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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관계가 좁아지는 나이

by 미나리


20대 때는 언제나 사람들에 둘러싸인 삶을 살았다. 핸드폰은 하루 종일 쉴 새 없이 울렸고, 하루에 서너 개의 모임에 참석하기도 했다. 다른 사람들이 나를 필요로 하고, 나랑 함께 있는 시간을 즐거워하는 것이, 나의 존재의 이유인 줄 알았다. 평일, 주말 상관없이 매일매일 수많은 사람들로 가득한 내 삶이 만족스러웠다.

우리는 주로 술을 마시거나, 알코올을 마시거나, 혹은 여행을 가서 밤새 소주와 맥주를 마시거나 했다. 그리곤 다음날이면 기억에서 사라질 아무 의미 없는 말들을 시끄럽게 쏟아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 취업을 하면서 약속은 줄어들기 시작했다. 평일 내내 직장에서 온갖 사람들로부터 시달리고 돌아와, 주말에는 다른 사람에게 쏟을 에너지가 남아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결혼을 한 뒤로는 약속이 뚝 끊겼다. 사는 곳도 모두 뿔뿔이 흩어졌다. 내 편에서 만남을 거절하거나 미루는 경우도 많았지만,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다. 모임을 가지려면 한 두 달 전에는 날짜를 잡아야 모두가 모이는 것이 가능해졌다. "주말에 만날까? 그냥 오늘 모일까? " 같은 말들은 이제는 할 수도, 들을 수도 없게 되었다. 그렇게 우리는, 인생에서 친구보다 더 중요한 것들이 많아지는 나이로 접어들었다.


주말에는 평일에 함께 하지 못한 배우자와 시간을 보내는 것이 일상이 되었다. 때마다 양가 부모님도 찾아뵈어야 했다. 그리고 대망의 출산 후, 나의 모든 날들은 아기와 함께였다. 그렇게 나의 대부분의 시간들을 가족들을 위해 할애했다.

온전히 혼자 보내는 나만의 시간도 필요해졌다. 그 어떤 인간관계보다도 나랑 잘 지내는 것이 결국은 가장 중요했다. 혼자 있으면 외로울 줄만 알았던 지난날의 걱정과는 달리, 홀로 보내는 시간은 내 적성에 딱 맞았다. 내가 먹고 싶은 것을 먹고, 보고 싶은 것을 보고, 가고 싶은 곳을 가고, 사고 싶은 것을 사고, 뭐든 내 마음대로 하면 그만이었다. 남의 눈치를 볼 필요도, 괜한 신경을 쓰며 배려할 필요도 없었다. 이렇게 좋은 것을 왜 20대 때는 몰랐을까?


그렇게 내 인생에서 가족을 제외한 인간관계는 점점 뒤로 밀려났다. 하나 둘, 사라지는 인연이 늘어났다. 나이를 먹고, 가치관과 생활패턴이 뚜렷해지면서 나랑 맞지 않는 사람들이 걸러졌다. 때로는 서서히 연락이 뜸해지면서, 때로는 날카로운 듯 갑작스레.

일 하면서 알게 된, 정말 잘 맞는다고 생각했던 동료들도, 직장을 떠나고 그 시절이 끝나면 자연스레 연락이 끊겼다. 아쉬울 것도 없었다. 더 이상 많은 인간관계가 필요한 나이는 아니니까.


이제는 정말 평생을 함께 해 온, (별 일이 없다면) 앞으로도 함께 할 사람들만 내 옆에 남았다. 물론, 다들 한창 바쁘고 정신없을 시기라 1년에 한두 번 볼까 말 까다. 수년만에 어쩌다 한 번 보는 사람들도 있다. 인연이 끊겼다고 생각했다가 톡 한 번으로 다시 가까운 사이가 되는 경우도 있다.

어느새 우리가 안 본 지 이렇게나 오래됐구나, 싶다가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락이 닿고,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함께 웃고 떠들고 장난치던 그 시절로 돌아간다. 친구들만 만나면 나도 모르게 자꾸 그때의 철없는 말투가 튀어나온다. 카페 한 구석에서 소란스럽게 웃고 떠드는 아줌마 무리를 쳐다보며 속으로 욕하던 때가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내가 그 역할을 맡고 있다. 그때의 중년 여성들도 마음만은 잠시 그 시절로 돌아간 소녀들이었겠지.


이제는 20대 때의 에너지 넘치는 삶, 30대의 우선순위를 아는 삶 모두가 소중하다는 것을 안다. '인생에는 다 때가 있다'는 말이, 나이를 먹을수록 절감된다. 가정과 일에 전념해야 하는 지금의 이 시기도 언젠가는 끝이 날 것이다. 그러면 그때는 다시 친구들끼리 여행도 가고, 늦은 저녁의 술자리를 가질 수 있을지도 모른다.

지금의 나는 혼자 있는 시간, 가족을 위한 시간, 그밖에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함께 하는 시간 속에서 균형을 잡을 줄 아는 나이가 되었다.


"야, 지금 어디야? 나올래? "

20년 지기의 갑작스러운, 이제는 황당한 말이 되어버린 연락이 다시금 반갑다. 당연하게도, 지금 당장 나갈 수는 없지만, 한 달 뒤 만남을 약속하고 캘린더에 저장한다. 오랜만에 20년을 되돌아가 그 시절의 우리들을 마주할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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