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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늘아, 지금 집으로 좀 와라.

by 미나리



지금 집으로 좀 와라.



시댁에 다녀온 다음 날 걸려온 시어머니의 전화였다.


"네? 무슨 일 있으세요? "

"아니. 별 일은 없고 그냥 와라. "

"아, 네. 알겠습니다. "


당황스러웠다. 바로 어제 방문했는데 무슨 일이실까.

어제 내가 무슨 실수를 했던가? 기분이 나쁘셨나? 이유라도 알려주시면 좋으련만 왜 명령조로 말씀하시는 거지? 왜 내 스케줄은 묻지도 않고 다짜고짜 오라고 하시지?

시댁이 가깝지도 않았다. 차로 시간이 훌쩍 넘는 거리였다. 하지만 초보 며느리인 내가 감히 시어머니께 다른 말을 할 수는 없었다. 대신 남편한테 문자를 보냈다.

'어머니가 지금 집으로 오라시는데? '

'왜?'

'나도 몰라. 이유는 안 말하셨고 그냥 오라셔. '



한참 뒤, 남편에게 전화가 왔다.

"가지 마. 내가 얘기했어. "

"그럼 어머니한테는 뭐라고 말씀드려?"

"연락 안 해도 돼. 그냥 안 가면 돼. "

"알았어. 근데 왜 오라고 하신 거야?"

"그냥 뭐 이것저것 알려 주신다고. "

"뭘 알려 주시는데?"

"아내나 며느리 역할 같은 거. 아무튼 안 간다고 했어. "


시어머니를 찾아뵙는 일은 무산되었지만 마음이 편치 않았다.

얼마 후,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응, 그래. 웬일이니? 며느리 목소리 듣기가 힘드네. "

"아, 네. 잘 지내셨어요? "

"그래. 이제 너도 나한테 이것저것 배우고 인수인계를 받아야 하지 않겠니? 네가 뭐 할 줄 아는 게 있겠어? 아무것도 모르잖아. "

"인수인계요? 아... 제가 직장 부하도 아닌데 무슨 인수인계를 받아야 하나요? 그런 표현은 조금 불편하네요. 저는 이 사람 엄마가 되려고 결혼한 게 아니고 아내가 되려고 결혼한 거예요. 그러니까 어머니께 인수인계를 받을 것도 없고요. "

"뭐? 우리 며느리는 말도 참 잘하네. 나를 아주 가르치려고 드는구나. 알았다. 끊는다. "

시어머니 기분을 또 상하게 해드리고 말았지만 할 말은 했으니 속이 시원했다.



어머니 눈에는 당연히 갓 들어온 새 며느리가 탐탁지 않으셨을 테고, 아무것도 모르는 햇병아리에게 애지중지 키운 아들을 맡긴다고 생각하니 불안하기도 하셨던 것 같다.

실제로 그렇기도 했다. 결혼 전 평생 엄마 곁을 떠나본 적이 없던 나는 집안일은 정말이지 젬병이었다. 요리, 청소, 설거지, 빨래 뭐 하나 제대로 할 줄 아는 게 없었다.


하지만 나만 새 신부고, 남편은 헌 신랑인가?

결혼은 둘이서 했는데, 왜 며느리 혼자만 들들 볶이고 가르침을 받아야 하는지 알 수 없었다.


며느리는 시어머니의 역할을 물려받아야 하는 후임자가 아니다. 결혼을 해서 아내가 된 것뿐이고, 남편과 함께 꾸린 새로운 가정의 주체이다. 우리의 집과 삶은 우리 둘이 만들어 가는 것이다. 누군가의 명령과 통제에 따르는 것이 아닌, 둘이서 자유롭고 행복하게 꾸려나가는 가정. 때론 실수하고 틀리고 힘든 길을 걷게 되더라도 말이다.



인수인계는 거절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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