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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면

by 미나리


한동안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누군가에게 상처를 받았던 때가 있었다. 저 사람이 나에게 상처를 주는 이유는 내가 부족해서일 거야. 내가 더 노력하면 저 사람의 마음을 돌릴 수 있겠지? 계속해서 상처를 받으면서도 그 사람의 마음을 얻기 위한 노력을 멈추지 않았다.

사실은 그 사람이 나를 좋아해 주기를 바랐던 것 같다. 그렇게 나는 을이 되었다. 그 사람의 무심한 한마디, 차가운 표정, 싸늘한 지적과 비난 속에서 꽤 오랜 기간 허우적거렸다. 내 몸과 마음이 병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애초에 그 사람의 마음을 얻을 필요가 없었다는 것을. 인정받고 싶고, 사랑받고 싶은 마음조차 나의 욕심이었다는 것을.


이제는 이 종속적인 관계에서 벗어나야 할 때였다.

아직은 내공이 덜 쌓였으니 수동적인 방어부터 시작하자. 상처가 되는 말을 듣더라도 개의치 않기로 했다. 예전에는 상대방의 기분이 상한 원인을 찾아내 어떻게든 풀어주려 노력했다. 하지만 이런 행동이 반복될수록, 상대방이 나에게 별것 아닌 일들로 기분이 상하는 빈도가 점점 더 잦아졌다. 더 이상 나에게 상처 주는 사람에게 나의 소중한 에너지를 소모하지 않기로 다짐했다. 연락과 만남 횟수도 줄였다.


내공이 좀 쌓였다면 다음 스텝으로 넘어간다. 상대방에게 상처를 받은 것을 표현한다. 즉시 표현하는 것이 베스트이지만, 용기가 나지 않는다면 추후에 자연스럽게 얘기해도 괜찮다. 말할 때는 최대한 부정적인 감정은 섞지 않고 담담하게 이야기할 수 있도록 한다. 감정을 절제하지 못하고 흥분하며 말하다가는 갈등이 더 커질 가능성이 높다. (저도 알고 싶지 않았습니다만, )


대망의 마지막 스텝이다. 싫은 건 싫다고, 아닌 건 아니라고 즉시 얘기한다. 예전에는 받아들이기 어려운 말이나 요구도, 나이가 많거나 권력이 높은 사람의 것이라면 마지못해 수긍하곤 했었다. 하지만 그로 인해 내가 지속적으로 상처받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더 이상 참고만 있지 말고 나의 의견을 피력해 보자. 그랬다간 큰 일 나는 거 아닐까? 싶지만, 막상 그렇게 해도 아무 일도 안 일어난다. 물론, 감정을 절제하고, 차분한 말투로 이야기한다면 말이다.


이 모든 게 불가능하다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면, 티 안 나게 복수하자... 나 밖에 모르지만 속이 다 시원하고 통쾌해서 가만히 있어도 웃음이 실실 새어 나온다.

복수도 어렵다면 저주의식을 시행한다.

감히, 나를 건드리고 무사할 줄 알았어?


그동안 수많은 상처를 받고, 극복하며 느낀 것이 있다. 상처를 주는 대로 다 받지 않으려면, 일단은 나 자신이 강해져야 한다는 것이다. 전장에 맨몸으로 나가는 사람과 갑옷으로 무장하고 나가는 사람 중, 누구 몸에 화살이 더 많이 박힐까?


가장 중요한 것은, 나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다. (소크라테스, 당신은 도대체! ) 나의 강점이 무엇이고, 약점이 무엇인지 파악한다. 자기 계발을 통해 부족한 점을 보완한다. 자신에 대해 정확히 알고 있는 사람은 다른 사람에게 잘 휘둘리지 않는다. 가스라이팅에도 문제 없다.

독립심을 키우는 것도 필요하다.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순간, 상대방이 갑, 내가 을이 되는 관계로 전락한다. 경제적, 정서적으로 독립하자.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계획이라도 세워두자. 상대방이 떠나더라도 아쉬워하지 않고, 언제든 홀로 설 수 있는 자신감을 갖추는 것이 중요하다.

마지막으로, 나 자신이 1순위라는 것을 잊지 않는다. 나를 낳아준 부모님이든 내 목숨을 바쳐도 아깝지 않은 자식이든, 나보다 우선이 되어서는 안 된다. 내 인생에서 영원한 1순위는 나 자신이다. 명심하자.


요즘은 나에게 중요하지 않은 누군가로부터 상처를 받게 될 때 이렇게 생각한다.

'흥! 네 까짓게 뭘 안다고. '

'지금 나 질투하니? '

'그래. 넌 평생 그렇게 살아라. '

'난 고귀한 몸이라 바보랑은 논쟁하지 않아. '

'네가 쌓은 업보, 반드시 두 배로 돌려받을 거야. '

나에게 상처를 줬던 몇몇 사람들이 얼마 안 가 실제로 업보빔을 맞은 것을 알게 되었다. 나의 저주가 통한 건가? 역시, 사람은 착하게 살아야 한다.


중요한 관계에 있는 사람에게 받는 상처로 인해 너무 힘이 때는 100년 뒤를 생각한다.

왜냐고?

100년 뒤엔 나도, 나를 힘들게 하는 저 사람도, 내가 아는 모든 사람이 이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100년도 채 남지 않았다.

그럼 이런 생각에까지 미친다.

우리는 정말 찰나의 순간을 머물다 가는 존재들이구나. 나를 미워하는 사람에게, 내가 싫어하는 사람에게 내 아까운 시간을 낭비하지 말자. 내 삶을 증오보단 사랑으로 채우자. 꼴 보기 싫은 저 사람도 사랑하려고 노력해 보자. 누가 알겠어? 그러다보면 또 사이가 좋아질지.


나를 괴롭히는 직장 상사에게 좋아하는 척 잘해주었더니, 직장 상사가 본인을 향해 진짜로 사랑에 빠졌다는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인간관계란 참 알 수 없다. 어제의 적이, 오늘의 짝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너무 미워하지 말자. 마음에 담아두지도 말자. 용서할 수 있다면 용서하자. 그래야 내 마음이 편하다. 내 마음이 편해야 세상이 아름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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