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니? 지금 너희 집으로 가고 있다.
신혼 초 시어머니는 한 달에도 몇 번씩 반찬을 만들어 가지고 오셨다. 마음은 정말 감사했지만 어쩐지 좀 부담스럽기도 했다. 시어머니는 늘 출발을 하고 난 뒤에야 연락을 주셨는데, 허둥지둥 씻고 정신없이 집 정리를 하느라 한바탕 전쟁을 치렀다. 임신 중에도, 출산 후에도, 시어머니의 이런 갑작스러운 방문은 계속되었다.
"혼자서 아기 보는 것 힘들지? 시간 날 때 내가 가서 도와줄게. "
"아니에요, 어머니. 왔다 갔다 하시기에 거리도 너무 멀고요, 아기 보는 거 힘드실 거예요. "
"아니야. 내가 가서 볼 테니 너는 푹 쉬어. "
"저는 하나도 안 힘들어요. 익숙해져서 괜찮아요. "
"그래도 잠도 잘 못 잘 텐데, 너는 잠이나 자면 돼. 나 신경 쓸 거 없어. "
"그래도 어머니가 오시는데 제가 어떻게 신경을 안 쓰겠어요. 괜찮아요, 어머니. "
내 걱정을 해서 오신다는 것으로 알아들은 나는 시어머니의 도움을 거절했다. 물론 도움을 받는 것이 결코 편하지 않을 것 같기도 했다. 그 후로도 몇 번 이런 실랑이가 되풀이되었지만, 나는 한사코 거절했다.
"너는 내가 너네 집에 가는 게 그렇게 싫으니? 도와주러 간다는데도 어쩜 그렇게 계속 거절하니? 내가 내 손주 보러 내 아들 집에도 마음대로 못 가니? 네 허락받고 가야 되는 거야? "
"네? 저는 어머니께서 도와주러 온다고 하셔서 괜찮다고 한 거였어요. 어머니 힘드실까 봐 그랬죠. 손주 보러 오고 싶으신 거였으면 말씀을 하시지 그러셨어요. "
"네가 내가 오면 신경 쓰인다며? 아주 며느리 눈치 보느라 서글퍼서 살 수가 없다. "
"아기 보고 싶으시면 언제든지 오세요. 오시기 전날 미리 알려주시고요. "
오해도 풀었고 언제든 오시라고 말씀드렸으니 조만간 집에 방문하실 줄 알았다. 하지만 몇 주가 지나도 아무 소식이 없었다.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며, 시어머니께 전화를 드렸다.
"어머니, 아기 보러 오신다더니 왜 안 오세요? 바쁘신가 봐요. "
"됐다. 안 간다. "
"이번 주에 저희가 시댁으로 갈까요? "
"올 거 없다. "
"아, 네. 알겠습니다. "
덩달아 기분이 상한 나는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가지 않고 전화를 끊었다. 몇 시간 뒤, 다시 전화기가 울렸다.
"지금 너희 집으로 간다. "
누가 들어도 화가 잔뜩 난 목소리였다. 이제는 나도 화가 났다. 아니 도대체 왜? 뭐 때문에?
시어머니는 온몸으로 냉기를 내뿜으며 집안으로 들어오셨다. 손주 보러도 마음대로 못 오게 하고, 오고 싶으면 전 날 허락받고 오라는 며느리한테 너무 서운하다고 하셨다. 나는, 언제든 오시라고 말씀드렸고 대신 미리 연락만 달라고 한 것인데 뭐가 못마땅하시냐,며 반문했다. 한참 언쟁을 벌이다 둘 다 폭발하고 말았다.
시어머니가 가신 뒤에도 마음이 진정되지 않았다. 이제 막 출산한 며느리한테 그게 그렇게 서운할 일인가? 내가 며느리가 아닌 딸이었어도 이렇게 하셨을까? 이후로 오는 시어머니의 연락을 한 통도 받지 않았다. 될 대로 돼라. 이젠 나도 모르겠다. 이혼하면 하는 거지.
남편은 내 편을 들며 엄마랑 싸워주었지만 결국은 중립을 취했다. 내 기분이 상한 것은 인정하지만, 어른한테 언성을 높이고 그 뒤에도 연락을 무시한 것은 예의에 어긋난 행동이라고 말했다.
"나이만 많다고 다 어른이야? 예의는 아랫사람만 지켜야 하는 거라고 누가 그래?"
나는 남편에게 소리를 꽥 질렀다. 우리 부부의 냉전이 시작됐다. 남편은 나를 달랬다가, 화를 냈다가, 우울해했다가, 원망했다가, 체념했다가를 반복했다. 남편은 여전히 나와 어머니가 잘 지내기를 바라는 욕심을 놓지 못하는 듯했다. 남편은 하루가 다르게 피폐해져 갔다. 피해자는 나인데 왜 자기가 저러나 싶었지만, 이대로 가다간 정말 우리 부부관계가 끝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이런 일은 처음이었으니까 한 번만 더 기회를 가져보자. '
오랜만에 시댁을 방문했다. 시어머니께서는 예상밖의 온화한 표정으로 맞아주셨다. 서로 사과하며 갈등을 풀었지만, 어머니께서는 어른에게는 예의를 잘 지켜야 한다는 말씀을 마지막으로 강조하셨다. 속으로 하고 싶은 말이 많았지만 남편을 생각해서 꾹 참았다.
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걸까? 가만히 있는 나한테 먼저 화를 내며 찾아온 사람은 시어머니인데 부당함에 대응하는 것이 어떻게 예의가 없는 게 될 수가 있지? 억울했다. 한편으로는 그냥 참을걸 괜히 분란을 일으켰나 싶은 후회도 들었다. 하지만 언젠가 터져도 터질 일이었다. 며느리가 바락바락 대드는 모습에 적잖은 충격을 받으셨는지, 이후로는 시어머니의 행동이 훨씬 조심스러워지셨으니 나름의 수확도 얻었다. 이제는 진짜로 잘 지낼 수 있을까? 아니면 잠깐의 휴전에 불과할까? 우리 고부관계는 아슬아슬 줄타기를 하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