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후 맞는 첫 명절이었다.
"너 고생 안 시키려고 내가 며칠 동안 혼자 음식 다 해놨다. 전만 조금 부치자. 얼른 편한 옷으로 갈아입고 나와라. "
나를 위하는 말인 것 같으면서도 아닌 것 같기도 한 요상한 말이었다. 어머니는 이런 류의 말씀을 자주 하셨다.
첫 명절이니 긴장은 되었지만, 일이야 얼마든지 해도 되었다. 내가 걱정한 것은 따로 있었다. 그건 바로 며느리만, 여자들만 일하는 것.
"얘, 너는 피곤할 텐데 아빠랑 사우나 좀 갔다 와. "
예상대로였다. 남편이 한참 내 눈치를 봤다. 마음이 약해진 나는 다녀오라고, 괜찮다고 말했다. 결국 나랑 시어머니, 시누이까지 여자 셋만 집에 남았다.
"며느리랑 딸이랑 같이 전 좀 부칠까? 며느리만 시킬까 봐 걱정했니? 난 그런 시어머니 아니야."
본인은 되게 젊은 사고방식을 가졌다고 생각하시는 듯했지만, 공감은 전혀 되지 않았다. 남자들은 왜 쏙 빼는 거죠?
한참 뒤 시아버지와 남편이 집으로 돌아왔다. 어머니께서는 날 보며 말씀하셨다.
"우리도 같이 목욕이나 갔다 올까?"
에엑? 내 평생 들어본 말 중 가장 황당한 말이었다. 결혼 전에 인터넷 글에서 종종 보던 상황이긴 했지만 이걸 또 실제로 겪을 줄은 몰랐다.(애송이, 결혼은 실전이야. ) 아직 한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 어색한데 목욕탕이라니. 나는 엄마와도, 친한 친구들과도 목욕탕에 가지 않는다. 다른 사람의 알몸을 보는 것도, 내 알몸을 다른 사람에게 보이는 것도 부끄럽고 불쾌하다. 물론, 아무렇지 않게 잘 다니는 사람들도 많다는 것은 알고 있고 존중한다. 그냥 내 감정이, 내 생각이 그렇다.
속으로 많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시어머니는 왜 며느리랑 목욕탕에 가고 싶으신 걸까? 그 심리가 뭘까? 며느리 몸매가 궁금하신 걸까? 알몸을 터야 친해진다는 순수한 마음일까? 혼란스러웠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싫은 건 싫은 거였다.
"아, 아니요. 저는 목욕탕 원래 안 가요. 시누이랑 다녀오세요. "
"가서 깨끗하게 씻으면 피로도 풀리고 좋지 뭘 그러니, 가족끼리. "
"아니요. 저는 괜찮아요. 안 갈래요. "
이후에도 명절 때마다 함께 목욕탕 가자는 소리를 하시길래 억지웃음을 지으며 "아니요. 정말 싫어요. "라고 했더니 그 뒤로는 포기하신 것 같다.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나 어머니와 함께 식사 준비를 했다. 남편을 깨웠지만 피곤하다며 일어나지 않았다. 아침식사 준비를 다 해놓으니 시아버지와 남편, 시누이가 나왔다. 어머니 혼자 아침을 준비하게 두는 것은 예의가 아니지 싶어 도와드린 거였지만, 예의라는 게 원래 자식들은 안 차리고 며느리만 차리는 건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친정에 왔다. 우리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상을 한가득 차려놓으셨다. 남편과 나는 그저 차려놓은 밥상을 받아먹으면 되었다. 밥을 다 먹자 엄마는 다시 술상을 내왔다. 아빠랑 남편은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계속 받아먹기만 했다. 엄마는 쉴 틈도 없이 상차림과 설거지를 반복했다. 도대체 이게 누구를 위한 명절이지?
따지고 보면 시댁에서 명절에 제일 많이 고생하는 사람은 시어머니이다. 아마 대부분의 집이 마찬가지일 것이다. 음식을 해본 사람이라면 음식 재료를 준비하는 것만 해도 보통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안다. 게다가 며느리 고생 안 시키려고(?) 대부분의 음식은 다 해놓으시니 얼마나 명절이 힘드실까. 이런 시어머니를 두고 기껏해야 전이나 몇 개 부치고, 상차림이나 돕고, 설거지나 하는 며느리가 감히 무슨 불만을 가질 수 있냐고 하는 시부모님이나 남편의 말도 이해가 간다. 하지만 며느리 입장에서는 전혀 맥락을 파악하지 못하는(아니면, 일부러 모르는 척하는) 말로 들린다. 남자는 쉬고 여자만 일하는 문화, 며느리의 노동력을 당연시하는 태도가 싫은 것뿐이다. 노동의 양이 아무리 많아도 모든 자식들이 모여 공평하게 일하고 함께 웃고 떠들 수 있다면, 며느리들도 명절을 싫어할 이유가 없다. 요즘도 여전히 명절 직후 이혼율이 치솟고 명품백의 판매량이 급증한다고 한다. 이 기이한 문화는 언제쯤 끝나게 될까?
명절, 모두가 행복하면 안 되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