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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의 가장 큰 적은 인류다

타노스는 왜 그렇게 지적인 생명체를 미워했을까?

by Acquaintanc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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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 소식들로 뒤덮인 나라에 불만과 슬픔과 분노와 아픔이 들끓는다.

소중한 사람들이 아주 사소한 불찰에, 너무나도 당연한 상식이 지켜지지 않은 기준에, 몰상식한 어떤 환경을 만들어낸 누군가로 인해 끝까지 내몰려 끝끝내 명을 달리 했다는 소식이 이어지던 나날이었다.


평소처럼 아무렇지 않게 넘길 수 있는 이야기들이면 좋으련만,

내가 아직도 살아온 날의 배만큼 살아갈 나의 소중한 조국은 매일 아침마다 시끄럽게 울린다. 사람들은 언제나 분노를 쏟고, 불만을 내뱉고, 상처를 주고받으며 살아갔다. 사실 일상 속에서의 아주 작은 행복 하나만으로도 살아감에 감사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어쩌다가 이렇게 차갑게 돌아섰을까.


누구나 그렇게 살지 않겠는가. 이 세상 어느 나라를 가도 분란과 혼란이 끊이지 않을 텐데, 고작 이 정도로 슬퍼하며 속상해야 하는가. 그래도, 그럼에도 누군가는 슬퍼해줘야 하지 않을까 싶어 혼자 슬퍼했다.



요즘의 한국에는 '정'이라는 것이 사라졌다.

이왕 이기적일 거면 집단적으로 이기적인 것이 차라리 차악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말이다. 개인 이기주의가 팽배하는 현시점의 한국은 과거의 한국과는 사뭇 양상이 달랐다. 배낭 하나만 덜렁 들고 무턱대고 떠나 낯선 시골의 풍경을 느끼다가 배가 고프면 물 한 잔을 달라던 사람들은 사라졌다. 그들은 기성세대보다 더 나이가 들어 이제는 추억에만 남아있는 이웃의 정을, 가족의 정을 그리워할 뿐이다.


앞 집에, 옆 집에, 윗 집에 누가 사는지 그 집 식구들은 몇인지, 누가 나랑 동갑인지 모르고 살아간다. 꼭꼭 빗장을 내건 만큼 나의 울타리 범위도 점점 협소해진다. 울타리 안에서의 나는 가장 사랑받고 가장 존중받아야 할 존재. 세상에 수많은 울타리가 있다는 것을 점차 잊고 살아간다.


내가 타인의 울타리를 무단으로 침범했음에도 나는 그로 인해 부러져버린 내 울타리에 슬퍼하고 있다. 한국만 보아도 그런데, 앞으로 우리 다음 세대가 살아갈 지구는 어떤 모습일까. 닭장 같은 사각 테두리 안에 오롯이 자신만의 공간을 그려놓고서는 아무도 들이지 않겠다며 소리치지 않겠나.


어린 왕자는 아주 작은 소행성에서 살아갔다.

자기밖에 모르던 이기적인 장미와 함께. 어른이 되고 싶어 떠난 이곳저곳에서는 오롯이 자신만 알던 이들뿐이었다. 그러다가 마침내 당도한 이 별, 지구에서 타인을 이해하고 헤아리는 방법을 배웠다. 어린 왕자는 다시 돌아가더라도 아주 작은 소행성의 주민일 뿐이다. 그럼에도 그는 지구보다 더 큰 별만큼의 마음을 가지고 돌아갔을 테지. 이기적인 장미에게도 기꺼이 한편을 내어주고, 다른 씨앗이 바람에 불어오면 기꺼이 자신의 별 한편을 내주겠지.


지금의 지구는 온통 어린 왕자뿐이다.

술을 마신다는 사실이 부끄러워, 이를 잊고 싶어 술을 마시는 사람. 아무도 없는 별에서 권력에 취해 왕관에 짓눌리는 누군가. 기계처럼 자신에게 하달된 일만 반복할 수밖에 없던 이. 다른 별로 떠나볼 생각은 하지 않은 채, 자신의 별에 찾아오는 누군가를 자신의 입맛대로 바꾸려 하겠지. 누군가 또한 다른 별의 주인이었다는 것을 영영 모른 채로 살아가면서.


타노스는 왜 지성을 가진 생명체를 미워했을까.

왜 극단적인 방법으로 테라포밍을 시도했을까. 시간을 되돌리고, 행성과 행성을 넘나들며 때로는 무력으로, 때로는 가장 소중한 것을 포기하면서까지. 그래놓고 선택한 결과물이 고작 소박한 소작농이었다. 그를 뒤따르는 무리는 타노스의 계획을 알면서도 지지했다. 그 절반에 자신들이 포함될지도 모르는 일이었는데도. 적어도 타노스는 굉장히 강하고, 똑똑하고, 리더십이 충만한 존재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 그가 아무리 고민하고 아무리 생각해도, 결국에는 이 방법밖에 없었던 것이다.

지성체는 발전의 발전을 거듭하며 끝내 자신들에게 주어진 '삶의 터전'을 파괴할 것이다. 발전의 종착지가 파괴라는 것은 가슴이 아플 일이 아닌가.


과거의 지성을 가진 이들은 지성이 없는 자를 무시하고 발아래 두었다. 그럼에도 그들은 서로 지성을 교류하며 더 앞선 기술력을 뽐내기 위해 앞다투었다. 지금의 찬란한 문명은 그 순간들 위로 쌓아 올린 것뿐이다. 우리가 이룩한 세상이 말이다. 우리는 아직도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와, 어떻게 가능했는지 알 수 없는 과거의 잔재들 앞에서 '더 나은 것'을 보이는 것을 포기했을지도 모른다.


과거의 지성은 인류의 진보를 한 단계 끌어올려 줄 이룩의 순간이었을지 모른다. 지금의 지성은 남보다 더 빨리, 더 앞서, 내가 얼마나 잘난 존재인가를 입증하는데 가장 큰 수단이 되었다. 아직 몇몇의 양심은 그들의 지성이 교류할 수 있기를 바라지만, 너무 많은 지식이 혼재하는 세상에서는 누구나 그럴싸한 말 몇 마디면 지식인이 될 수 있다. 얼굴도 모르고 상대방의 이름도 알 수 없지만 사람들은 오늘도 너무나 빠르게 연결되어 버린 지구 안에서 자신의 잘남을 뽐내고 있다.


지식인들은 모두 어떻게 되었나. 자신의 잘남을 뽐내고 내세우느라 시들어가는 환경을, 지구가 선사한 축복을,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방관하고 있다. 그리고 마침내 지식인들은 서로를 향해 손가락을 치켜들었다.


'내가 제일 똑똑하고, 내가 제일 잘나', '그러니 당신은 나를 존중해야 해. 나를 대우해야 해.'


내가 제일 잘나서, 내가 제일 똑똑해서.

더 발전할 수 없는 이 세상에서 사람들을 게으르게 만드는 것만이 진보라고 외쳐대는 세상 속에서. 개개인의 소행성을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린 왕자만 가득한 세상 속에서. 타인의 귀함과 소중함을 잃어버린 모든 나라가. 이미 분단의 아픔을 겪었음에도 성별로, 나이로, 직업으로, 돈으로 또 그 무리를 분단해 버리는 이 나라가.


그래서 마침내 도태된 우리의 선택은 자멸이었다.

추후에는 조선족을 명예 한국인으로 부를지 누가 아는 일인가. 한국인이 없어져가는 세상에. 그럼에도 나의 아이는, 나는, 또 다른 한 명의 지식인으로 가기 위해서 타인의 행성을 짓밟는 이곳에. 사랑과 정은 과거의 잔재로 남겨둔 우리가.


서로의 가장 큰 적이 되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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