에 벗어놓으니 달콤하면서 상큼한 귤과 레몬의 맛이 혀를 자극한다. 간장, 설탕, 그리고 시트러스 계열의 향미가 완벽하게 어우러진다. 간장의 감칠맛과 설탕의 단맛이 이러한 과일의 자극적인 산미와 잘 어울릴 거라고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 소스를 잘 갖춰 입은 푹신한 튀김옷이 이러한 상큼하고 달콤한 소스와 치아 사이에서 섞이면서 쫄깃한 고기가 연이어서 씹히니 눈이 뜨이는 맛이었다.


나는 탕수육의 찍먹과 부먹 논쟁은 의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탕수육은 원래부터 소스를 부어서 먹는 음식이니까. 튀김옷을 잘 못 만드는 집의 탕수육은 소스를 부어놓으면 튀김옷이 눅눅해지니 이러한 논쟁이 생긴 것이다. 하지만 나는 찍먹도 아니오, 부먹도 아니다. 나는 '다먹'파이다, 탕수육의 소스를 튀긴 고기에 부어서 먹고, 탕수 소스가 맛있다면 소스까지 숟가락으로 다 퍼서 먹어야 한다는 주의이다. 그리고 이 진짜루의 탕수육은 '다먹'으로 먹기에 합당한 집이었다.


요리를 다 마친 사장님이 매우 더우셨는지 선풍기가 돌아가고 있는 탁자 옆에 앉으신다.


"짬뽕이랑 탕수육은 입에 잘 맞으세요?"


우리는 입안에 음식이 가득한 채로 고개를 끄덕였다.


"사장님, 이거 탕수육에 올라간 것은 오렌지인가요?"


사장님은 그럴 리가 있겠냐는 너털웃음을 터트리신다.


"그거 감귤 하고 레몬 넣은 거예요, 껄껄껄"


그리고는 그간 손님들이 많이 찾아오지 않았었는지 대화 상대가 필요하셨던 사장님 내외는 우리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셨다. 원래는 남쪽 지방에 사시다가 (창원이셨나?) 2년 전에 강릉으로 올라와서 중국 요릿집을 개업하셨다고 하시면서 가뜩이나 몸에 열이 많으신 사장님은 화구 앞에서 요리를 하시면 너무나 더워서 몸이 힘드시다는 얘기 등등.... 작은 밥집에서 친절한 사장님들을 만나면 나눌 수 있는 소소한 대화들을 나누며 맛있게 식사를 마치고 나왔다.


그리고 얼마 있어서, 사무소의 일을 잠시 도와주게 된 이쁜 여자와 사무소의 분들과 함께 다시 우리는 '진짜루'를 방문했다. 탕수육을 먹고 싶다던 이쁜 여자에게 '진짜루'의 감귤 탕수육을 먹어보게 해주고 싶은 마음에 같이 가자고 한 것이다.


이 날은 짬뽕과 탕수육은 물론, 짜장면과 볶음밥까지 각자 주문하면서 진짜루의 식사 메뉴들을 다 먹어볼 수 있었다. 짜장면은 달큰하면서 짭짤한, 묵직한 맛으로 기본기가 탄탄한 맛이었다. 볶음밥도 역시나 기대했던 대로 고슬고슬하며 불맛이 올라오는, 중국집들의 볶음밥의 품질이 많이 떨어졌다며 인터넷에도 글이 곧잘 올라오는 시대이지만 진짜루의 볶음밥은 내가 원래 알고 있고 기억하던 그 '맛있는' 볶음밥. 어느 중국집에서 볶음밥을 시켜도 맛이 좋았던 때의 웍의 풍미와 짭짤함이 그대로 묻어나는 맛이었다.



하지만 내가 그날도 제일 맛있게 먹었던 것은 바로 진짜루의 탕수육이었다. 감귤과 레몬의 상큼하고 새콤한 맛이 간장의 짭짤함과 설탕의 맛과 만나서 감칠맛이 폭발하는 그 탕수육의 맛, 거기에도 푹신한 튀김옷과 쫄깃한 고기 (그렇다, 나는 했던 말을 또 하고 있다). 먹으면 먹을수록 상큼하고 달콤한 맛이, 나로 하여금 계속 숟가락과 젓가락을 탕수육으로 향하게 했다. 그렇다고 해서 내가 식사로 주문한 짬뽕을 남기는 일은 없었다, 진짜루는 짬뽕도 맛있었고, 나는 가능하면 밥을 남기지 않으니까.


탕수육이 먹고 싶어지면 진짜루의 감귤 탕수육을 먹으러 오지 않을까, 그러한 생각이 드는 진짜루의 감귤 탕수육이다. 내가 근무하는 사무소 근처에서 오래오래 장사하시기를 지금도 기원하게 된다, '짬뽕전문점'이라고 명시하셨지만 나에게는 '탕수육 전문점'인 이 밥집이 '진짜루' 이 맛을 오래 간직하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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