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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을 쓰면서 비로소 보이는 것들

글쓰기가 열어준 마음의 레드카펫(3) - 어른의 시선으로 보다

by 다섯빛의 온기

잠시 글을 놓았던 시절이 있었다. 일이 많고, 사람에 치이고, 하루하루가 생존이었다.

그런데 이상하게, 말없이 지나간 시간 속에서도 내 마음은 여전히 ‘글’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다시 펜을 들게 한 건, 뜻밖에도 사우나였다. 일상에 지칠 때면 나는 늘 그곳으로 갔다.

뜨거운 증기와 익명의 대화들 속에 묻어 있던 삶의 온기와 유머는 내 마음의 긴장이 풀리게 했다.

그 이야기들 속 오래 마음에 남았던 말이 있었다.

"예전엔 손님이 와서 밥을 먹고 인사 없이 가도 그저 즐거웠어. 그런데 이제는 ‘맛있다’, ‘고맙다’ 한마디 없이 가버리면 괜히 서운해.
나이 드니까 밥 한 상 차리는 게 얼마나 힘든 일인지 알겠더라고.”
밥 한 상은 단순한 음식이 아니라
손목과 다리의 통증, 시간과 정성, 그리고 마음의 온기가 담겨 있었다.
나는 그제야 '수고의 무게'라는 것을 이해하기 시작했다.

글을 본격적으로 쓰면서 비로소 알았다.

하나의 문장이 태어나기까지 얼마나 많은 망설임과 지워진 흔적이 필요한지.

퇴고의 시간을 견디며 나는 ‘과정의 힘’을 배웠다.

예전엔 결과만 보던 내가, 이제는 그 결과를 만든 ‘사람의 손’을 보게 되었다.


예전엔 누가 나에게 ‘좋아하는 음악가가 누구냐’고 물으면, 주저 없이 '모차르트'답했었다.

그의 천재의 반짝임, 완벽한 멜로디, 선천적인 재능의 찬란함이 부러웠다.

하지만 지금의 나는 '베토벤'을 더 좋아한다. 그는 들리지 않는 귀로 세상의 소리를 만들어냈다.

들리지 않는 어둠 속에서도 포기하지 않고 멜로디를 만들어낸 사람, 그의 음악엔 인내와 수고, 그리고 눈물의 흔적이 있다.

그건 마치, 내가 겪는 뒤처짐 속에서도 빛을 찾으려 애쓰는 나 자신 같았다.

모차르트는 타고났고, 베토벤은 만들어졌다.

나는 안다. 타고난 것보다 '만들어가는 삶'이 더 아름답다는 것을


이제 글을 읽을 때도 달라졌다.

문장보다 그 문장 뒤의 마음을 본다.

글은 결국 사람의 체온으로 완성된다는 걸.

손이 닿지 않은 문장은 금세 식고, 온기가 스민 문장은 오래 남는다.

글은 나를 더 깊은 사람으로 만들었다.

겉모습만 보던 내가, 이제는 그 속의 노력을 본다.

화려한 결과보다, 그 안의 땀과 시간과 숨결을 본다.
보이지 않던 것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그게 아마, 어른이 되어간다는 뜻일까.


글을 쓰며 세상을 다시 나는 배우고 있다.
불평이었던 일상은 이제는 한 편의 이야기로 다가오고, 글은 내 마음을 다스리는 등불이 되었다.

문장 사이에서 나는 마음을 다스리는 법을 배웠다.

때로는 혼란이 한 줄의 문장이 되어 흘러가고, 때로는 문장이 나를 위로하며 다시 일으켰다.

삶의 속도가 느려도 괜찮다.

글은 느림 속에서도 피어나는 의미를 보여주었으니까.


글이란 단순한 기록이 아니라 내 안의 고요를 세상과 잇는 또 하나의 숨이다.

글을 통해 시선은 깊어지고, 마음은 단단해지고, 삶의 표면이 아닌 그 속의 숨결을 느낄 줄 알게 되었다.


음식을 차리기까지의 그 수고, 악보 한 줄을 완성하기까지의 그 노고. 그 모든 ‘보이지 않는 시간’이 얼마나 값진지, 이제야 조금 알 것 같다.


나이가 든다는 건 그런 것 같다.

예전엔 몰랐던 게 보이고, 느끼지 못했던 것을 느끼며, 이해하지 못했던 것을 이해하게 되는 것.

사람의 깊이를 알아보고, 그안의 노력을 헤아리게 되는 일.

그게 바로 ‘성숙’이라는 이름으로 오는 선물이다.


그러니 나이가 든다는 건,
'슬픔'이 아니라 '깨달음'이다.


그리고 그 깨달음은 내 삶을 아주 천천히, 그러나 분명히 바꿔놓는다. 하루의 무게를 다르게 느끼게 하고, 사람의 말에 숨은 마음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한다. 불평 대신 이해를, 한숨 대신 감사의 숨을 배우게 한다.

그렇게 나는, 아주 느리지만 분명하게 변화하고 있었다.



✨ 연재 관련
다음 주부터는 매주 2편씩, 총 15편으로 완결됩니다. 천천히 써온 이 시간이 누군가의 마음에도 잔잔한 온기로 남길 바랍니다.


✍️ 작가의 말
이 글은 「뒤처진 자리에도 레드카펫은 깔린다」 연재의 일부입니다.
시스템 문제로 일부 글이 브런치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같은 시간의 기록 안에 있습니다.

✈️ [프롤로그]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18
✈️ [뒤처진 자리에서]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19
✈️[승진은 남의 자리, 야근은 내 자리]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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