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가는말입니다
'설레는 댓글창 열기'
이 말도 어느덧 꽤 오래된 유행이지만, 주로 SNS 상에서 논쟁거리가 될 만한 게시물에 댓글로 많이 달리는 문장이다. 또는 주위 사람이나 사회에 피해를 주거나, 자칫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답답함을 느끼게 하는, 일명 '빌런'에게 쏟아지는 '통쾌한 악플' 따위를 기대할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리 좋은 말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공개적으로 누군가를 비난하거나, 또는 비난을 부추기는 행위 자체는 당연히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사실 저 문장과는 크게 관계없지만, 현재의 대한민국은 이와 정확히 반대로 향하고 있다. 그냥 이 말을 하고 싶었다.
최근 여러 SNS나 유튜브 등 게시물의 댓글을 보면, 한 마디로 '화가 많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다. 어떤 게시물에도, 어떤 댓글에도 화를 내지 못해서 안달이 난 것처럼 보이는 사람이 너무도 많다. 이미 정상적인 논쟁이나 토론의 범주를 한참 벗어나, 어떤 의견에 다른 의견으로 대응하는 것이 아닌, 의견을 낸 사람의 인성이나 지능의 문제로 간주해 버리고 무차별적으로 공격하기 바쁘다. 찬성과 반대는 없고, 동조와 반박만이 있을 뿐이다.
처음에는 이러한 상황들을 일부 비정상적인 이들의 만행 정도로 보고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몇 달, 아니 몇 년째 이슈만 바뀌고 상황은 지속되는 걸 보고 있자면, 이제는 그 비정상이 점차 다수가 되어간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조금이라도 공격할 만한 틈이 보이면 비난과 욕설을 일삼는 이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는데, 단순히 일부 사회 구성원의 충동적 행동이 아닌, 일종의 문화로 자리 잡아가고 있다는 생각이 들 때면 가끔은 뒤통수가 오싹해질 정도다.
이것이 문화라는 생각이 든 시점은, 조금만 생각하면 이해할 수 있는 유머나 위트를 목적으로 행한 영상이나 글에도 어김없이 욕하는 모습을 목격한 이후다. 심지어 글이나 영상을 이해할 능력이 있음에도 그저 분노하기 위해, 이해와 오해 중 구태여 오해를 선택하는 모습들이 더러 있었다. 고의적으로 오해한 후 배설하듯 욕을 내뱉고, 논리적인 반박에는 대응하지 않았다. 참으로 감정적이고도 유아적인 행동이 아닐 수 없다.
논리는 무논리를 이길 수 없다 는 말이 있듯이, 원래 이성과 논리를 유지하려 애쓰던 사람들도 어느덧 체념하고 비난으로 대응하고 마는 모습들을 보면 그저 안타까웠다. 이미 깨진 유리창으로는 날아오는 돌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뉴스나 기사, 일부 매체에서도 이러한 행태를 꼬집어 비판하는 내용을 본 적 있는데, 그 대부분이 젊은 세대의 문해력 문제로 치부하며, 교육의 중요성만을 강조할 뿐이었다. 물론 일부는 실제로 문해력이 부족하여 작성자의 의견을 이해하지 못했을 수도 있겠지만, 개인적으로 문해력 문제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문해'력'이 문제가 아닌, 말 그대로 '문해(文解)'를 거부한다는 느낌이 더 컸다.
분노할 일에 분노하기를 결코 단념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자신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고, 자신이 서 있는 곳을 지킬 수 있으며, 자신의 행복을 지킬 수 있다.
책 <분노하라>의 저자인 사회운동가이자 작가 스테판 에셀 Stephane Hessel이 했다고 전해지는 말인데, 사회에 저항적이었던 고등학생 때 참 좋아했던 말이다. 앞서 말한 온라인 상에서 일어나는 일련의 행위들과 저 말만 놓고 보면 자칫 이러한 행태가 바람직하게 보일 수 있지만, 스테판의 분노에는 사회의 부조리를 비판하는 과정에서 마주하는 여러가지 위기로 인해 흔들릴 수 있는 자신의 정체성을 굳건히 하고, 정의롭지 못한 것을 바로잡는 데 있어 목소리를 내는 것을 주저하지 말아야 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분노할 때는 그 정도의 결심과 의지가 동반되어야 한다는 뜻이기도 하다.
사람들은 이전보다 쉽게 분노하고, 분노에 편승하며, 그 분노는 전염된다.
분노와 여론은, 방향이 있되 유기적이며 어떤 새로운 결과를 만들어낸다는 점에서 일종의 에너지와 같다고 생각한다. 지금은 그 에너지가 아깝다. 마치 격렬한 전투 이후 낭자한 피처럼 흩뿌려져 있는 분노들이 누군가의 뒤틀린 마음을 대변하며 개인의 스트레스를 배출하는 용도가 아니라, 좀 더 좋은 곳에서 건강한 방식과 올바른 목적으로 쓰였으면 하는 바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