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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도 밟으면 꿈틀 합니다.

by 미나리



할 말은 하는 며느리가 될 거야.



몇 번의 직접적인 갈등 후, 시어머니의 기세가 많이 꺾이셨다. 대놓고 부정적인 감정표현을 하시는 일은 없어졌다. 하지만 며느리에 대한 기대를 완전히 버리신 것은 아니었다.



"남편 아침은 챙겨주니?"

"요즘은 못 챙겨줘요. 저랑 아기랑 둘이 자는데 아기가 자주 깨서 저는 잠도 잘 못 자거든요. 그래도 애 아빠는 안방에서 혼자 편하게 잘 자니까 다행이죠?"


"며느리 노릇 좀 더 잘해라. 더 살갑게 할 수는 없니? 거리도 가까워졌으니 2주에 한 번은 와야 할 것 같다. 전화도 더 자주 하고. "

"저는 지금도 최선을 다 하고 있고요, 이 이상은 못해요. 한 달에 한 번 가는 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하고요, 전화는 필요할 때 드릴게요. 주위를 다 둘러봐도 저만큼 하는 며느리 없어요, 어머니. "


"네 시누이랑 시동생도 좀 잘 챙겨주고. 그런데 너는 도통 아가씨, 도련님이라고 부르질 않더라. 호칭을 제대로 불러야지. 얘네는 너 없는 자리에서도 꼬박꼬박 존대하더라. 이런 애들 잘 없어. "

"그런 호칭들은 성차별적이라고 요즘 안 쓰는 추세예요. 제가 손윗사람이고 나이도 더 많은데 당연히 저한테 존대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그걸 제가 고마워해야 하나요? 그렇게 안 하는 사람이 예의가 없는 거죠. "



시어머니가 잔소리를 하실 때마다 곧바로 되받아쳤다. 어머니 기분은 썩 좋아 보이진 않았지만 따로 내색은 안 하셨다. 참지 않고 할 말을 하니 속은 시원했지만, 한편으로는 불안하기도 했다. 언제 터질지 모르는 시한폭탄을 껴안고 있는 기분이랄까.



아이를 낳은 뒤로 동영상을 종종 보내드렸다. '이 모습을 보면 얼마나 귀여워하실까? 기뻐하시겠지? '하는 마음으로 보내드렸지만 돌아오는 건 여전히 잔소리뿐이었다.


"애 옷은 왜 저렇게 입혔니? 추워 보인다. "

"애기들 몸에 열이 많아서 괜찮아요. 다 이렇게 입혀요. "


"이유식은 저런 걸 먹이니? 네가 신경 좀 써서 더 잘 만들어줘야지. "

"나름 열심히 만든 거예요. 요즘은 사다먹이는 집도 많대요. "


"얘는 아직 못 걷니? 다른 애는 벌써 잘 걷는다던데. "

"아이마다 다른 거죠. 그거 좀 빨리해서 뭐 하나요? "


"동영상 좀 자주 보내라. 궁금해 죽겠다. "

"최대한 많이 찍어서 보내 드리는 거예요. 저도 애 키우느라 바쁘고 정신없어요. "




처음으로 아기가 뒤집기를 성공한 날이었다. 이 위대한 발달과정을 함께 나누고 싶었던 나는 재빨리 핸드폰을 켜 영상을 찍었다. 뒤집기를 처음 하는 모든 아기들이 그렇듯이, 몇 분 동안 낑낑거리며 힘겹게 성공했다. 우리 아이가 이렇게 또 한 단계 성장했구나! 신기하고 기쁜 마음으로 부모님께 동영상을 전송했다. 나처럼 놀라워하며 좋아하시겠지? 잠시 후, 시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너 왜 그렇게 애를 힘들게 고생시키니? "

"네? 무슨 말씀이세요? "

"동영상 보니가 애가 얼마나 용을 쓰면서 힘들어하는지 안쓰러워 죽겠다. 네가 좀 도와주든지 해야지. 너 무슨 계모니? "

"네...?"

"요즘 뉴스 보니까 엄마가 아기 학대하는 것도 많이 나오던데... 너 우리 귀한 손주 괴롭히면 내가 아주 가만 안 둔다. "

"아이 발달과정에는 개입하는 거 아니에요, 어머니. 그리고 지금 저보고 계모라고, 아이를 학대한다고 하신 거예요?"

"아니, 난 애가 걱정돼서 그런 거지. "

"말씀이 지나치셨어요. 저한테 사과하세요. "

"뭐라고? 그래, 알았다. 내가 실수한 것 같구나. 미안하다. "



예상과 달리 금방 사과하셨지만 분한 마음은 쉽사리 꺼지지 않았다.

내가 학대라니...? 내가 계모라니...?

하루 종일 애만 보면서 잠도 잘 못 자고 화장실도 잘 못 가는 나한테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가 있지? 아이의 모든 의미 있는 순간을 함께 나누고 싶었는데, 이것조차 내 실수였구나. 좋은 마음으로 보내드렸더니 욕이나 먹고 이게 뭐람.



그 뒤로는 아이가 깔끔하게 잘 차려입고 웃고 있는, 별 내용 없는 영상들로만 선별해 보내드렸다. 그러다 점차 동영상 보내는 횟수를 줄였고 결국은 아예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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