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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부전화, 꼭 해야 하나요?

by 미나리






당연히 예쁨 받는 며느리가 될 줄 알았다.



고부갈등? 그런 게 요즘 어디 있어. 인터넷에나 나오는 이야기겠지.


이 환상이 깨지는 데에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번째 난관은 바로 악명 높기로 유명한 '안부전화'였다.


결혼 전, 시어머니의 전화를 몇 번 받은 적이 있다.

"여자들끼리 더 가까워져야 한다. 통화를 더 자주 하면 좋겠다."는 등의 말씀을 하셨다. 긴장한 내 겨드랑이가 땀으로 흠뻑 젖었다.

남편도 어머니에게 자주 전화를 드리라며 부추겼다.

아니, 아들인 자기가 직접 하면 되는 걸 왜 나한테?


나는 전화를 좋아하지 않는다.

용건이 있는 전화야 얼마든지 하겠지만, 할 말도 없는 안부전화 같은 건 정말 고역이다. 어색하고 쑥스럽고, 전화하는 시간 동안 상대방에게 내 시간을 온전히 할애해야 하는 것도 부담스럽다.

전화를 받는 것도 불편하다. 상대방이 무슨 일로 전화를 걸었는지 예상할 수도 없고, 얼마나 긴 통화를 하게 될 지도 알 수 없다.

그러니까 나는 카톡이 편한 전형적인 MZ 세대다. 메시지가 온 것을 미리 확인하고 대답할 준비가 되면 하고 답을 하고 싶지 않으면 하지 않기도 하는.


결혼 후 처음으로 시댁을 방문한 날이었다. 시부모님께서 우리 부부를 앉혀놓고 말씀하셨다.

"이제 결혼도 했으니 며느리가 시어머니한테 연락을 자주 드리도록 해라."

'네.' 하고 대답은 했지만 썩 내키진 않았다.


남편에게 전화가 걸려왔다. 시어머니였다. 남편은 전화기에 대고 한참을 소리 지르며 싸웠다.

'나 때문이구나. '

며느리가 안부전화를 하지 않아 부아가 치밀어 아들에게 전화하신 거였다.

도대체 왜?

이해가 가지 않았다. 자식도 아닌 며느리에게 왜 전화를 받고 싶으신 건지, 전화가 안 오는 게 그렇게 화가 날 일인지, 그걸로 사랑하는 아들에게 이럴 일인지, 자식의 신혼생활을 망쳐놓을 만큼 중요한 일인지, 아무리 생각해도 알 수 없었다.


남편이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불편했다.

내가 어머니를 좀 설득해 볼까?

전화를 드려 "아직은 어머니가 많이 어렵다, 천천히 서로를 알아가고 편해진다면 강요하지 않으셔도 스스로 전화를 드릴 것이다. "는 등의 말씀을 드렸다. 다행히 시어머니는 나를 이해해 주셨다.


하지만 머지않아 전화가 뜸해지면 여지없이 아들에게 전화를 하셨고 역정을 내셨으며, 시댁에 방문한 나를 본체만체하시고 인사도 잘 받아주지 않으셨다.


남편도 나를 닦달하기 시작했다.

"그냥 자기가 어머니한테 전화 좀 드려. 어려운 거 아니잖아. 내 친구 와이프는 일주일에 두세 번씩 알아서 한다던데. "

남편도 더 이상 내편이 아니었다.


이제는 어쩔 수가 없었다. 내 편이 아무도 없는 상황에서 힘든 싸움을 계속 할 자신이 없었다. 결혼하자마자 이 별것 아닌 걸로 이혼을 할 자신도 없었다. 평생 봐야 하는 끊을 수도 없는 인연인데 어쩌겠어. 그래, 뭐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

내가 졌다.

"이제부터는 일주일에 한 번은 어머니께 연락드릴게."

남편의 입가가 미소로 씰룩거렸다.


데드라인이 다가오면 심장이 쿵쿵거렸다.

그냥 오늘 드릴까? 하, 아니야, 내일 하자.

이게 뭐 대단한 일이라고 긴장이 될까.


시어머니는 음식은 뭘 해 먹는지, 남편은 잘 챙겨주고 있는지를 궁금해하셨고, 나의 부족한 점이나 고쳐야 할 점, 며느리로서의 역할을 알려주셨다.

시어머니와의 통화는 한 시간 남짓 이어졌다. 대화가 길어지다 보니 시어머니는 나에게 상처 주는 말들을 종종 하셨고 나 역시 의도치 않게 시어머니 심기를 거스르는 말들도 하게 됐다.

안부전화를 자주 하면 관계가 좋아져야 하는데, 나와 시어머니 사이에는 오히려 갈등만 더 생겨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은 곧바로 우리 부부의 갈등으로 이어졌다.

나는 점점 더 지쳐갔다.


전화를 하기 며칠 전부터 스트레스를 받고, 전화를 하고 나면 그 뒤 며칠간 상처받은 말들을 곱씹는 일상이 반복되었다. 내 삶이 온통 시어머니로 가득 찼다. 하루 종일 멍하니 눈물 흘리는 날들이 늘어갔다.



시어머니가 그토록 안부전화를 바라신 이유는 뭐였을까? 아들을 빼앗긴 것에 대한 상실감, 어른으로 존중과 대접받고 싶은 마음, 며느리를 통제하고 싶은 욕구 같은 것들이 아니었을까?


하지만 시어머니의 행동은 바라던 것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내고 말았다. 아내를 보호하고자 하는 아들과의 잦은 갈등, 억지강요에 대한 며느리의 반발심과 거리감 등만 생겨났기 때문이다.


신혼 때의 부부싸움 원인 중 8할이 안부전화였고 그로 인해 우리 부부 관계까지 위태로워진 것을 생각하면 지금도 시어머니가 참 원망스럽다. 안부전화 강요만 없었어도 훨씬 더 사이좋은 고부관계, 부부관계가 될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전화는 제가 하고 싶을 때 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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