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커서 뭐가 되고 싶어? "
"나는 나쁜 사람들을 잡는 경찰이 되고 싶어! 엄마는 뭐가 되고 싶은데? "
"엄마? 엄마는..."
아이가 나의 꿈을 물었다. 그것도 과거형이 아닌 미래형으로. 가만히 생각해 본다. 나는 뭐가 되고 싶지? 어릴 때 내 꿈은 뭐였지? 기억을 더듬어 본다.
초등학교 때, 나의 장래희망은 늘 '작가'였다. 하지만 중, 고등학교에 진학하면서 내 꿈은 사라졌다. 좋은 대학교에 입학하는 것이 유일한 목표가 되었다. 그렇게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슨 일을 하고 싶은지에 관한 사치스러운 생각들은 내려놓고 공부에 몰입했다. 그리고 그렇게 시간이 지나, 꿈을 잃어버린 어른이 되었다.
대학교를 졸업하고는 남들 하는 대로 취업문에 뛰어들었고 괜찮은 직장도 얻었다. 드디어 내 손으로 돈을 버는 진짜 어른이 되었다. 이젠 행복할 일만 남았겠지?
그런데 이상했다. 몸과 마음이 점점 지쳐갔다. 월급 입금 문자가 울릴 때의 찰나의 기쁨 외에는 아무런 보람도 없었다. 주말에도 끊이지 않는 업무 연락, 내일이면 출근을 해야 한다는 압박감으로 마음 편히 쉴 수가 없었다. 내 모든 삶이 온통 회사로부터 지배당하고 있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나? 내가 이런 삶을 살기 위해 학창 시절 그토록 열심히 공부했던가? 내가 꿈꿔왔던 어른의 삶은 이런 것이 아니었는데...
채 3년을 넘기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뒀다.
다시 진로고민을 시작했다. 나는 뭘 좋아하지? 뭘 잘하지? 아무리 생각해도 잘 모르겠다. 너무 오랜 시간 동안 아무런 생각 없이 맹목적으로 살아왔다. 딱히 뭔가를 경험해 본 적도 별로 없다. 그러니 모르는 것도 당연하다. 뭘 해봐야, 잘하는지, 못하는지, 좋아하는지, 싫어하는지를 알 것 아닌가. 난 대체 그동안 뭘 하고 산 걸까. 지난날들이 후회스러웠다. 나름 열심히, 성실히 살아왔다고 자부했는데. 그렇게 방황하던 중,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으면서 집에서 살림과 육아를 하는 전업주부가 되었다.
아이가 커가면서 내 손길이 필요한 시간이 줄었다. 집에서 무용하게 보내는 시간들이 늘어났다. 취미생활도 시작했고, 생각할 시간도 많아졌다. 나라는 사람에 대해 더 잘 알게 되었다. 다시 일을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내가 좋아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일을 하고 싶었다. 종이 위에 무작정 좋아하는 것들을 적어본다. 독서, 여행, 글쓰기, 예쁜 옷, 예쁜 공간, 잔잔한 음악, 바다, 커피... 공통분모를 추리다 보니 카페사장이 나온다. 여자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꿈꾼다는 카페 차리기. 하지만 자본금도 많이 들뿐더러, 환상과는 달리 '예쁜 감옥'으로 유명하다. 일단은 내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힘들기 때문에 포기한다. 그렇다면... 멋진 휴양지의 예쁜 카페에서 작업하는 '작가'가 된다면 내가 좋아하는 모든 것을 누릴 수 있다. 역시... 내 꿈은 작가였구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한다.
이제는 사람들을 만나면 내 꿈에 대해 이야기한다.
"제 장래희망은 예술가입니다. 작가가 되고 싶어요. "
대부분은 웃는다. 마흔을 바라보는 나이에 장래희망을 말하는 것도, 예술과는 전혀 상관없는 삶을 살아온 내가 갑자기 예술가가 되고 싶다고 하는 것도 웃기긴 하다. 사실, 말을 하는 나부터도 이미 웃고 있다. 아직까지 브런치에 글을 쓰는 것은 비밀이다. 그러니 상대방 입장에서는 완벽히 터무니없는 소리로 들릴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브런치에서 이미 작가로 활동 중이고, 여기서는 모두가 나를 작가님이라고 부른다. 이미 절반의 꿈은 이룬 셈이다. 작가의 서랍 속에 앞으로 쓰고 싶은 작품 제목들이 수북이 쌓여있다. 지금의 내 글들이, 내 노력들이 나를 어디로 이끌어 줄지는 모르겠지만, 앞으로도 매일 꾸준히 글을 써볼 생각이다. 언젠가는 비웃음을 사지 않고, 당당하게 "미나리 작가입니다. "하고 밝힐 그날을 위해.
"엄마는 꿈이 뭐야? "
"엄마 꿈은 작가야. 사람들에게 용기와 웃음을 주는 글을 쓰고 싶어. "
"우와, 엄마. 진짜 멋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