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쓰기가 열어준 마음의 레드카펫(1) - 조용히 피어오르는 문장들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털어놓는 일은 늘 낯설고, 두려웠다.
그래서 말 대신 글을 택했다.
글은 내 언어의 쉼터이자, 세상과 나를 이어주는 다리였다. 글은 여전히, 나의 말보다 나를 더 잘 안다.
공무원으로 첫 발걸음을 뗀 신규자 교육에서, 리조트 연회장 안 둥근 테이블에 앉다. 우리는 서로의 소원을 말하며 어색함을 깨뜨렸다.
나는 잠시 망설이다가 말했다.
“남북통일이요.”
그건 웃기려는 의도도, 허세도 아니었다. 진심이었다. 서로가 조금 더 다가가는 세상이 되길 바라는 소원이었다.
그때 내 옆의 한 동기가 조용히 말했다.
“저는 말을 잘하고 싶어요.”
그 말이 참 낯설기도 했고 당황스러웠다. 성인이 되어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이 ‘말을 잘하고 싶다’니... 그는 내성적이라 말할 때마다 입이 굳고, 사람들 앞에서는 늘 힘들다고 했다. 그땐 이해하지 못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사회의 복잡한 공기 속을 걷다 보니 나는 그 말의 무게를 알게 되었다.
나 역시 말을 잘하고 싶었다. 회의 자리에서 단 한마디의 위트 있는 말을 던지는 사람, 적절하게 거절할 줄 아는 사람, 그런 사람은 늘 부러웠다. 나는 언제나 “네”와 “아니요”사이에서 머물렀다. 해야 할 말은 늘 머릿속에서만 맴돌았기에,
불편한 상황이 오면, 말 대신 문자로 마음을 대신 전했다.
그렇게 나는 점점 말을 잃어갔다.
그러다 글이 나를 구했다.
글은 나를 대신해 말했고, 세상이 묻지 않아도 내 마음을 들어주는 유일한 창이었다.
말로는 전하지 못했던 진심이 문장 속에서 비로소 숨을 쉬었다.
20살 무렵의 일기장을 다시 펼쳐보았다. 그 안에는 ‘기쁘다, 설렌다’ 같은 빛나는 단어들과 ‘힘들다, 서운하다’ 같은 그림자가 함께 있었다. 그 모든 언어는 내 삶의 온도였다. 일기는 나의 에너지 드링크였다. 나를 깨우고, 나를 각성시킨, 작고 단단한 문장들.
돌이켜보면, 내 리즈 시절은 하루를 일기장에 남기던 때였다. 그 시절의 나는 세상을 기록하며 나를 돌봤고, 그 기록이 흔들릴 때마다 나를 세워주었다. 지금도 자신감은 부족하고, 글을 쓰는 일은 여전히 두렵다. 그럼에도 쓴다.
잘 쓰기 위해서가 아니라, 살아남기 위해서.
말을 잃어 글을 택했지만, 글은 오히려 내게 재미와 행복, 단단함과 에너지를 주었다.
그리고 알게 되었다 —
글쓰기가 결국 나를 가장 나답게 만든다는 것을.
책을 읽다 문득 벌레를 보았다. 그리 오래된 책도 아니었는데, 종이 사이로 천천히 기어 나왔다. 순간 이상하게 마음이 먹먹해졌다.
‘이 책은 오랫동안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구나.’
어쩌면 글도 그렇지 않을까.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으면, 마음의 온기가 닿지 않으면 조금씩 세상에서 잊히게 된다.
그래서 나는 생각했다.
벌레가 머무는 책이 아니라,
사람이 머무는 글을 쓰고 싶다고.
누군가의 손길에 다시 펼쳐지고,
그 마음 위에서 조용히 피어나는 꽃 같은 문장을 남기고 싶다고.
나는 여전히 말을 잘하지 못한다. 하지만 글을 쓸 때마다 마음이 조금 더 따뜻해진다. 침묵이 오히려 도움이 되는 때도 있었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그 시간이 있었기에, 나는 지금 이렇게 쓸 수 있다.
말하지 못한 시간들이 글로 피어났고, 그 글이 나를 세상과 다시 잇게 했다. 침묵은 내게 글을 주었고,
글은 내게 다시 살아갈 힘을 주었다.
이제 나는 바란다. 시간이 흘러 책이 낡더라도,
그 위에 머무는 것이 벌레가 아니라 사람의 마음이길. 조용히 피어, 누군가의 하루에 남는 꽃 같은 글을 쓰고 싶다.
✍️ 작가 코멘트
이번 글부터는 ‘다섯 빛의 온기’라는 이름으로 인사드려요. 제 글처럼, 제 이름도 조금
더 따뜻한 온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 작가의 말
이 글은 「뒤처진 자리에도 레드카펫은 깔린다」 연재의 일부입니다.
시스템 문제로 일부 글이 브런치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같은 시간의 기록 안에 있습니다.
✈️ [프롤로그]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18
✈️ [뒤처진 자리에서]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19
✈️[승진은 남의 자리, 야근은 내 자리]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