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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어머니는 왜 그러실까?

by 미나리




다음 주에 같이 쇼핑가지 않을래?



결혼한 지 얼마 안 되어 받은 시어머니의 전화였다. 며느리를 위해 이것저것 사주고 싶은데 혹여 마음에 안 들까 봐 걱정이 된다며 같이 가자는 말씀이었다. 초보 며느리에게는 감사하지만 약간은 불편한 상황이었다. 하지만 어머니의 호의를 거절할 수는 없었다. 그렇게 시어머니와의 첫 데이트가 성사되었다. 어머니는 백화점을 몇 바퀴씩 돌며 나에게 옷과 가방, 신발까지 사주셨다.



결혼 전, 시댁을 방문했을 때 시부모님은 나와 남편을 앉혀놓고 무언가 한가득 꾸러미를 들고 오셨다. 남편 명의로 된 집문서와 땅문서, 그리고 시아버지께서 평생을 일 한 직장에서 공로상으로 받은 묵직한 금덩이였다. 그동안 한 번도 아들에게 내어준 적 없는 것들이었지만, 예비 며느리와 함께 있는 자리에서 주고 싶었다고 말씀하셨다.



처음 임신 소식을 알렸을 때는 함께 눈물 흘리시며 기뻐하셨고 안전을 위해 좋은 차로 바꾸라며 목돈을 내어주시기도 했다. 출산했을 때도 병원비, 조리원비까지 모두 내주셨고, 개인 용돈과 편지까지 주셨다. 철마다 내가 좋아하는 음식들을 손수 만들어 주시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며느리가 고생할까 싶어 매년 지내던 제사도 직접 총대 메고 없애셨고, 명절 음식과 김장도 언제나 어머니 혼자 하셨다. 이 외에도 결혼 후 시어머니께 받았던 배려와 관심, 도움들은 셀 수 없이 많다.


시어머니는 왜 그러셨을까? 평소에는 잘해주시는 듯하면서도 왜 꼭 한 번씩 며느리에게 상처 주는 행동들을 하신 걸까?


시어머니에게는 두 가지 마음이 공존했던 것 같다.


첫 번째, 며느리와 진짜 가족이 되고 싶은 애정 어린 마음.

두 번째, 며느리와의 관계에서 권력을 쥐고 통제하고 싶은 마음.


시어머니와의 관계에서 겪었던 대부분의 에피소드에서 이 양가감정을 확인할 수 있다. 겉으로는 나를 위하고 나랑 가까워지고 싶어 하는 듯한, 하지만 막상 겪으면 기분은 별로인 시어머니의 행동들은 몇 년 간이나 나를 혼란스럽고 헷갈리게 만들었다.


사실, 이 두 가지 마음 모두 며느리 입장에서는 받아들이기가 쉽지 않다. 이제 막 결혼을 한 며느리가 남편의 부모를 가족이라고 생각할 확률은 0에 가깝다. 내가 사랑해서 선택한 남편도 아직 가족으로 인정할까 말까인데, 하물며 그의 부모를?

아들을 빼앗겼다는 상실감에서 나온 외로움과 조급함이 시어머니를 그렇게 행동하도록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마음의 준비가 되지 않은 며느리에게 무조건적인 애정을 강요하는 행위는 사실상 폭력에 가깝다. 그 과정에서 양쪽 모두 상처를 받는다.


심지어 아직 친밀함이 전혀 없는 상황에서 간섭과 통제까지 더해진다면? 파국으로 가는 지름길이다.

며느리의 등장으로 평생 가정의 중심으로 살았던 본인의 위치가 흔들릴 것에 대한 두려움, 한 편으로는 가족을 위한 희생을 인정받지 못했던 억울함에 대한 보상심리가 며느리에게로 향한다. 거기에 세대차이에서 나오는 가치관의 다름도 갈등에 불을 붙인다.


그렇다면 시어머니가 며느리를 어떻게 대해야 건강한 고부관계를 만들 수 있을까?



친밀감이 아닌 존중.


자기 집 친딸처럼 대하는 것이 아닌, 남의 집 귀한 딸로 존중해 주기.

친밀감은 강요로 생길 수 없으며 서로의 경계를 존중할 때 자연스럽게 생긴다.

ex) 네가 연락하고 싶을 때가 생기면 편하게 연락하렴.


강요가 아닌 제안.


도움을 주고 싶다면 제안을 한 뒤, 선택권 주기.

상대방이 원하지 않는 도움은 간섭에 불과하다.

ex) 반찬 필요하면 얘기하렴.


일방적인 가르침이 아닌 상호학습.


서로의 경험과 생각을 존중하기.

며느리에게 배울 점이 있다는 것을 인정한다.

ex) 요즘은 이렇게도 하는구나.



이제는 우리 시어머니도 위의 세 가지를 잘 지켜주고 계신다. 덕분에 요즘은 사이좋은 고부관계를 유지 중이다.


그동안 많은 상처를 준 시어머니였지만, 단순히 나쁜 사람이었기 때문이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시어머니도 시어머니가 처음이었으니까, 제대로 된 사랑을 받아본 적이 없었으니까, 그로 인해 생긴 상처와 무지에서 비롯된 행동이었을 것이다. 시어머니가 주신 수많은 에피소드, 그리고 그에 대한 의문과 혼란, 고민 덕분에 나는 한 단계 더 성장했다. 본인 말씀대로, 정말로 나를 키워주신 셈이다. 언젠가는 서로가 서로의 진짜 가족이 될 날이 올 지도 모르겠다.





우리도 진짜 가족이 될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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