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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가 있는데 왜 딸이 설거지를 하니?

by 미나리



시댁에서 내가 설거지해야겠지?



도대체 왜 여자들만 이런 고민을 해야 하는 걸까. 시댁을 처음 방문한 날을 제외하고는 설거지는 내 담당이 되고 말았다. 설거지를 안 하고 앉아있자니 눈치가 보이기도 했고 '어머니께서 밥을 차려주셨으니 치우는 거라도 내가 해야지. ' 하는 마음으로 시작했다. 그런데 막상 내가 설거지를 해도 아무도 말리지 않았고, 오히려 시댁 식구들 모두 당연히 며느리가 해야 하는 일이라고 생각하는 듯했다. 처음에는 시어머니만 옆에서 내가 씻은 그릇을 정리해 주시곤 하셨다. 새로 들어온 며느리를 혼자 설거지하게 두는 것이 미안하셨던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바란 것은 남편과 함께 설거지를 하는 것이었다. 애석하게도 남편은 전혀 나를 도울 생각이 없어 보였다. 집으로 돌아온 뒤, 나는 남편과 말다툼을 했다.


"왜 내가 설거지할 때 도와주지 않았어?"

"내가 도와주면 엄마가 싫어하니까. "

"왜 싫어하셔? 당신이 그걸 어떻게 알아? 그럼 며느리가 설거지하는 건 좋아하셔?"

"아무래도 좀 그렇지. 내가 도와줘봤자 엄마가 널 더 싫어하실 텐데. "

"그게 도대체 소리야? 그럼 친정 갔을 땐 당신이 설거지해."

"아, 무슨 사위가 설거지를 해. "

"뭐라고? 당신도 며느리는 당연히 일 해야 되는 사람이고 사위는 대접받아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거야?"

"대신 내가 밖에서 돈도 더 벌어오고 결혼할 때 우리 집에서 경제적 지원도 더 받았잖아. 그럼 네가 며느리 역할이라도 해야 공평한 것 아니야? "


남편의 말을 듣고 생각이 많아졌다. 맞는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는 말이 괜히 있는 게 아니구나. 아차 싶었다. 결혼할 때 지원을 받은 대가로 시댁에서 내 노동이 당연시되는 것인 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대가성 지원이라면 언질이라도 해줘야 맞는 것 아닌가? 좋은 마음으로 주시는 건 줄로만 알았고 그래서 감사하게 받은 거였는데 뒤통수를 맞은 느낌이었다. 지원을 해줄 테니 며느리는 이러이러한 역할을 해야 한다라고 미리 조건을 거셨다면, 수락을 할지 거절을 할지 선택을 했을 것이었다.


속이 상했다. 남편에게 차라리 받은 것을 돌려드리는 게 어떻겠냐고 물었다.

"너 바보냐? 네가 시댁을 1년에 몇 번이나 간다고 그래? 우리 엄마가 힘든 일 시키는 것도 아니고 넌 그냥 돕기만 하면 되는 건데 계산이 안돼? 내가 왜 너 때문에 지원받은 것들을 돌려드리고 힘들게 살아야 하는데? "

남편은 내 입장을 전혀 이해하지 못했다.


친정부모님이 원망스럽다는 못된 생각까지 들었다. 시부모님만큼 친정부모님도 경제적 지원을 해주셨더라면, 이런 취급을 받지 않아도 되었던 것 아닐까? 하지만 그렇게 따지면 반반 결혼을 한 여자들은 사위랑 똑같은 대접을 받으며 살아야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는 것을 익히 들어왔다. 며느리는 애초에 무슨 짓을 해도 좋은 대접을 받을 수 없는 건가?


어쩌다 시댁에서 설거지를 하지 않고 집으로 돌아간 뒤에는 어김없이 전화기 속 시어머니의 냉랭한 목소리를 들어야 했다.

"너는 며느리가 되어가지고 시댁 와서 일하는 게 그렇게 싫으니? 시아버지, 시누이도 다 네 욕하더라. 다른 집 며느리들은 와서 청소에 빨래까지 하고 간다던데. 너 그렇게 일하기 싫으면, 시댁 올 생각 말고 그냥 너네 집에서 쉬어라. 올 필요 없다. "

"아니에요, 어머니. 앞으로는 시댁에서 열심히 일 할게요."

나는 바보천치같이 또 납작 엎드렸고 다음 방문 때 설거지는 물론 청소까지 했다.



임신 중일 때도, 만삭 때를 제외하고는 항상 설거지는 내 차지였다. 어느 날, 남편이 시누이에게 말했다.

"오늘은 네가 설거지 좀 해."

"내가 설거지를 왜 해?"

"그럼 누가 해?"

"모르지. 오빠가 하든지. "

"싫어. 내가 왜 해."

난 너무 화가 나고 황당해서 못 들은 척해버리고 말았다. 시어머니도 옆에서 듣고 계셨지만 웃으며 나에게 다른 말씀을 하셨다. 그러니까 남편은 임신한 아내한테 설거지를 시키는 것이 미안해서 동생한테 하라고 한 것 같은데(왜 자기가 할 생각은 안 하는지 모르겠다. ) 둘 다 왜 자기가 하냐며 싸우다가 아무도 하지 않았고 결국 내가 했다. 그날, 집에 와서 남편을 쥐 잡듯 잡았다.



몇 년 뒤, 시집간 시누이가 갑자기 철이 들었는지 자기가 설거지를 한다며 나서는 게 아닌가. 웬일인가 싶어 지켜보고 있는데, 시어머니가 옆으로 오시더니 "얘, 너는 그냥 가서 쉬어. 무슨 설거지를 한다고 그래." 하며 만류하셨고, 짧은 실랑이 끝에 시누이는 결국 설거지를 하지 않았다. 시어머니에게 서운한 마음이 폭풍처럼 밀려왔다. 정말 손에 꼽게, 나에게도 설거지를 하지 말라고 하셨던 적이 있긴 했다.


오늘은 그냥 둬라. 설거지 면제권 줄게.


하시며, 선심 쓰듯이 말이다. 그런 말을 들을 때면 마치 내가 식당에서 일당 받고 설거지하는 아줌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언제는 나도 똑같은 자식이라더니 이렇게 차별해도 되는 건가? 나도 남의 집 귀한 딸인데! 결혼 후 나는 시부모님을 내 부모님보다 더 잘해드리고 대우해 드렸는데 어떻게 이러실 수가 있지? 며칠이 지나도 속상한 마음이 가시지 않아 시어머니와 통화하며 털어놓았다. 어머니는 기가 차 하시며 말씀하셨다.


네가 있는데, 왜 내 딸이 설거지를 하니?




말문이 턱 막혔다. 이게 도대체 무슨 말 같지 않은 소리란 말인가? 무논리로 무장한, 근데 이제 당당하고 뻔뻔함을 곁들인 이 말에 뭐라고 대응해야 할지 감도 오지 않은 나는 대화를 포기했다. 모멸감과 치욕감까지 느껴졌다. 나를 대체 뭐라고 생각하시기에 이런 말을 하시는 걸까? 시어머니는 정말 나쁜 사람인가? 이건 시어머니 개인의 문제일까, 아님 사회의 문제일까? 궁금해진 나는 친정엄마한테 슬쩍 물어봤다.


"엄마, 내가 친정 와서 설거지하면 하지 말라고 하잖아. 며느리 와도 설거지하지 말라고 할 거야?"

"며느리는 설거지해야 할 것 같은데?"

"딸은 안 해도 되는데, 왜 며느리는 해야 돼?"

"우리 땐 다 그렇게 했어. 당연히 며느리가 설거지해야지."



내 동생... 결혼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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