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담이 열어준 마음의 레드카펫(2)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연습
“나는 늘 남을 위해 살았다.
가족을 위해, 직장을 위해, 남의 시선을 위해..
하지만 이제는 나를 위해 살아보려 한다.”
그래, 이렇게 살아서는 안 돼! 내 인생에 나의 온 생애를 다 걸어야 해, 꼭 그래야만 해!
— 양귀자, 모순 中
몇 번의 상담 이후, 나는 정말로 내 온 생애를 걸고 달라지고 싶었다. 나를 위해 살아보고 싶었다. 결심만으로는 부족했다. 이제는 실천으로 증명해야 했다.
나는 쉽게 뜨거워지고, 쉽게 식는 사람이었다. 순간의 열정으로 불을 지피지만, 조금만 바람이 불면 금세 식어버렸다. 무언가를 끝까지 해내는 일은 내게 '로또 당첨'처럼 멀고도 낯선 일이었다. 끓어오름은 있었지만, 완주는 없었다. 성취란 단어는 내 사전에 있었지만, 오래 머물지 못하는 손님처럼 스쳐 지나갔다.
그래서 더 간절했다. 이번만큼은 식지 않고, 꺼지지 않기를... 내 안의 불씨를 다시 믿어보고 싶었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던 시절, 함께 공부하던 친구는 계획적이고 성실한 'J'였다. 목표를 세우면 끝까지 나아가는 사람, 나와는 다른 세계의 사람이었다. 하루는 공부에 지쳐, 그 친구가 말했다.
“오늘은 쉬고 영화 한 편 보자.”
그날따라 몸도 마음도 유난히 무거웠다. 그래도 약속이니 따라나섰다. 지하철을 타고 영화관 근처에 이르자, 나는 발걸음을 멈췄다.
“이렇게 피곤한데 무슨 영화를 봐… 가도 재미없을 거야.”
친구는 끝까지 가자고 했지만, 나는 늘 그랬듯 중간에서 멈추자고 했다. 포기는 언제나 내 쪽이 빨랐다.
그땐 아무렇지 않았지만, 시간이 지나며 친구의 실망한 표정이 오래 남았다. 그날 이후 나는 마음먹은 일을 끝까지 이루지 못하는 내 모습이 부끄러웠고 쪽팔렸다.
그래서 달라지고 싶었다.
끝까지 가는 법을 배우고 싶었다.
상담이 깊어질수록 선생님은 내게 숙제를 내주셨다.
“○○씨, 마음속에 새기세요.
스스로를 믿는 말 한마디가 결국 삶을 바꿉니다.
우울증은 남과 소통하고 내 의견을 말하면 저절로 사라져요..
그러니 이번 주엔 혼잣말이라도 자꾸 말을 꺼내보세요.”
그 말이 잔잔히 남았다. 그리고 나는 처음으로 나 자신에게 말을 걸기 시작했다.
'잘 될 거야, 할 수 있어, 해보면 되는 거야.'
며칠 뒤, 그 말을 실천할 기회가 왔다. 상담을 마치고 버스정류장에 섰을 때, 내가 타려던 버스는 막 출발하고 있었다. 예전 같으면 멈췄을 것이다. '다음 차 타면 되지 뭐..'
하지만 이번엔 달랐다.
'탈 수 있을 거야'라고 되뇌며, 나는 뛰었다.
그러자 기사님은 신기하게도 문을 열어주셨다.
“어서 타세요.”
그 짧은 순간이 이상하게 뿌듯했다. 버스를 탄 건 단순한 일이었지만, 그 안에는 ‘포기하지 않은 나’가 있었다.
그날의 한 걸음은 내 안의 걱정과 두려움을 이기고, 상담을 통해 내 행동이 변화되었던 첫 번째 순간이었다.
나는 뼛속까지 부정적인 사람이었다. 세상을 밝게 보기보다, 늘 그늘진 쪽부터 살폈다. 사람의 단점이 먼저 눈에 들어왔고, 나 자신에게도 늘 가혹했다.
반면에 엄마와 나는 사고방식이 달랐다. 엄마는 언제나 긍정의 언어로 세상을 품었고, 나는 부정의 언어로 세상을 의심했다. 같은 사람을 보아도, 우리는 다른 마음으로 반응했다.
엄마는 ‘이해’를 택했고, 나는 ‘판단’을 택했다.
공무원 실무수습 시절, 처음 배정된 부서의 사수는 전형적인 ‘강약강약’ 형 사람이었다.
윗사람에게는 약하고, 아랫사람에게는 강했다. 말투는 날이 서 있었다. 작은 실수에도 눈빛이 번득였고, 그럴 때마다 그분 주변의 공기가 미묘하게 식었다. 게다가 그는 늘 자신이 옳다는 듯, 잘난 척이 버릇처럼 묻어 있었다.
첫 월급날, 모두의 나의 첫 월급을 축하할 때, 그는 말했다.
“일도 없는데, 월급을 너무 많이 주는 거 아니야? 한턱 내야지.”
순간, 웃음이 새어 나왔다. 정확히 말하면, 황당해서 웃음이 났다.
기뻐야 할 첫 월급날의 선명함이 그 말 한마디에 스르르 흐려졌다. 마음에 안개가 앉았다.
나는 그날 이후, 그와 함께 있는 공기가 늘 불편했다. 그 사수 밑에서 나와 동기는 그를 욕하며 하루를 버텼다.
“세상에서 제일 꼴불견이야. 저런 사람은 절대 되지 말아야지.”
어느 날, 엄마에게 하소연하듯 그 이야기를 꺼냈다. 엄마는 잠시 생각하시더니, 이렇게 말씀하셨다.
“그 사람, 아픈 사람인가 보네.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파서, 괜히 센 척하는 거야.”
나중에 알게 되었다.
그는 실제로 오랜 지병을 앓고 있었고, 그 아픔을 숨기기 위해 세상에 조금 더 세게 맞서고 있었다.
나는 '불평'을, 엄마는 '연민'을 보았다.
그때 처음 알았다.
세상을 보는 시선의 온도가 다르면, 같은 풍경도 전혀 다른 색으로 보인다는 걸.
나는 그날 이후, 엄마의 그 따뜻한 시선과 혜안을 닮고 싶었다.
비록 아직은 서툴지만, 내 마음의 결을 조금씩 바꿔가며 노력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내겐 부정을 긍정으로 바꾸는 연습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누군가에게 따뜻한 햇살 같은 사람이 되고 싶었다. 하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찬 바람이었기에, 선생님의 조언을 내 삶에 새겼다.
한 번 부정적인 생각을 하게 되면, 그걸 바꾸기까진 시간이 걸려요.
그러니까 작은 제스처라도 해보세요.
그리고 하루에 한 가지 부정적인 생각이 들면,
한 가지 긍정적인 생각으로 퉁치세요.”
그날부터 나는 연습했다. 부정적인 생각 하나가 떠오를 때마다 긍정의 생각 하나로 바꾸는 법을...
팀장님이 또 실수를 지적했을 때, 예전 같으면 스스로를 탓했겠지만 이번엔 머리를 살짝 흔들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어제보다 나아졌잖아. 저번에 틀린 건 아니잖아.'
그 단순한 제스처와 전환의 말이 내 마음의 방향을 바꾸었다.조금씩, 정말 조금씩 달라지고 있었다. 여전히 나는 실수했고, 일은 힘들었지만 예전처럼 스스로를 미워하지는 않았다. 마음이 무너질 때마다, 선생님의 목소리를 떠올렸다.
‘괜찮아요. 조금씩 나아지고 있어요.’
그 말 한마디가 내 안의 꺼져가던 내 안의 불씨를 다시 일으켰다. 나는 여전히 완벽하진 않지만, 조금씩, 아주 조금씩 나를 믿는 법을 배우고 있었다.
나는 이제 안다.
생각을 바꾸면, 세상의 온도도 달라진다는 걸.
그리고 그 변화의 시작은 언제나
✍️ 작가 코멘트
이번 글부터는 ‘다섯빛의 온기’라는 이름으로 인사드려요.
제 글처럼, 제 이름도 조금 더 따뜻한 온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
✍️ 작가의 말
이 글은 「뒤처진 자리에도 레드카펫은 깔린다」 연재의 일부입니다.
시스템 문제로 일부 글이 브런치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같은 시간의 기록 안에 있습니다.
✈️ [프롤로그]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18
✈️ [뒤처진 자리에서]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19
✈️[승진은 남의 자리, 야근은 내 자리]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22
✨[ 연재 관련 ]
당분간은 매일 한 편씩 씁니다.
늦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천천히 써 내려갑니다.
- 이후에는 기존처럼 주 2회로 돌아올 예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