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감성기복이 Jul 05. 2022

좋은 회사에 다니지 않아서 좋은 점

언제 도망쳐도 아깝지 않다

도망가자. 언제 도망쳐도 아깝지 않을거야.




난 남들이 보기에 좋은 일을 하는 것도 아니고 남들이 부러워할 만한 회사를 다니는 것도 아니다. 그저 벌어먹고 살기 위해 빨리 들어갈 수 있는 곳에 들어가다 보니 이곳에 왔고 어쩌다 보니 지금까지 다니고 있는 거다. 내 직장인의 삶은 이렇게 '어쩌다 여기까지' 흘러 왔다.









안 좋은 회사를 다녀서 좋은 점 : 나는 자유의 한국인


원래 하고자 했던 일은 이게 아니었다. 그냥 잠시 거쳐가는 곳으로 있다가 다른 것을 준비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 그런데 모든 여건은 나를 여기에 있게 만들었고 시간이 지나도 내가 도망칠 수 있는 기회는 주어지지 않았다. 그래서 우스갯소리로 탈북보다 이 회사에서 나가는 게 더 힘든 것 같다고 말하고 다니기도 한다. 나도 남들이 가진 번듯한 직장 번듯한 직업이 부러웠다. 아니 아직도 부럽다. 뽀대 나게 회사 다니면서 거액의 연봉과 보너스를 받을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달콤한 마약 같은 것인가. 지금 내가 뼈를 갈아 넣어야 겨우 받을 수 있는 이 정도의 월급도 끊을 수 없는 마약인데 그사세는 상상조차 할  수 없다.


빵빵한 회사에 다니는 사람들보다 좋은 것 하나 없지만 그래도 그들보다 좋은 점을 딱 하나 꼽자면 나는 '언제든 도망칠 수 있다'는 점이다. 물론 자유의지를 가진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사표를 쓰고 떠날 수 있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가진 것이 많은 자가 하나 잃는 것을 더 두려워한다는 말이 있다. 대기업에 다닐수록 자신이 얼마나 대단한 것을 가지고 있는 줄 알기에 놓기가 더 힘들다. 어떻게 보면 인생에서 얼마 오지 않는 기회를 거머쥔 것인데 그것을 박차고 나오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나는 다르다. 언제 잘려도 언제 나와도 아깝지 않다. 만약 내가 잘린다면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한 톨의 아쉬움도 남기지 않고 드디어 내 길을 가라는 신의 계시인가 보다 하고 새로운 여정을 떠날 거다. 물론 당장 주머니 사정이 쪼들리니 백 프로 아쉽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내 인생을 흔들 만한 영향력은 없다. 이게 바로 안 좋은 회사를 다녀서 좋은 점이다.





대기업 취업 실패는 또 다른 기회


좋은 곳에 취업이 안돼서 힘들어하는 사람들을 많이 본다. 이건 인력으로 어떻게 안 되는 문제다. 세상일이란 것이 다 그렇듯 아무리 노력해도 운도 따라줘야 하고 다른 조건들도 맞아떨어져야 하는데 이게 확률적으로 놓고 보면 그리 크지 않다. 낙담하고 있는 그들에게 작은 위로를 하나 하자면 '당신에게는 언제나 새로운 기회들이 열려 있다'는 거다. 


자신이 최고로 좋은 것을 가졌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더 이상 딴 궁리를 안 한다. 그것에 만족하며 살아갈 확률이 상대적으로 높다. 설사 나중에 자신이 진짜 좋아하는 일이 생겨 그것을 하고 싶어도 지금 가진 것이 너무 많아 이것들을 다 놓고 무작정 달려들기 힘들다. 하지만 불만족을 느끼는 사람들은 항상 만족을 위해 새로운 이상향을 꿈꾼다. 자신의 삶에 대해 생각을 더 많이 하게 되고 새로운 것을 더 많이 시도하게 된다. 그리고 원하는 것이 생긴다면 딱히 아쉬울 것 없는 나의 자리는 잠시 내려놓고 다른 기회를 엿볼 수가 있다.









도망갈 기회를 호시탐탐 노리다


그러니까 나는 자유의 몸이다. 언제든 딴 궁리를 해도 되고 다른 길을 간다 해도 하나도 아깝지 않다. 언제든 박차고 떠나기 위해 짐도 별로 안 갖다 놨다. 내 인생이 도자기라면 이곳에 있는 지금 좀 더 섬세하게 빚어 보는 중이다. 어차피 처음부터 이쁜 도자기는 아니었으니 천천히 흙을 빚고, 무늬를 새기고, 유약을 바르고 구워서 탐나는 도자기로 거듭날 때까지 말이다. 


PS. 지금 좋은 곳에 취업된 친구를 부러워하는 친구들! 낙담은 금물입니다! 그대들은 이제부터 빚어나갈 도자 기니 까요. 나중에 고려청자와 같이 그 누구도 따라올 수 없는 빛깔을 뿜어낼 거예요.


이전 28화 매일 퇴사를 준비하는 이유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