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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원기 Feb 02. 2022

내가 지켜줄게 6

재개발 지역 고양이들과 그들을 사랑한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

- 여섯 번째 이야기 : 찡찡이와 노랑이 -


단이가 포획틀에 들어간 이후 그날 밤 몇 아이들이 더 잡혔다. 자원봉사 하는 사람들은 그들을 구조했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고양이들은 다른 입장일 것이다. 배가 고파서, 먹을 것이 보여서 들어갔는데 사람 손에 잡히고 만 것이다.


포획틀 문이 철커덕 닫히게 되면 고양이들은 놀라 먹이 대신 배 한 가득 두려움을 집어 넣게 된다. 물론 검진에 치료도 받고 보살핌을 받다 보면 생각을 바꾸는 아이들도 많아진다. 열의 다섯 정도는 사람들과 무리 없이 가까워지고 나머지 넷도 결국 시간이 지나가면서 점차 인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을 지우게 된다. 한 마리 정도는 끝까지 지조를 지키려고 하지만 사실 속마음은 그렇지 않다. 누그러진 눈빛을 보면 알 수 있다.


첫 아이와의 만남 이후 이틀이 흘렀고 사람들의 머릿 속에서는 호통치며 포획틀을 버리겠다고 장담한 할머니에 대한 기억이 잠시 지워져 있었다.


에스펜과 모모가 학생들과 함께 포획틀을 설치하고 난 뒤 1시간 정도 지나갈 무렵 두 명의 학생이 상황을 살피기 위해 둘러보러 나갔다. 10여 분 쯤 지났을 때 한 학생이 다급한 목소리로 전화를 걸어온다.


(학생)'에스펜 선생님, 제가 혹시나 해서 전화드렸는데요, 저희가 아까 첫 번째는 감나무 집에 설치했고 두 번째를 막다른 골목 끝집에 설치했었는데, 맞죠?


(에스펜)'그렇지.. 그러니까, 두 번째가.. 맞아 골목이 막혀 있는 마지막집 마당이었는데... 그런데 왜?'


(학생)'제가 아무리 살펴봐도 포획틀이 없어서요. 안보여요. 집을 잘못 알았나 해서 다시 돌아가 보고 해도 여기가 맞는데... 틀이 없어요'


틀이 없다니 말이 안되는 소리 아닌가? 고양이들이 틀을 끌고 갈 리도 없고, 간혹 고물상 하는 사람들이 재개발 지역에 들어가 돈 되는 것들을 가져간다고는 하는데, 사람 출입이 막혀 있는 터라 그럴 리도 없었다.


그렇다면... 순간 이들의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 사람이 있었다. 바로 그 할머니다.


분명 그 할머니가 가져갔거나 어딘가에 버렸을 거라는 확신이 들었다. 그 집은 할머니가 밥을 주던 곳과도 가까웠다. 에스펜은 학생에게 그 주변을 잘 살펴보라고 한 후 모모와 함께 미장원을 나섰다. 할머니를 찾기 위해서다.


지금 이 시간이라면 밥을 준 후 집으로 돌아가고 있을 것 같았고, 빠른 걸음으로 가면 만날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에스펜은 몇 달 전 다리 수술을 한 후 이렇게 빨리 뛰다시피 걸어보기는 처음이었다. 숨이 차오르고 미장원에서의 한기는 온데간데 없어졌다.


미장원에서 꽤 멀리 떨어져 있는 모짜르트 피아노 학원을 지나고 있다. 예상이 맞다면 할머니는 바로 저 왼쪽 골목 어딘가에 있을 것 같았다. 그 사이 전화했던 학생들도 합류했다.


골목으로 돌아서는 순간 대문에 들어서시던 할머니가 보인다. 두 세 발 앞서 걷던 모모가 헐떡거리는 숨을 내쉬며 할머니를 붙잡고 잠깐 이야기를 나누자고 말한다. 하지만 이들을 본 할머니는 아이들이나 잡아가지 말라고 큰 소리를 친 뒤 다급히 집으로 들어가신다.


'할머니.. 저희가 고양이 잡아다가 뭐하겠어요? 구조하려고 하는 거예요. 곧 철거 들어가면 애들 다 죽어요. 할머니, 혹시 저희 포획틀 보셨어요? 그거 돈도 돈이지만 고양이들을 살릴 수 있는 중요한 물건이예요. 만약, 죄송하지만.. 가져가셨다면 돌려주세요. 제발요.. 찾지 못하면 경찰에 신고하려고 하거든요, 할머니...'


집 안에서는 기척이 없다. 한 참을 기다리다 어쩔 수 없이 돌아섰다. 할머니가 이런 식으로 계속 틀을 치우고 방해를 하면 구조활동이 힘들어질 것이 뻔하기 때문에 돌아 오는 내내 다들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미장원에 다다를 무렵 한 학생이 마중 나오며 상기된 목소리로 다급하게 말한다.


'선생님, 고양이가 잡혔어요.'


사람들이 할머니를 만나러 갔을 때 이 학생이 틀을 둘러보다 발견했다고 한다. 틀에 덮힌 천을 들추자 얼룩 젖소 고양이가 보였다. 찡찡이였다.


찡찡이는 에스펜이 밥을 챙겨주던 아이인데, 재개발 마을 입구 큰 집에서 살았다. 찡찡이는 스토리가 많다. 어릴 적 엄마와 형제들과 함께 살고 있다가 독립을 하게 되면서 이 집으로 오게 되었고 이후 자신보다 덩치가 더 큰 노랑이하고 늘 같이 다니고 있다.


에스펜의 회상을 들어본다.


'그 아이를 처음 만난 어느 날, 찡찡이는 놀란 듯한  동그란 눈으로 멀리서 저를 바라만 보고 있었어요. 안쪽 마을에서 지내던 아이였는데, 엄마가 독립시키자 여기까지 오게된거죠. 다른 캣맘이 찡찡이 어릴 적에 밥을 주었는데 그 때 찍은 사진을 보여주며 확인해 주더군요.'


찡찡이(오른쪽)의 어린시절


찡찡이(가운데)와 형제들


찡찡이와 엄마


'찡찡이는 매일 새벽과 저녁에 나타났어요. 큰 집에는 항상 밥과 물이 있었지만 그 아이는 제가 사는 아파트 앞 작은 화단으로 와서 저를 기다리곤 했지요.'


찡찡이


'마당쇠와 가필드가 기다리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 와서 함께 기다렸어요. 마당쇠 옆에 가필드가 있고, 조금 뒤 옆에 찡찡이, 그리고 그 뒤로 좀 떨어져서 노랑이, 이렇게 주로 있었어요.'


아파트 화단에서 기다리고 있는 마당쇠


'노랑이는 찡찡이보다 덩치는 더 컸는데 겁은 더 많았던 것 같아요. 늘 저 멀리 뒤에서 기다리다가 제가 밥을 주고 가면 그제서야 와서 먹었죠.'


단짝 찡찡이와 노랑이


'찡찡이라는 이름은 이 아이가 캔을 요구할 때 정말 많이 찡찡 댔는데, 그래서 붙여준 이름이예요. 노랑이는 치즈이기 때문에 그냥 노랑이로 붙인 거고...'


이처럼 캣맘들이 길냥이들 이름을 지어주는 것을 보면 즉흥성에 덧붙여져 고양이에 대한 순간적인 영감이 작동하는 것 같다. 찡찡댄다고 찡찡이, 노랗다고 노랑이, 가필드처럼 생겼다고 해서 가필드, 마당쇠 같다고 해서 마당쇠...


'노랑이와 찡찡이는 정말 단짝이었어요. 항상 둘이 붙어 있거나 찡찡이가 나타나면 조금있다 노랑이도 꼭 어디선가 나타났지요. 노랑이가 찡찡이의 엄마처럼 캔 접시도 항상 양보하고 찡찡이 옆에서 찡찡이가 다 먹을 때까지 기다리곤 했어요.'


선 찡찡이, 후 노랑이


'그래서 저는 이런 모습을 보고 노랑이가 찡찡이를 보호하고 있는 줄 알았어요. 그런데 나중에 알게 되었는데 둘 다 남자 이이고 사실은 노랑이가 찡찡이의 보호를 받고 있는 사이였던 거죠. 찡찡이가 노랑이 보다 나이도 많았고 아마 힘도 더 셌던 것 같아요. 그래서 밥을 먹을 때 찡찡이가 먼저 먹었던 거죠.'


그렇다. 이런 것이 길고양이들의 인생이다.


어린 시절 어미 고양이로부터 보호를 받고 형제들과 함께 자라다가 어느 날 반강제적 독립을 하게 되고 난 다음에는 자기의 삶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게 되는데, 이 때부터 인생은 스스로 헤쳐가야 할 위험과의 공존이다.


세상을 보는 눈과 경험이 적은 고양이들이 위험 투성이인 노지에 나와 배불리 먹을 밥도, 편하게 쉴 집도, 보호를 받을 어른 고양이도 없이 온전히 혼자만의 힘으로 살아가야 하는 것이다.


영역 동물인 고양이들이기에 다른 고양이가 자신의 영역에 들어오면 공격을 하게 되는데 그래서 어린 고양이가 멋모르고 영역을 침범하게 되면 물리는 등 위험에 처하게 되기도 한다.


물론 마음이 맞는 고양이를 만나게 되면 서로 의지하며 살아가기도 한다. 마당쇠와 가필드, 찡찡이와 노랑이가 그런 케이스에 속한다. 마당쇠는 가필드를, 찡찡이는 노랑이를 받아준 것이고, 마당쇠와 찡찡이는 서로 좋은 이웃이 된 사례다.


아파트 화단에 앉아 있는 가필드


가족으로 태어나고서도 남보다 못한 악연이 되는 경우가 비일비재한 인간사회,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사기와 폭력으로 타인의 것을 빼앗고자 혈안이 되어 있는 인간사회, 삭막한 밤의 사막보다 더 차가운 냉기를 내뿜고 있는 인간사회의 일그러진 모습들을 보면, 비록 아무 것도 가진 것 없지만 가필드와 노랑이를 보살펴 주고 있는 마당쇠와 찡찡이의 따뜻한 의리가 더 깊고 넓어 보이기도 한다.


이제 찡찡이는 사람들의 보호를 받게 되었고, 찡찡이의 보호를 받던 노랑이는 다시 혼자가 되었다. 찡찡이는 병원 검진을 거쳐 도서관으로 옮겨졌고, 이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노랑이와 마당쇠, 가필드도 하루 빨리 들어오길 바라는 염원을 담아 포획틀을 다시 놓아 두었다.


하지만, 이들의 희망과 달리 찡찡이가 잡힌 이후 마당쇠와 가필드는 종적을 감췄고, 노랑이는 감나무 건너편 집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포획틀 근처에는 가지도 않고 있다. 사람들을 피하지도 않는다. 그저 적당한 거리를 두고 마당에 나와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다. 마치 찡찡이를 기다리는 듯, 마치 너희들이 찡찡이를 잡아간 사람들이라고 원망하고 있는 듯, 그렇게 날들을 보내고 있다.


 - (예고)일곱 번째 이야기 : 러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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