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옥이 열어준 마음의 레드카펫-(1)
한옥은 여전히 불편했지만, 그 불편함이 오히려 나를 위로했다.
한겨울의 한옥 속에서 내 마음의 온도가 조금씩 올라오기 시작했다.
인생은 늘 예기치 않은 방향으로 꺾인다.
나에게 그 꺾임은, '한옥살이'였다.
나는 그곳이 불편함의 시작이자 위로의 자리라는 걸 아직 몰랐다.
한옥에 대해선 잘 알지 못했다.
스무 해 넘게 아파트에서 살아온 내게 한옥은 그저 TV 속 풍경이었다.
고풍스럽지만, 어딘가 범접할 수 없는 공간.
은퇴한 정치인이나 부유한 사람들이 한가롭게 사는 곳이라고만 생각했다.
그러던 어느 날, 외삼촌이 새 집으로 초대했다.
그리고 내 눈앞에, TV에서나 보던 거대한 한옥이 서 있었다. 입구에서 강아지가 반겼지만, 내 시선은 오직 그 웅장하고 고고한 집에 꽂혀 있었다.
기둥마다 한자가 새겨져 있고, 나무와 한지가 어우러진 구조는 숨이 막히도록 경이로웠다.
외삼촌이 직접 나무를 구해 손수 설계하고 지은 ‘손때 묻은 집’이라 했다.
그때 처음 맡았던 한옥의 나무 향은 아직도 잊히지 않는다.
마치 우거진 숲 속에 들어선 듯, 고요하고도 단단한 냄새였다.
그리고 문득 생각이 스쳤다.
'이런 곳에서 살면, 나도 조금은 다른 사람이 될까?'
좋은 집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기에 공간이 사람에게 어떤 여유를 주는지 알지 못했다.
하지만, 그날, 외삼촌의 가족과 한옥을 바라보며 처음으로 느꼈다.
햇살이 기와를 타고 미끄러지듯, 그 집에는 묘한 고요와 여유가 있었다.
그 여유가 부러웠다.
아니, 어쩌면 그 여유 속에 '삶의 품격'을 동경했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그때까지도 설마 내가 한옥이라는 낯설고 거리감 있는 곳에서 살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몇 해 뒤, 외삼촌이 이사를 가면서 그 집이 우리 가족의 새 보금자리가 되었기 때문이다.
마땅한 집을 찾지 못하던 우리 가족에게 뜻밖의 제안처럼 주어진 자리였다.
그렇게, 나는 타의로 한옥살이를 시작했다.
내가 선택한 것도, 바라던 것도 아니었지만, 어느 날 문득 주어진 삶의 새로운 자리가 되었다.
첫인상은 낭만보다 ‘불편함’이었다.
아파트의 콘크리트 벽 대신 나무와 바람이 숨 쉬는 집,
밤마다 삐걱거리는 마루와 구멍 난 문틈 사이로 드나드는 찬 기운이 공존했다.
이사 첫날, 한겨울의 매서운 바람이 틈새로 스며들었다.
문풍지를 덧대도 찬기운은 집 안 구석마다 들었다.
보일러 대신 심야전기로 불을 때야 온기가 돌았고, 그마저도 집 전체가 데워지려면 반나절은 걸렸다.
오래되고 낡은 집이라 밤이 되면 기와 사이로 바람이 흐르고, 낡고 삐걱거리는 소리가 내 마음의 균열을 따라 스며들었다.
손님들은 “이렇게 멋진 집에서 사시다니 정말 부럽네요”라 했지만,
나는 알았다.
그 부러움 속엔 살아보지 않으면 결코 모르는 불편함이 있다는 걸...
한옥 주변은 산과 논, 밭으로 둘러싸여 있다.
자연과 함께 산다는 건, 벌레와도 함께 산다는 뜻이었다.
여름이면 모기와 개미, 심지어 이름 모를 곤충들과의 동거가 시작됐다.
가스가 들어오지 않아 모든 걸 전기로 해결해야 했고, 심야전기를 쓰는 바람에 전기요금 고지서는
늘 숨이 막혔다.
그렇게 나는 불편함 속에 살았다.
그러나 이상했다.
겨울엔 추웠지만, 여름엔 놀랍도록 시원했다.
자연이 에어컨이 되어주어 선풍기만 틀어도 무더운 여름을 견딜 수 있었다.
문을 열면 맑은 공기와 함께 바람이 들어왔고, 그 바람은 내 마음의 묵은 먼지를 털어냈다.
겹겹이 쌓인 한지 문 너머로 스며드는 종이 냄새, 나무의 숨결, 대청마루 위로 드는 햇살.
그 모든 것이 내 마음을 천천히 풀어주었다.
대청마루 위에 앉아 바람을 맞을 때면 세상의 속도가 느려지고, 내 마음의 결도 함께 고요해졌다.
사계절이 스며드는 바람은 노량진 고시원의 눅눅한 공기와는 다른 포근함과 시원함을 동시에 안겨주었다.
꽃으로 가득한 정원 사이로 햇살이 내려앉았고, 바람 따라 때때로 새와 고양이, 나비가 놀러 왔다.
겨울을 견디면 여름이 보상처럼 찾아온다는 것을 체감했다.
삶의 틈이 결점만은 아니라는 걸, 불편함도 마음을 쉬게 할 수 있다는 걸, 그제야 조금 알 것 같았다.
한옥은 여전히 낡았지만 그 낡음 속에서 나는 단단해지고 있었다. 나무의 결은 내 안의 고립을 밀어냈고, 삐걱거리는 소리마저 위로로 들렸다.
결국 위로는 편안함이 아니라, '불편함을 견디는 시간' 속에서 피어나는 것이었다.
한옥은 내게 말했다.
“불편해도 괜찮아. 버티다 보면 좋은 날이 선물처럼 올 거야.”
불편했던 공간이 오히려 나를 단단하게 만들었다.
불완전한 하루들이 모여 지금의 나를 지탱했다.
한옥살이는 내 안의 뒤처진 시간을 꺼내는 과정이었다.
사람에게 치이고,
직장에서 버티며,
사랑에도 번번이 어긋났던 내가
불편함 속에서 나를 돌보는 법을 배웠다.
불편한 집이었지만, 그곳에서 조금씩 나는 회복되었다.
가장 낡고 불편한 자리에서, 천천히 피어났다.
불완전한 집에서, 완전한 나를 배우는 시간이었다.
조금씩 마음의 결이 달라지고 있었다.
그리고 예상치 못한 순간, 그 집은 나에게 또 다른 깨달음을 주었다.
✍️ 작가 코멘트
글을 다듬는 과정에서 재발행하게 되었어요.
기다려주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조금 더 따뜻한 마음으로 다시 읽어주면 좋겠어요.
✍️ 작가의 말
이 글은 「뒤처진 자리에도 레드카펫은 깔린다」 연재의 일부입니다.
시스템 문제로 일부 글이 브런치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같은 시간의 기록 안에 있습니다.
✈️ [프롤로그]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18
✈️ [뒤처진 자리에서]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19
✈️[승진은 남의 자리, 야근은 내 자리]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22
✨[ 연재 관련 ]
당분간은 매일 한 편씩 씁니다.
늦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천천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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