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그 일을 말하지 마시오
살아가면서 안 좋은 일은 피할 수 없다. 안 좋은 기억이 생기는 것은 피할 수 없다. 그 일들이 애초에 안 생기게 하는 것이 가장 최선이겠지만 세상 일 나 혼자 힘으로 되는 게 아니다. 모든 건 관계성이 있다. 저 사람과의 갈등을 피하고 싶지만 때로는 그렇지 못할 때도 있다. 나는 좋은 말로 대화를 시도하려고 하지만 상대는 그렇게 받아들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은 인생에서 어쩔 수 없이 오는 안 좋은 일을 가능한 한 빨리 잊어버리는 것이다. 그리고 다행히 신은 우리에게 망각이란 선물을 주었다.
하소연 : 나쁜 일을 잊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는 중
예전에 공부를 잘하기 위한 방법 중 이런 게 있었다. 자신이 학습한 것을 누군가에게 한번 더 말하면서 가르쳐라. 그럼 더 기억에 오래간다. 특히 이건 암기과목을 공부하는 꿀팁이었다. 그냥 내가 생각만 하고 있는 것과 그걸 한 번 더 말로 내뱉는 건 천지 차이다. 머리에만 남아 있는 것은 쉽게 잊혀지지만 내가 말로 뱉고 다시 내 귀로 들어온 것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우리는 보통 안 좋은 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가족들에게 혹은 친구들에게 하소연하느라 바쁘다. 물론 그게 감정 해소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하지만 냉정하게도 그건 아주 잠깐 말로 하는 그 순간 일시적일 뿐이다. 오히려 이러한 행동이 내가 그 일을 잊는데 힘들게 만든다. 이는 마치 암기과목을 공부하는 행동과 같다. 누군가에게 하소연하기 위해 나는 그 일을 또 생각해야 하고 게워내야 한다. 물론 혼자 생각만 하고 있을 때보다 뱉어내면 속은 더 후련할지도 모른다. 그런데 결국 감정해소를 하려고 했던 행동이 내 감정을 더 붙잡는 꼴이 된다. 말로 뱉은 그 일은 내 기억 속에 더 깊이 각인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사람 저 사람 많은 사람들에게 말하면 말할수록 기억은 더 장기화되고 고착화된다. 거기다가 사람들이 보태는 말 한마디 한마디가 오히려 그 일과 내 기분을 더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
감정이 지나갈 때까지 기다리기
나에게 일어난 나쁜 일이 아직 채 식지 못했을 때 말을 하게 되면 내 감정이 듬뿍 들어간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도 나도 모르게 감정적인 사람이 된다. 그리고 내 감정을 듣는 사람도 고스란히 느낀다. 나의 하소연을 듣는 사람이 가족이라면 그나마 다행이지만 남이라면 그게 내 흠이 될 수가 있다. 어느 누구도 상대의 감정을 계속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은 없다. 하소연이 하소연으로 끝나면 다행이지만 본의 아니게 누군가를 감정 쓰레기통으로 느끼게 할 수도 있다. 그게 설사 가족이라도 말이다.
똥이 묻었을 때 가장 먼저 해야 할 것은 똥을 털어내는 것이다. 나한테 똥이 묻었다고 동네방네 이야기 하고 다니는 것이 아니다. 나한테 묻은 똥을 털어줄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우선 더러운 것을 털어내고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그것이 잊히고 그 기분이 가물가물 할 때쯤 '그래 그때는 그랬었지'라고 추억할 때쯤 사람들한테 이야기하는 것이 나을지도 모른다. 웃으면서는 아니더라도 적어도 무덤덤하게 그 일을 말할 수 있을 때까지는 나 혼자만의 아픔으로 감춰두는 것이 좋을지도 모른다.
그러니 힘들겠지만 당분간 그 일은 나만 알고 아무도 모르는 일인 게 낫다. 그 일로 인해 상처받은 내 감정이 치유될 때까지는 말이다. 그리고 충분히 생각한 후 해결할 수 없는 일이라면 똥 밟았구나 하고 흘려버리는 게 낫다. 물론 그게 어렵겠지만 연습해야 한다. 내 삶에서 일어나는 나쁜 일은 내 안에서 처리할 수 있도록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