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이 열어준 마음의 레드카펫(3) - 나는 재미있게, 남은 행복하게
어떤 드라마에서 이런 대사가 있었다.
“나는 재미있고, 남은 행복하게 살고 싶어요.”
이 한마디가 오래 남았다.
상담의 마지막 날, 선생님도 비슷한 말을 했다.
“지금 가장 재미있는 일을 해보세요.
아직 모르겠다면, 그걸 찾아나가는 게 앞으로의 과제입니다.”
그 말이 마음에 오래 맴돌았다. 늘 진지하고, 성실하고, 책임감으로만 굴러가던 내 인생 속에서
처음으로 ‘재미있게 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하지만 정작 나는 ‘재미있는 일’이 무엇인지 몰랐다. 도전보다는 안정을, 꿈보다는 현실을 택했던 사람. 늘 넓고 안전한 길만 골라온 나는,
심장이 뛸 일이 없는 평탄한 사람에 불과했다.
그래서 처음으로 진지하게 ‘재미’를 찾아보기로 했다. 요가도, 필라테스도 해봤지만 몸은 풀려도 마음은 여전히 굳어 있었다. 그러다 우연히 문화센터에서 ‘라틴댄스’ 강좌를 봤다.
‘살도 뺄 겸, 도전해볼까?’
결과는 참담했다.
발은 엇박자, 팔은 허공을 휘젓고, 거울 속 표정은 “도망가고 싶다”였다. 며칠 만에 포기했다.
그런데 이상하게 그 실패가 나를 자극했다.
“그래, 이번엔 좀 더 유쾌하게 망해보자.”
그렇게 등록한 파워댄스 첫날, 뜻밖의 기쁨이 찾아왔다. 박자에 맞춰 몸을 흔들며 엉망진창으로 춤을 추는데, 누가 나를 평가하지도, 웃지도 않았다. 그 자유가 낯설 만큼 시원했다. 내 안의 어둡고 눌린 것들이 하나둘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사실 내게 춤은 죽어도 하기 싫은 일이었다. 시끄러운 음악도, 어색한 몸짓도 나와는 거리가 멀었다. 몸치에, 운동도 질색이던 사람...
내 춤의 역사는 대학교 MT 시절 ‘원더걸스의 텔미’에서 멈춰 있었다.
그런 내가 K-POP을 추다니 —
이건 거의 천지개벽 수준의 사건이었다.
눈을 떠보니 ‘헌트릭스 - Golden’을 추고 있었다.
빌보드 1위의 위엄보다, 그 음악 속 살아 있는 리듬이 내 심장을 흔들었다. 도파민이 터졌다.
이어 블랙핑크의 ‘Jump’을 추며 온몸의 세포가 깨어났고, 정국의 ‘Dreamers’를 추며 마치 월드컵 경기장 한가운데 서 있는 듯한 벅찬 에너지가 밀려왔다. 땀이 비처럼 쏟아졌고, 심장이 뛰었다.
그 순간, 나는 비로소 살아 있음을 느꼈다.
라틴댄스를 출 땐 ‘실수하면 안 돼’라는 강박에 사로잡혀 춤이 아니라 시험을 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파워댄스는 달랐다.
'틀려도 괜찮아. 누가 보면 어때."
그렇게 마음을 내려놓자, 춤이 즐거워졌다. 그날 이후, 화요일과 목요일이 기다려졌다.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는 날처럼 설레었다. 나는 다시 ‘재미’라는 감각을 배우고 있었다.
한때 썸남의 고백을 받은 적이 있다.
“○○씨는 뭐든지 열심히 하고, 열정적이에요..그게 참 멋있어요.”
그 말이 이상하게 오래 남았다.
그 시절 나는 '공시생'이었다. 하루 종일 책상에 앉아, 감각이 무뎌지고 자존감은 먼지처럼 바닥에 깔려 있었다. ‘열정적이다’라는 말은, 그저 나와 어울리지 않는 단어 같았다.
언젠가부터 삶의 고난이 내 안에 번지며 그 열정은 점점 희미해졌다. 행동은 습관이 되었고, 슬픔은 나의 장점을 덮어버렸다.
그때 문득 떠올랐다.
‘아, 나에게도 그런 시절이 있었지. 무엇이든 진심으로 임하고, 세상을 뜨겁게 바라보던 시절이.’
나는 원래 열정적인 사람이었다. 단지 그 열정이 먼지처럼 덮여 있었을 뿐이다. 상담은 그 먼지를 털고 다시 내 안의 불씨를 꺼내는 시간이 되었다.
그리고 문득 떠올랐다.
공시생 시절, 나는 일기장에 내 마음을 쏟아냈다.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했던 이야기들이 종이 위에서만큼은 자유로웠다. 그때의 글이 나를 버티게 했고, 다시 살아가게 했다.
그래서 다시 쓰기로 했다.
다시, 나를 믿기로 했다.
낮에는 일하고, 밤에는 글을 썼다. 글쓰기 강좌를 듣고, 책을 읽고, 매일 다섯 줄씩이라도 내 마음을 옮겼다.
2024년 1월, 브런치 심사에 떨어졌을 땐 세상이 멈춘 듯했다. 글을 쓰기가 싫어졌다. 하지만 1년 뒤, 2025년 9월 — 감격스럽게도, 브런치 작가로 합격했다.
1년 동안 나는 무너졌던 나를 천천히 다시 세웠다.
한옥에서 살며 마음을 돌보고, 요가와 댄스를 배우며 몸을 회복했고, 책을 읽고, 한 줄씩 쓰며
조금씩 나를 되찾았다.
재미있는 일을 찾고, 그것을 실천하며 살다 보니
하루하루가 여전히 흔들렸지만 예전처럼 무너지진 않았다. 재미있는 일의 끝에는 늘 ‘나 자신’이 있었다.
그렇게 상담은 내 삶에 다채로운 색을 덧입히고,
무대 밖에 서 있던 나를 무대 위의 주인공으로 불러 세워주었다.
다시 펜을 들었다.
글을 쓰는 일은 나를 회복시키는 또 하나의 무대였다. 단 한 문장이라도 내 마음을 다해 적을 때마다, 나는 조금 더 단단해지고 있었다.
작가의 말
이 글은 「뒤처진 자리에도 레드카펫은 깔린다」 연재의 일부입니다.
시스템 문제로 일부 글이 브런치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같은 시간의 기록 안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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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뒤처진 자리에서]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19
✈️[승진은 남의 자리, 야근은 내 자리]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