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제나 내성적인 내향인이었다. 학창 시절, 자리에서 일어나 책을 읽는 별것 아닌 일도 나에겐 엄청난 긴장의 시간이었다. 내 차례가 다가올수록 심장이 쿵쾅거렸고, 발표가 끝난 뒤에도 심장은 한참 동안 더 쿵쾅거리곤 했다. 옆에 앉은 짝꿍에게 내 심장소리가 들리는 것은 아닐지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실기시험은 언제나 절망스러웠다. 특히 음악 시간에 리코더 시험을 볼 때에는 손가락이 덜덜 떨려 시험을 제대로 치러본 적이 없다.
목소리가 작아서 상대방이 "뭐라고? " 하며, 되묻는 경우도 많았다. 식당에서 "사장님, 여기요! " 같은 호출은 늘 동행인에게 넘긴다. 요즘은 기술이 발달해 패드로 호출도, 주문도 할 수 있으니 참 좋다. 아이를 키우면서 다행스럽게도(?) 목소리가 좀 커지긴 했지만, 여전히 밖에서 큰소리를 내는 것은 어쩐지 좀 부끄럽다.
행동도 말도 살짝 느린 나는 빠릿빠릿하지 않다고 꾸지람을 들은 적도 많았다. 음식을 먹을 때도 천천히 오래 먹는다. 신호등이 깜빡거릴 때에도 뛰어가지 않고, 다음 신호에 건너기 위해 오히려 더 천천히 걷는다. 고쳐보려고 노력해 보기도 했지만, 일부러 서둘러 행동이나 말을 하다 보면, 오히려 실수를 하거나 말이 꼬여버려서 시간이 더 오래 걸리곤 했다.
낯도 많이 가린다. 미용실에서의 대화가 힘들어서 의자에 앉자마자 재빨리 눈을 감고 자는 척을 한다. 스몰토크가 두려워 네일숍에는 가본 적도 없다. 아이를 낳고 나니 고난은 더 늘어났다. 길을 가는데 갑자기 모르는 사람들이 나와 아이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놀랍게도 이런 상황은 매우 빈번히 일어나곤 했다. 아이가 커가면서는 아이 친구 엄마들과도 친분을 유지해야 했다. 적당히 데면데면한 관계가 나에게는 너무 어려웠다. 얼굴을 가리고 눈 맞춤을 피하기 위해 일부러 모자를 쓰고 다니기도 한다. 물론 앞에서는 최대한 괜찮은 척, 자연스러운 척 연기하지만, 속으로는 이 자리가 어색해 몸 둘 바를 모르겠고, 얼른 집에 가고 싶은 마음뿐이다.
감정표현에도 늘 서툴다. 화를 내는 것도, 기뻐하는 것도, 뭔가 어색하다. 친구들에게 화를 내기 전에는, '지금 화를 내도 괜찮을까? 괜히 친구들과의 관계만 망치는 게 아닐까? 분위기가 어색해지면 어쩌지? ' 하고, 한참을 머릿속으로 생각한 뒤 화를 내곤 했는데, 그 모습은 마치 로봇 같았다. 다른 사람 앞에서 기쁨을 표현하는 것도 어쩐지 쑥스럽다. 모두와 헤어지고 혼자 집으로 돌아와 아무도 몰래 방방 뛰거나 소리를 치거나 춤을 추곤 한다.
단점들로 가득한 나의 성격은 평생의 콤플렉스였다. 자신감 있고, 활발하고, 목소리도 크고, 감정표현도 자연스럽고, 말과 행동도 빠르고, 어떤 사람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리는 외향적인 사람들을 보며,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지금도 나에게 여유로운 표정으로 먼저 말을 걸어오는 사람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든다. 하지만 어쩌겠어. 이렇게 태어난 것을. 받아들이는 수밖에.
긴장을 많이 하는 성격에는 그만큼의 꼼꼼하고 섬세한 준비성이 따른다. 느린 행동과 말투, 작은 목소리에서는 여성스러움과 여유, 차분함과 우아함이 느껴진다. 감정표현에 서툴다는 것은 감정기복이 별로 없다는 뜻이고, 이는 곧 내 기분을 스스로 컨트롤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낯을 가리는 성격 또한 신중하고 신비로워 보인다. 하루 종일 집에 혼자 있어도 외롭지가 않아서 주변 사람들에게 놀아달라고 조를 필요도 없고, 다른 사람에게 의지하지 않고 자주적으로 내 삶을 꾸려나갈 수 있다. 빠르고 시끄럽게 흘러가는 세상 속에 휩쓸리지 않고, 나만의 페이스를 유지하는 것에도 능하다. 호들갑을 떨며 상대방을 띄워주거나 기분 좋은 말을 건네주진 못 하지만, 진중하게 진심을 전달하는 것에는 누구보다 자신 있다.
평생을 단점이라고 여겨왔던 것들에서 장점들을 찾아낸다. 어쩌면 내가 그토록 싫어하고 고치고 싶어 했던 부분들이 나라는 사람을 더욱 매력적으로 만들었을지도 모른다. 생각해 보면 나의 모든 단점이었던 장점들이 지금 나이와는 꽤 잘 어우러진다.
이제는 이런 내 성격이 마음에 쏙 든다. 내성적인 내 성격이, 내향적인 내 성향이 만족스럽다. 애초에 타고난 성격이 단점이 된다는 것이 말이 안 된다. 한국인들은 어릴 때부터 가스라이팅을 너무 많이 당했다.
솔직하게 고백하자면, 나는 외향인들보다는 내향인들을 좋아한다. 넘치는 에너지에 휩쓸려 끌려다닐 필요가 없어, 오랜 시간을 함께해도 기 빨릴 염려가 없다. 담백하고 편안하다. 비밀얘기를 털어놓거나 고민상담을 하기에도 믿음직스럽고 안심이 된다. 친해진 뒤 반전 매력을 찾는 재미도 쏠쏠하다.
나는 나를, 지금도 어디선가 조용하지만 강한 힘으로 세상을 빛내고 있을 내향인들을 응원한다. 전국의 내향인들이여, 기죽지 맙시다. 오늘도 파이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