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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이카 Feb 20. 2022

불면증

#시가 싫은 당신에게 #운문 에세이


오전 6시

이제는 정해야 한다

어제처럼 또 살 것인가

사실 더 이상 어제와 오늘을 구별 짓지 못한다

머릿속에 널브러진 생각들은 고되다

절대로 정리할 수 없는 방에 사는 것 같다

이불을 갤까

아니야

이불을 덮자



2022.02.20


4학년이었다. 학교 수업도 별로 없었을뿐더러, 그마저도 코로나로 인해 비대면 강의였다. 그때까지만 해도 코로나가 지금까지 이어질 줄은 그 누구도 몰랐다. 메르스처럼 잠깐의 해프닝으로 끝날 것이라는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그래서 대학생들의 경우 이 사태를 좋아하는 사람이 체감상 좀 더 많았다. 나는 복학하고 첫 학기였기 때문에, 학교에서 사람들을 만나지 못하는 것이 잠깐 아쉽다가도, 직접 수업을 들으러 가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 그냥 좋았다. 

루틴이 사라진 일상은 모든 걸 불규칙하게 만들었다. 수업이 없는 날은 오전에 일어나는 경우가 거의 없었다. 밤에는 사람들과 술을 마셨다. 술을 마시고 새벽에 자취방에 들어온 후, 다음날 수업이 있으면 몇 시간 자다 일어나서 화상 수업이나 인터넷 강의를 들었고 그마저도 없다면 그냥 계속 잠만 잤다. 


문제는 술을 마시지 않는 날이었다. 이미 패턴이 바뀌어버린 뒤였기 때문에, 쉽게 잠드는 경우가 없었다. 자려고 누우면 이상하게도 그때마다 4학년이라는 사실이 유독 깊게 다가왔고, 눈을 감으면 미래에 대한 걱정으로 머리가 뒤엉켰다. 뒤엉키는 이유는 그 미래라는 것이 선명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교환학생이니 워킹홀리데이니 하는 복학 전에 짜 놓은 계획은 코로나로 죄다 어그러진 지 오래였고, 취업 전 이런저런 경험을 하고 싶다는 열망과 얼른 취업 후 경제적으로 독립해야 한다는 압박이 서로 강하게 충돌했다. 하지만 정작 가장 큰 문제는 외국에 나간다면 가서 느끼고 싶은 것도, 취업을 하면 어떤 분야로 할 것인지 또 그를 위한 방법은 무엇인지도 명확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아예 생각을 안 하고 산 건 아니었지만, 추상적으로 머리에서 둥둥 떠다니던 조각들을 갑자기 하나씩 붙잡아 구체화하려니 그때서야 내가 아무런 준비도 되어있지 않았다는 것을 알았다. 


그런 생각들이 눈을 감을 때마다 와르르 밀려왔다. 뒤척이다 보면 결국 눈을 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잠에 들려면 눈을 감아야 했다. 그렇게 몇 번이나 반복을 했는지 모른다. 그러다 보면 밖은 서서히 밝아졌다. 해가 뜰 때마다 창에 비치는 그 특유의 푸른빛은 나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몇 시간이나 그렇게 고민하고도 당장 내일 눈을 뜨면 미래를 위해 무엇을 시작해야 하는지 모른다는 것과, 오늘도 제시간에 잠들지 못했다는 사실이 작고 날카로운 화살촉이 되어 동시에 파박하고 가슴에 꽂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나날들이었다. 사람이 몇 날 며칠을 그렇게 살다 보면, 더 이상 날짜 개념이 없어진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해가 뜰 때마다 고민했다. 

'그냥 자지 말까? 지금부터 하루를 시작해버리면 조금 더 나은 일상이 될지도 몰라.'

'아니야 그래도 자야지. 어제처럼 살면 뭐 어때.'

결국 이불을 개려다가도 덮는 나였다. 그때로 다시 돌아간다면, 나는 좀 더 나은 몇 달을 보냈을까. 더 낫다는 건 또 무엇일까. 잘 모르겠다. 다만 다행히도 그 시기를 잘 지나 보냈기에, 지금 이렇게 그때를 기억하며 글을 쓰는 내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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