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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가외인 며느리도 대접받는 거 좋아합니다.

by 미나리





너는 결혼했으면 시댁이랑 더 가까워져야지, 너무 거리를 두는 것 같아.



시어머니의 전화였다.


"네? 제가 뭘요?"

"나한테 전화도 잘 안 하고, 시댁에 잘 오지도 않잖니. 다른 며느리들은 시어머니랑 데이트도 하고 그런다던데. "

"친정에 하는 것보다 훨씬 더 잘하고 있는데요? 친정은 안 간지 두 달도 넘었어요. 전화도 언제 했는지 기억도 안 나고요. 그리고 제 남편도 저희 친정에 전화 안 해요. "

"너는 이제 출가외인이니까 당연히 친정보다 시댁에 더 잘해야 하는 거야. "

"출가외인이요? 딸도 있으신 분이 무슨 그런 말씀을 하세요? 시누이도 결혼하면 그럼 출가외인인가요? 시누이가 들으면 섭섭하겠어요. "


출가외인이라는 말을 직접 듣게 될 줄은 몰랐다.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낳아주고 키워준 친부모보다 남편의 부모를 더 위해야 한다는 건 대체 무슨 얼토당토않은 소리란 말인가. '시'자가 벼슬인가?!


"이제 너랑 나랑 우리 집안을 같이 이끌어 나가야 하는 거야. '내가 주인이다.' 하는 마음으로 시키지 않아도 이것저것 스스로 알아서 하고 해야지. 남편 챙기는 거야 당연하고 시부모까지 네가 알아서 챙겨야 하는 거야. 주인 하기 싫으니? 너도 손님처럼 대해주랴? 손님 대접받고 싶으면 그리 해줄게. 관심도 끄고. "



저도 손님대접 해주세요!



라는 말을 할까 말까 짧은 시간 동안 머릿속으로 수십 번 고민하다가 간신히 삼켰다.

"아, 아니에요..."

"그래. 남처럼 지내는 게 뭐가 좋니. 이제 너도 우리 가족이잖니. 서로서로 챙겨주고 위해주고 그러면서 살아야지. "

시어머니의 답은 이미 정해져 있었고 심기를 거스르는 말을 해봤자 또 갈등이 생길 테였다. 그럼 결국 또 나만 피곤해지겠지.



시어머니는 나더러 이 집안의 '주인'이라면서 남편과 시부모님을 '주인'의식을 가지고 잘 섬기라고 하셨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주인' 대신 '하인'이 들어가는 게 어울린다. 서열 꼴찌에 힘도, 가진 것도 없는 며느리에게 말 뿐인 '주인' 이름표가 웬 말인가.

게다가 손님이 되면 대접은 받고 간섭은 안 받을 수 있다니, 며느리에게 이보다 더 좋은 대우가 어디에 있을까. 시어머니의 손님이 될 미래의 사위가 부러워지는 순간이었다.


몇 년 후, 드디어 시어머니의 손님을 맞이하게 되었다.

손님인 그는, 주인인 나와는 달리 처가댁에 와서 가만히 앉아있다가 차려주는 밥이나 먹고 가면 그만이었다. 바쁜 '손님'에게 안부전화 강요는 일절 없었고, 도리를 요구하는 일도 없었다. 그저 생신, 명절에만 들러 손님 대접이나 받고 가면 되었다.


시댁에 처음으로 시매부가 다녀간 다음 날, 시어머니는 내게 전화를 걸어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는 내가 사위 밥상 차리고 있으면 도와주고 해야지. 시매부도 좀 챙겨주고. "



이런 게 주인이면, 사양할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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