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 어디니?
어린이집 하원 중에 걸려온 시어머니의 전화였다.
"아, 지금 아이 하원 중이에요. "
"지금? 애를 이렇게 늦은 시간에 데려오는 거니? "
"네. 지금이 하원 시간이라서요. "
"어머, 애를 이렇게 늦게 데려온단 말이야? 다 큰애도 아니고 어린애를 이렇게 늦은 오후까지 어린이집에 맡기니? "
"걱정 마세요. 다들 이 시간에 끝나요. "
"더 일찍 데려와야지. "
"아니에요, 괜찮아요. "
"너는 애기 어린이집 보내고 하루 종일 뭐 하는데? 혼자서 뭐 하고 놀고 있는지 내가 감시 좀 하러 가야겠다. 아무튼 끊는다. "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내가 알아서 한다고, 신경 끄시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또 한바탕 큰일이 날 것 같아서 일단은 참았다. 정해진 시간에 하원을 하는 것뿐이고, 시간을 조정할 수 있다 하더라도 그것은 주양육자인 내가 결정할 일이지 시어머니가 관여하실 일은 아니었다. 어머니한테 쏟아내지 못한 마음을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들이부었다. 그래도 여전히 분이 풀리지 않았다. 여기서 조금만 더 건드리면 또 폭발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또다시 시어머니와 난리를 치르고 싶지 않았던 나는, 당분간은 어떤 교류도 일어나지 않길 바랐다. 하지만...
다음 날 시어머니께 다시 전화가 왔다.
"오후에 반찬 좀 가져다주러 너네 집에 간다. "
"네. 알겠습니다. "
불길했다. 어머니는 정말 반찬을 가져다주러 오시는 걸까? 어제 통화로 감정이 상하셨을 게 분명한데, 반찬을 핑계로 나에게 꾸지람을 하러 오시는 건가. 또 갈등이 생기면 어떡하지? 그건 너무 피곤한데. 이번엔 그냥 대충 대답만 네네하고 넘길까? 차라리 그냥 대화를 하지 말까?
이런저런 생각에 온종일 마음이 편치 않았다. 늦은 오후 시어머니는 도착하셨고, 다행히 표정은 좋아 보이셨다. 나는 일부러 남겨두었던 집안일을 하기 시작했고, 어머니는 기분 좋게 손주를 돌봐주고 계셨다. 아, 어머니는 정말 반찬이랑 손주 때문에 오신 거였구나. 괜한 오해를 한 것 같아 죄송한 마음이 들었다. 한참 뒤, 시어머니가 거실로 나오셨다.
"어린이집에서 좀 일찍 데려와라. 너무 늦다. "
아뿔싸.
그럼 그렇지.
"아, 아니에요. 다른 애들도 다 그 시간까지 있어요. 걱정 안 하셔도 돼요. "
"그래도 어른이 말을 하면 들어. 이렇게 말하는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거야. 다 너네한테 도움 되는 얘기니까 하는 거야. "
"아, 네. 그건 알겠는데요, 이런 건 그냥 제가 알아서 할게요. "
"알아서 한다고? 네가 뭘 그렇게 알아서 잘하는데? 끝까지 내 말을 안 듣는구나. 그냥 알겠다고 하고 따르는 게 그렇게 어렵니? "
"지킬 생각이 없는데 어떻게 알겠다고 해요? 저는 거짓말하기 싫어요. "
"뭐라고? 그래, 너 잘났다. 네가 시어미를 무시하니까 지금 이러는구나. 내가 그렇게 우습니? "
"우습긴 뭐가 우스워요? 어머니야 말로 도대체 저한테 왜 이러시는 거예요? "
어머니는 급기야 자리에서 일어나 격양된 목소리로 분노를 쏟아내기 시작하셨다. 나도 어머니 말에 지지 않고 모든 말에 한마디, 한마디 대꾸했다. 그러자 시어머니는 발을 동동 구르며 고함을 지르셨다.
"너 지금 어른이 얘기하는데 어디서 싸가지 없게 말대꾸야! "
나는 아랫사람 앞에서 감정조절을 하지 못하는 어른(!)을 실망스러운 표정으로 바라보며 서있었다. 어머니는 포기하신 듯 가방을 챙겨 문을 나서려고 하셨다. 때마침 퇴근한 남편이 문을 열고 들어왔다. 남편에게도 미운 마음이 들어 일부러 있는 힘껏 노려봤다.
"남편한테 눈을 왜 그렇게 뜨니?"
"제 눈은 제가 알아서 뜰게요! "
너 정말 싸가지 없다. 아이고, 싸가지 없는 년.
내가 지금 뭘 들은 거지? 이제 욕까지 하는 거야?
남편은 눈을 질끈 감고 한숨을 푹 쉬었다.
이젠 정말 끝났구나. 결국 이렇게 될 것을 왜 몇 년 동안 참고 마음 졸이며 살았을까. 자초지종을 들은 남편은 어머니와 얘기하고 오겠다며 집을 나섰다. 몇 시간 뒤 돌아온 남편은 당분간 시댁에 방문하지 않아도 된다고 얘기했다. 시댁에 가서 남편은 내 편을 들며 어머니와 언쟁을 벌인 듯했다. 하지만 내 앞에서는 언제나 그렇듯 내 편에 서주지 않았다. 엄마가 나쁜 뜻으로 한 말도 아닌데 꼭 이렇게 일을 크게 만들었어야 했냐, 네가 아랫사람이니 조금 더 예의를 갖춰줄 수는 없었냐며 나를 타박했다.
"아랫사람 앞에서 그런 식으로 행동하는 게 어른이야? 일을 크게 만든 건 어머니지. 이번 일은 절대 그냥 못 넘어가! 이혼할 거면 이혼해.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