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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든 일도, 내겐 글의 글감이 되었다.

글쓰기가 열어준 마음의 레드카펫(2) -상처로부터 피어난 문장들

by 다섯빛의 온기

가수 솔비는 우울의 터널을 지나는 동안 자신을 치유하기 위해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비전공자라는 이유로 악성댓글이 달렸고, 중에서 가장 상처 받았던 댓글은 너 사과는 그릴 줄 아냐?라고 조롱하는 말이 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 말을 그대로 삼키지 않았다. 조롱의 대상이었던 ‘사과’를 작품으로 바꾸며, 오히려 상처를 예술의 색으로 채워 넣었다. 그렇게 탄생한 애플 시리즈는 결국 많은 이의 시선을 붙잡았다. 어두움을 재료로 삼을 줄 아는 사람이 되었고 그녀는 그렇게 스스로의 그림 안에서 다시 살아났다.


나에게 글쓰기가 바로 그런 일이었다. 빛나는 순간보다 어두운 시간들이 더 많은 글의 재료가 되었다. 삶이 곧 문장이 되었고, 매일의 감정이 한 편의 에피소드로 남았다.


2025년 1월, 나는 ‘꿀부서’에서 악명 높은 '예산을 다루는 부서'로 발령받았다. 가장 가기 싫은 부서였는데. 설마 했던 예감은 틀리지 않았다. 돈과 직접적으로 관련되는 업무를 맡게 되어 스트레스는 극에 달했다. 밤 11시 아니면 자정을 넘겨야 끝나는 하루. 커피잔 대신 쌓인 건 서류와 피로였다. 거울 속의 나는 점점 ‘사람’이 아니라 ‘일을 하는 기계’에 가까워졌다.

머리는 흐트러지고, 피부는 사막처럼 건조해졌다. 좀비처럼 건물 현관을 나설 때면, 늘 같은 생각이 들었다.

월급은 같은데, 왜 나만 이렇게 살아야 하지.”

그 질문은 매일의 저녁처럼 쌓여갔다.

팀원들과도 결이 맞지 않았다. 이미 오래 일한 사람들끼리의 카르텔 속에서 나는 고립되었다.
서로에게 무관심했고, 각자의 일만 하기에도 벅찼다. 특히 팀장님은 감정의 폭이 큰 분이었다. 기분이 좋을 때는 세상 좋은 분이셨지만, 기분이 나쁘면 사무실의 공기마저 얼어붙었다. 마치 ‘인사이드 아웃 2’의 버럭이 와 까칠이를 한 몸에 합쳐놓은 캐릭터 같았다. 그 앞에 서면 누구나 작아졌다. 나는 매일 버럭이의 분노와 까칠이의 비위를 맞추며 감정노동의 미로를 걸었다.


마음은 점점 닳아갔고, 어느 날엔 눈물조차 마른 듯했다. 그러다 결국 감정이 폭발했다. 같은 팀의 동기가 나보다 먼저 승진한 것이다. 그는 매일 6시면 칼퇴를 했고, 여유롭게 일을 했다. 반면 나는 야근과 추가 업무로 하루를 버텼지만 그 무게가 버거웠다.


그런 날이 반복되자 몸이 먼저 무너졌다.

허리가 아프고, 두통에 시달리며 약을 달고 살았다.
몸이 아프자, 마음이 소리쳤다.


“살려달라”라고.


그 마음의 소리를 듣고 처음으로 상담센터의 문을 두드렸다. 정신과와 상담실을 오가며 무너진 나를 조금씩 수습했다.

그러다 문득, 펜을 들었다.
말로 꺼내지 못한 마음들이 문장으로 흘러나왔다.

“오늘도 팀장님의 말은 나를 찔렀다.”
“이 또한 지나갈까.”
“이렇게 일만 하다 죽으면 억울할 텐데...”


처음엔 투정 같았던 문장들로 인해 타자를 칠 때마다 속이 조금씩 비워졌다. 분노는 문장 속으로 스며들었고, 슬픔은 어딘가에 저장되었다. 짧은 단어들이 문장이 되고, 문장은 나의 삶을 복원해 갔다.


글은 내 감정을 다스리는 도구이자, 나를 살게 하는 호흡이었다.리고 마침내, 그 긴 터널을 지나며 나는 나의 첫 브런치북을 완성했다.

《뒤처진 자리에도 레드카펫은 깔린다》 —

그건 단지 한 권의 책이 아니라, 내 인생의 회복기였다.


성경에는 이런 말이 있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다.”


감사하지 못했지만, 버티다 보니 모든 고난이 결국 글감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힘든 일이 생기면 이렇게 중얼거린다.


“이 또한 글감이 되겠지.”


그러면 이상하게도 마음이 덜 흔들린다. 삶이 폭풍 없이 잔잔했다면 나는 아마, 쓸 말이 없는 사람으로 남았을지도 모른다. 글은 내게 고난조차 의미로 바꾸는 힘을 주었다.


직장에서는 말수가 적은 편이었다. 말을 잘 못해서이기도 했지만, 무엇보다 ‘할 말이 없다’고 느꼈기 때문이다. 매일 똑같은 하루, 집과 회사만 오가는 반복된 일상 속에서 나에겐 자랑할 만한 에피소드도, 재밌는 이야기도 없어 보였다.

그런데 글을 쓰면서 알게 되었다. 내 인생이 ‘노잼’이었던 게 아니라, 그저 표현하지 않았을 뿐이었다는 것을.


글은 내 일상에 색을 입혔다. 평범한 하루가 한 편의 이야기로, 흐릿한 감정이 한 문장으로 살아났다. 내 삶의 모든 일이 글의 소재가 되었다.

기쁨도, 분노도, 억울함도 문장이 되었다.


고통이 내 문장이 되고,
문장이 다시 나를 살렸다.


그렇게 글이 나를 바꿔놓기 시작했다. 세상을 보는 시선이 달라졌다. 나를 쓰던 문장이 어느새 세상을 비추기 시작했다.



✍️ 작가 코멘트
이제는 ‘다섯 빛의 온기’라는 이름으로 인사드려요. 제 글처럼, 제 이름도 조금 더 따뜻한 온기를 담고 싶었습니다.


✍️ 작가의 말
이 글은 「뒤처진 자리에도 레드카펫은 깔린다」 연재의 일부입니다.
시스템 문제로 일부 글이 브런치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같은 시간의 기록 안에 있습니다.

✈️ [프롤로그]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18
✈️ [뒤처진 자리에서]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19
✈️[승진은 남의 자리, 야근은 내 자리]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22
✨[ 연재 관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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늦어도 괜찮다는 마음으로, 오늘도 천천히 써 내려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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