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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한 친구의 결혼식 날, 나는 조용히 사라졌다.

절친 결혼식에서 마주한 나의 늦음

by 다섯빛의 온기


결혼을 가장 늦게 할 거라 생각했던 마지막 친구까지 떠나는 날, 나는 홀로 남았다.
누군가의 축복의 자리에, 나는 조용히 앉아 있었다.


내겐 대학 시절부터 함께해 온 절친이 네 명 있다. 같이 시험공부를 하고, 기숙사에서 라면을 나눠 먹으며

“결혼은 서른 중반쯤?”이라며 농담처럼 미래를 그리던 친구들이다.


첫 번째 친구가 결혼의 스타트를 끊었을 때, 그저 신기했다. 누군가의 아내가 되고, 한 가정을 꾸린다는 일이

우리 또래에게 벌써 닥칠 줄 몰랐다. 드레스를 입은 친구의 얼굴에서 예전의 장난스러운 표정이 사라진 지 오래였고, 어쩐지 낯설었다. 그날 처음으로, ‘이제 우리는 어른이 되었구나’ 하는 실감이 났다.


두 번째 친구의 결혼 소식은 마음이 찡했다. 그 친구는 누구보다 긴 시간의 아픔을 버텨냈다. 그래서인지 이제 그 친구가 드디어 좋은 사람을 만나 행복해지려 한다는 것이 짠하면서도 기뻤다. 그의 결혼식 날, 나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기도했다. 가정만큼은 온전한 평안 속에 있기를...


세 번째 친구가 결혼했을 때, 그날은 왠지 모르게 허전했다. 서로의 마음을 잘 알고 가장 마음을 터 놓았던 친구였기에 그런 친구가 내 눈앞에서 다른 세상으로 건너가는 듯했다.

시집가는 딸을 떠나보내는 엄마의 심정처럼, 오랜 시간 내 곁에 있던 무언가가 천천히 멀어지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마지막 절친이 결혼하던 날, 나는 비로소 홀로 남았다. 그 친구는 나와 가장 많은 시간을 나눴고 같은 길을 가는 친구였기에 당연히 우리는 늦게 결혼할 줄 알았다.

“어중이떠중이랑 결혼할 바엔, 그냥 실버타운 같이 들어가자.”

우린 늘 그렇게 웃으며 농담처럼 말하곤 했다. 그런데 그 친구마저 떠나는 순간, 가슴 한가운데 커다란 구멍이 뚫린 것 같았다. 친구들이 새로운 가정을 꾸리고, 다른 인생의 단계를 밟아가는 모습을 진심으로 축하해 줘야 마땅했다. 하지만 마음은 그 뜻을 따라주지 않았다. 기뻐하는 대신 묘한 쓸쓸함이 번졌다.


그들의 행복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동시에, 나는 내 안의 공허를 마주해야 했다.



친구의 결혼식은 오후 4시였고, 시간은 넉넉했지만 발걸음은 유난히 무거웠다. 고속버스를 타고 달렸지만 도로는 막혔고, 시위로 인해 택시마저 잡히지 않았다. 겨우 지하철을 갈아타고 결혼식장에 도착했을 땐, 이미 식은 시작하고 있었다.

"자네가 무언가를 간절히 원할 때 온 우주는 자네의 소망이 실현되도록 도와준다네.”
— 파울로 코엘료 『연금술사中』


그 문장은 내게 정반대의 진실처럼 느껴졌다. 이제 내 절친들 중에 미혼은 나 하나뿐이었다.

어쩌면 나는, 친구의 결혼을 진심으로 축하하지 못한 나쁜 마음을 은연중에 간절히 원했던 건 아닐까..

그날따라 모든 우주는 나를 결혼식에 늦게 가게 만들었다. 마치, 내 마음을 아는 듯이..


식이 끝난 후, 뷔페 줄에 서자 고립은 더 선명해졌다. 친구들은 모두 남편과 함께였다.

건너편에 있던 친구들의 남편은 손이 닿지 않는 음식을 친구에게 건네며,


“연어 좋아하지? 여기 덜어줄게, 샐러드는 내가 가져올까?”


그렇게 서로의 취향을 챙겼지만 나는 혼자 접시에 음식을 담았다. 그들의 웃음소리는 부드러웠고, 그 다정함은 예뻤다. 하지만 그 부드러움은 내 손끝에 닿지 않았다. 웃음 속의 거리감이 유리벽처럼 느껴졌다.


밥을 먹으면서도 그들의 대화는 집, 시댁, 육아로 이어졌고 나 그저 미소로만 반응했다. 식이 끝난 후에도 부부들은 서로 다음 일정을 상의하며 자연스럽게 짝을 이뤄 떠났다. 그 자리에서 나만 방향을 잃은 사람처럼 서 있었다. 물론, 가정을 꾸리면 당연히 남편이 우선이라는 사실을 알았기에 나는 서운함 조차 표현조차 할 수 없었다.


친구의 결혼식에 늦어 사진을 찍지 못한 게 아쉬운 게 아니었다. 결혼이라는 역의 플랫폼에 이미 떠난 사람들 사이에서 이미 떠나버린 사람들 사이에 남겨진 듯한 기분이었다. 그들의 행복을 진심으로 축하해야 했지만

마음은 그 뜻을 따라주지 않았다. 내가 축하의 말을 건넬수록 그 말이 공허하게 메아리쳤다.

기쁨이 아닌 ‘나만 멈춘 듯한 감각’이 자꾸 나를 덮었다.

그들이 가정을 꾸리고 더 나아가는 모습을 응원하면서도 나는 이상하게도 제자리에서 멈춰 있었다.

그 마음을 들킨 것 같아 미안했고, 그 미안함이 자책으로 변했다.


어쩌면, 나는 그날 이후로 결혼이 아니라
‘관계의 이별’을 겪은 것인지도 모르겠다.

집으로 내려오는 고속버스 안, 창밖의 풍경은 느리게 흘렀다. 창가에 닿은 꽃잎 하나가 이내 흩어졌다.
그 떨어짐이 내 마음 같았다. 세상이 나를 벗겨내는 듯, 한 겹씩 희미해져 갔다.
햇살이 따갑게 얼굴을 스쳤지만, 눈물이 고였다. 햇빛이 눈부셔서가 아니었다.
뒤처짐을 온몸으로 느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길 위에서 나는 처음으로 생각했다.

‘아, 나도 이제 진짜 혼자구나.’


그전까지 나는 결혼이 늦어지는 걸 조급해하지 않았다. 이루고 싶은 일도, 하고 싶은 일도 많았다.

외로워서, 혹은 나이가 차서 쫓기듯이 결혼하고 싶진 않았다. 나는 믿었다.

“결혼은 언제 하느냐보다, 누구와 하느냐가 더 중요하다”라고...


그 신념을 붙들고 살았다. 하지만 그날만큼은 달랐다. 짝꿍이 없는 자리의 공기가 조용히 나를 삼켰다.

늦음은 더 이상 여유의 이름이 아니었다.


그날 이후로, 고립의 여운은 오래 남았다. 결혼은 선택이라 믿었지만 세상은 필수라 말했다.

직장에서도 나이 어린 후배들은 대부분 결혼을 했고, 부모님은 “지인들은 벌써 손주를 본다는데, 너는 언제쯤 결혼할 거니?”이라며 무언의 압박을 주곤 했다. 친척들의 안부 인사는 ‘결혼 언제 할 거니?’로 시작하였다.

결혼을 하지 않으면 어딘가 하자가 있는 듯한 시선, 그 시선 속에서 나는 스스로 ‘뒤처진 사람’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있었다.


소개팅도, 인연도, 번번이 어긋났다.

그렇게 외로움과 고립의 시간을 버티던 내게 어느 날, 작은 변화를 일으킬 전환점이 찾아왔다.

그 전환점은 오래 잊고 있던 설렘을 불러오는 선물 ― '한옥살이'였다.


✍️ 작가 코멘트
친구의 행복을 축하면서도, 내 안의 고립을 마주해야 했던 날의 기록입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 감정이 저를 조금 더 단단하게 만들었던 것 같아요.
혼자라는 시간을 통해 내가 어디에 서 있는지, 어디로 걸어가야 하는지 돌아볼 수 있었으니까요..



✍️ 작가의 말
이 글은 「뒤처진 자리에도 레드카펫은 깔린다」 연재의 일부입니다.
시스템 문제로 일부 글이 브런치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같은 시간의 기록 안에 있습니다.

✈️ [프롤로그]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18
✈️ [뒤처진 자리에서]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19
✈️[승진은 남의 자리, 야근은 내 자리]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22
✨[ 연재 관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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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천천히 써 내려갑니다.
� 이후에는 기존처럼 주 2회로 돌아올 예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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