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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와의 거리두기

by 미나리




사건이 터지고 몇 달간, 시댁과 친정은 각자 아이만 데리고 방문했다. 결혼 초, 남편 혼자 시댁에 방문했을 때는 "결혼 한 아들이 집에 혼자 오는 것 싫다. 너도 같이 와라. "하시던 분이었는데, 이제는 포기하고 받아들이신 듯했다. 시어머니 얼굴을 볼 일도, 목소리를 들을 일도 없어지니 몸은 편했지만 한 편으로는 마음이 불편하기도 했다. 때때로 그때의 부정적인 감정이 고스란히 떠올라 고통스럽기도 했다. 남편과의 관계도 소원해졌다. 어쩌다 시댁 이야기가 나오면 그날은 무조건 전쟁이었다. 언제까지 이렇게 살 수 있을까?


그렇게 지내던 어느 날, 시어머니의 전화가 걸려왔다.



"지금 집으로 좀 와라. "

"무슨 일이신데요? "

"얘기 좀 나누게 집으로 좀 와. "

"저는 어머니랑 둘이 대화하고 싶지 않아요. 서로 감정 상한 상태에서 말해봤자 결과만 더 안 좋아질 것 같고요. "

"그래. 정 불편하면 통화로 이야기하자. "

"네, 하실 말씀 있으시면 하세요. "

"이렇게 연 끊고 지내니까 너는 편하니? 난 그저 애가 너무 늦게 오는 게 안쓰러워서 한 말이었어. 네가 오해를 해서 너무 예민하게 받아들인 것 같아. 너랑 나 때문에 온 가족이 힘들어하고 있는 거 안 보이니? "

"제가 뭘 예민하게 받아들여요? 저는 가만히 있었고요, 과민반응한 것도 어머니시죠. 저한테 소리 지르고 욕까지 하셨잖아요. 이 갈등이 지금 저 때문에 생겼다고 말하고 싶으신 거예요? 그리고 뭐가 온 가족이 힘들어요? 지금 제일 힘든 건 저예요. 이상한 말씀 하지 마시고요, 사과하러 전화하신 거면 사과를 하세요. 제 탓하지 마시고요! "

"그래, 미안하다. 욕 한 건 그냥 혼잣말이었어. 그렇게 억울하면 너도 지금 나한테 욕을 해라. "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세요! "



평소 같았으면 나보다 더 큰소리를 대응했을 분인데 꾹 참는 게 느껴졌다. 이번 대화까지 망치면 정말로 연이 끊길 거라고 생각하셨는지도 모르겠다. 이참에 지난 일들까지 사과받아야겠다 싶어서 그동안 나에게 함부로 말하고 상처 줬던 일, 친정부모님까지 들먹였던 일 등에 대해 이야기했고, 어머니는 미안하다고 하셨다.



"내가 그동안 너네한테 너무 많은 관심을 쏟아서 일이 잘못된 것 같구나. "

"네. 저도 항상 그렇게 생각했어요. 결혼 한 자식을 독립시킬 생각이 없으시고 품 안의 자식처럼 구셨어요. 며느리 입장에서는 많이 부담스러웠어요. "

"그래. 앞으로는 관심 끊으마. 대신 다른 것도 바라지 마라. "

"네. 감사합니다. 저는 정말이지 어머니한테 바라는 것 없어요. "

"그래. 부담스럽게 했다니 미안하다. "

"네. 이렇게 된 데에는 제 책임도 있겠죠. 부족한 며느리라서 어머니를 만족시켜드리지 못했던 점 죄송하게 생각합니다. "


이대로 통화가 마무리되었다면 좋았을 텐데, 어머니가 바란 결과는 이게 아니었나 보다.



"너 때문에 자식 농사 다 망쳤다. 인성이 나쁜 사람은 거둘 생각이 없다. 네 복을 네가 찬 거다. " 등등 시어머니는 다시 막말을 퍼부으셨다. 마음 같아서는 같이 퍼붓고 싶었지만, 더 이상 말다툼을 할 기운도 없었다. 어머니한테 가졌던 마지막 기대의 끈을 놓을 시간이었다. 감정을 가다듬고 그동안 속으로만 했던 생각들을 말씀드렸다.



"저랑 어머니 모두 마음과는 다르게 자꾸 서로 부딪히니 거리를 두는 것이 맞을 것 같습니다. 몇 년 동안 크고 작은 갈등이 있었지만, 서로 노력하면 극복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뒤로 저랑 어머니 모두 노력 많이 했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또다시 이런 일이 생기는 걸 보니, 어머니랑 저는 잘 지낼 수 없는 관계인 것 같아요. 지금 다시 푼다고 해도 언제 다시 갈등이 생길지 모르는 상황인데, 어머니랑 자꾸 갈등이 생기는 게 전 너무 괴롭고 힘들어요. 그래서 앞으로는 아예 갈등이 생길 기회를 차단했으면 좋겠어요. "

"그래. 그럼 너는 어떻게 했으면 좋겠니? "

"앞으로 1대 1로 연락하거나 만나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습니다. "

"뭐라고? 그래도 어떻게 고부지간에 그렇게 지내니? 그거는 좀 아니지 않니? "



어머니는 당황하신 듯했지만,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는 며느리에게 결국 승복하셨다. 갈등이 터진 뒤로, 매일 고민한 결과였다. 이혼을 해버리면 모든 게 속 시원하게 끝나겠지만, 시어머니 때문에 내 인생을, 내 가정을 망치는 것은 억울했다. 이대로 시댁과 연을 끊는 것도 마냥 마음이 편치는 않을 것 같았다. 내 가정도, 나 자신도 지킬 방법은 이것뿐이었다.

남편은 격렬하게 반대했다. 지금은 상황이 안 좋으니 잠시 안보는 것뿐이고, 감정이 사그라들면 다시 예전처럼 지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슬프게도, 언제나 나의 최종 적군은 남편이었다. 하지만 이혼을 불사하고 고집을 꺾지 않았더니 결국은 그도 마지못해 동의했다. 그러나 여전히 못마땅한 기색은 숨기지 못했다.




시어머니와의 거리두기, 잘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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