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을 고치듯, 나를 고치다- 한옥이 열어준 마음의 레드카펫-(2)
오래된 집은 나를 고쳤고, 나는 그 집을 고치며 조금씩 회복했다.
그렇게 나는, 삶을 바라보는 눈이 조금씩 부드러워지고 있었다.
어느 날, 엄마가 마을 어귀에서 옛 친구를 우연히 만났다.
꽃과 식물이 가득한 한옥에 사는 걸 본 친구가 말했다.
“너 이제 성공했구나. 여유 있고, 참 아름답게 사는 것 같아.”
그 말을 들은 엄마의 얼굴엔 웃음이 번졌다. 이상하게도, 나 역시 그 말을 듣고 마음 한켠이 따뜻해졌다.
그동안의 불편함이 한순간 잊혔다.
나무 틈으로 스며들던 찬바람도, 이름 모를 벌레들도, 전기요금 고지서와 대출금의 숫자도
그날만큼은 신경 쓰이지 않았다.
‘그래, 사람은 이렇게 여유롭게 살아야 하는 거구나.’
불편함을 견디며 지낸 세월이 헛되지 않은 듯했다. 성공이라 부를 수는 없지만,
삶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내 마음의 방향을 찾아가는 그 시간이 조용한 자부심으로 다가왔다.
예전엔 좁은 아파트에 살 때 아무도 찾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한옥으로 이사 온 뒤, 사람들은 자연스레 찾아왔다.
친구들도, 친척들도, ‘집 구경’을 핑계로 찾아와 대청마루에 앉아 차를 마시고 꽃과 나무를 구경했다.
고모는 늘 말했다.
“사람은 무조건 잘 살아야 해, 잘 살면 산꼭대기에 있어도 사람들이 찾아와.”
그 말의 뜻을 이제야 안다.
비단 돈이 많고 명예가 있는 삶만이 ‘잘 사는 삶’이 아니었다.
낡은 나무 기둥에 니스를 칠하다가 문득, 내 안의 닳고 무뎌진 마음을 매만지는 기분이 들었다.
쌓여 있던 불안과 고립, 외로움의 곰팡이가 서서히 닦여 나가는 듯했다.
한옥의 변화는 곧 나의 변화였다.
부서진 마루를 고치며, 내 안의 균열도 조금씩 메워졌다.
손이 많이 가는 집이라 투정도 났지만, 그만큼 정성도 깊이 스며들었다.
그 손길이 닿을 때마다
한옥은 나에게 속삭였다.
“삶은 완벽해서가 아니라, 손이 닿는 곳마다 조금씩 단단해지는 거야.”
그렇게 나는 ‘완벽함이 아닌 진심’을 배웠다.
손이 많이 가야 하는 공간이기에, 마음도 자주 들여다봐야 하는 집이었다.
겨울의 한기는 여전히 매섭지만, 이제 그 추위가 두렵지 않다.
나무의 숨결과 바람의 결이 내 마음을 조금씩 따뜻하게 덮어주었으니까.
바람은 여전히 스며들지만, 이젠 그것마저도 자연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어릴 적, 미친개에게 쫓긴 기억이 있다.
그날 이후로 평생 개를 무서워했다.
개가 줄에 묶여 있어도 피했고, 눈이 마주치면 심장이 얼어붙었다.
그런 내가, 한옥에서 강아지를 키우게 될 줄은 몰랐다.
처음엔 현관 앞을 지키는 작은 존재조차 낯설고 두려웠다.
하지만, 내가 '사랑이'라고 불러주기 시작하면서부터, 그는 나를 향해 꼬리를 흔들었고,
나도 그 눈빛을 피하지 않게 되었다.
부모님이 여행을 가신 날에도 점심시간마다 잠시 들러 밥을 챙겨주었다.
그렇게 나는 조금씩, 두려움과도 친구가 되었고, 낯선 것을 받아들에게 되는 법을 배웠다.
살아있는 것들의 온기를 비로소 느끼게 되었다.
사랑이의 '따뜻함'이 내 안의 얼어붙은 마음을 녹였다.
이 낡은 집은 여전히 불편하지만, 그 안에는 생명의 숨결과 조용한 온기가 있었다.
변화는 나뿐만이 아니었다.
건강이 좋지 않던 아빠는 오랜 비염이 사라졌고, 엄마는 꽃과 채소를 가꾸며 매일의 삶을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 예전에는 각자의 일로 흩어지기 바빴던 가족이 이제는 특별한 날 마당에 둘러앉아 삼겹살을 구우며 함께 시간을 보냈다. 직접 키운 상추와 고추를 따서 바로 밥상에 올릴 때마다 함께 먹으며 웃었다.
아파트에서 살던 때엔 서로의 하루를 몰랐지만,
한옥에서는 작은 바람에도, 문 여는 소리에도 서로의 존재가 느껴졌다.
틈이 있어야 숨 쉬고, 손이 닿아야 따뜻해진다.
나는 그 틈에서 위로를 배우고, 손끝에서 삶을 다시 배웠다
언제까지 이곳에 머물진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이 집은 내 삶의 숨결을 되살려주었고 나를 호흡하게 했다.
하지만 한옥이 완전한 회복은 주지 못했다.
공간이 내 몸을 감싸주었지만, 마음속 깊은 어둠까지는 닿지 못했다.
그래서 나는 또 다른 회복의 방법을 찾기로 했다,
'공간'이 아닌 '사람'을 통해 내 마음의 문을 조금 더 열어보기로 했다.
✍️ 작가 코멘트
불편함이 꼭 결핍의 다른 이름은 아니다. 한옥은 내게 그렇게 말했다.
불편한 곳에서도 마음의 자리를 찾을 수 있다면,
그곳이 바로 삶의 레드카펫이다.
✍️ 작가의 말
이 글은 「뒤처진 자리에도 레드카펫은 깔린다」 연재의 일부입니다.
시스템 문제로 일부 글이 브런치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같은 시간의 기록 안에 있습니다.
✈️ [프롤로그]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18
✈️ [뒤처진 자리에서]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19
✈️[승진은 남의 자리, 야근은 내 자리]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22
✨[ 연재 관련 ]
당분간은 매일 한 편씩 씁니다.
늦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천천히 써 내려갑니다.
- 이후에는 기존처럼 주 2회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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