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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이 아닌 시어머니랑 결혼한 건가요?

by 미나리




내가 대체 누구랑 결혼한 거지?



결혼 전에는 몰랐다. 결혼은 둘이 하는 건 줄로만 알았다. 나랑 남편만 잘 살면 되는 건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다. 시어머니는 잘해주실 땐 과할 정도로 애정과 관심을 보여주셨지만 뭔가가 마음에 안 들면 홱 토라지곤 하셨고, 며느리가 본인을 사랑하지 않는 것 같다며 자꾸만 내 마음을 확인하려 드셨다.(이제 막 결혼 한 며느리가 시어머니를 사랑할 이유가 당연히 없잖아요?!) 마치 스무 살 연인과 연애하는 기분이 들었다. 결혼을 셋이 한 건가? 아니, 시어머니랑 결혼한 건가? 이럴 줄 알았다면 결혼 전에 시어머니를 좀 더 알아봤어야 하는 건데, 내가 너무 경솔하게 인생의 중대한 결정을 해버린 걸까. 어쩌지. 이제와서 무를 수도 없고. 아니, 더 늦기 전에 물러야 하나? 애라도 생기기 전에 여기서 끝내야 하나?


신혼생활 내내 나는 시어머니의 말 한마디, 한마디에 이리저리 휘둘리고 나부꼈다. 시어머니는 어른이었고, 내 남편의 어머니였고, 그러니 나랑도 평생을 함께 해야 할 중요한 사람이기 때문이었다. 시어머니는 화가 나면 시댁에 오지 말라고 하시거나, 현관 비밀번호를 바꾸기도 하셨다. (애초에 나는 시집 비밀번호 같은 건 알지도 못했지만 말이다.)


시어머니의 기분이 조금이라도 상한 게 느껴지면 풀어드리려고 몇 번씩 전화를 드렸다. 잘 보이고 싶어서 내 성격에 없는 애교도 부려보고, 선물도 해드렸다. 연애할 때 남자친구한테도 안 해본 노력들을 시어머니에게 쏟아부었다. 내 평생 누군가에게 이렇게 최선을 다해 본 것은 처음이었다. 하지만 그때뿐이었다. 시어머니는 언제나 나의 새로운 결점을 찾아내셨고, 생각지도 못한 이유로 곧잘 기분이 상하시곤 했다.


표정이 어둡다고, 빠릿빠릿 움직이지 않는다고, 성격이 싹싹하지가 않다고, 옷차림이 마음에 안 든다고, 감사표현을 안 한다고, 말투가 예의가 없다고 시댁에 다녀온 다음날이면 어김없이 전화로 마음에 안 드는 부분을 지적하셨다. 내가 본인을 무시하고 싫어하는 게 분명하다고, 그래서 화가 나서 몇 날 며칠 잠도 못 잔다고 하셨다.


억울했다. 하지만 계속 듣다 보니 말로 나한테 문제가 있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 같이 부족한 사람은 결혼을 하지 말았어야 했는데, 괜히 결혼을 해서 멀쩡히 잘 살고 있던 집안에 분란을 일으키는구나. 나만 없어지면 아무 문제없을 텐데. 난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그냥 확 죽어버릴까? 그러면 남편과 시댁 식구들은 다시 행복해지겠지? 나 같은 며느리 말고 시어머니 마음에 드는 새 며느리를 얻는다면 만족하실까?



그 후 나는 죽지도 못했고 이혼도 못했다. 그럴만한 용기가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고 시어머니가 바라는 유형의 며느리가 되지도 못했다. 오히려 처음보다 말을 더 줄였고, 쓸데없이 나서거나 오지랖 부리는 일도 줄였다. 예쁨 받는 것은 고사하고 욕이나 듣지 말자, 가만히 있으면 욕이라도 덜 먹겠지, 하는 생각으로.



결혼 10년 차가 되어가는 지금도 시댁에 다녀온 뒤에는 내가 또 무슨 말실수를 하진 않았는지, 밉보이는 짓을 하진 않았는지 자꾸만 복기하고 곱씹는다. 어쩌다 말을 많이 하거나 나대고 돌아온 날에는 내 주둥이와 머리통을 마구 때리며 말이다.



어머니, 저 마음에 안 드시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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