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히, 그러나 확실하게 나아가는 삶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는 폭풍처럼 오는 걸까, 아니면 들꽃이 피어나듯 천천히 스며드는 걸까.
살면서 알게 되었다. 변화는 요란하지 않게,
거의 눈에 띄지 않을 만큼 조용히 다가온다는 것을.
우리는 늘 “달라져야 한다”고 말하지만,
진짜 변화는 거대한 결심이 아니라 '눈치채지 못한 틈새'에서 피어난다.
변화는 폭발이 아니라 스며듦이었다.
1ml씩, 아주 천천히 마음의 방향이 바뀌었다.
문득 창가의 먼지가 다르게 보이고, 어제와 같은 길 위에서 마음이 조금 달라질 때 변화는 그렇게 스며든다. 새해가 아닌 평범한 어느 날, 거창한 시작이 아니라 아주 작은 시선 하나가 우리를 바꾼다.
물이 바위를 깎듯 느리지만 단단하게, 조용하지만 확실하게. 오늘보다 1mm라도 나아진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낡았지만 숨 쉬는 집.
그곳에서 처음으로 ‘쉼’을 배웠다.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였지만, 환경은 나를 조금씩 숨 쉬게 했다. 자연과 한옥, 동물들과 함께한 시간 속에서 내 마음을 짓누르던 무게가 조금씩 금이 가기 시작했다. 내가 집을 고쳤고, 집은 동시에 나를 고치고 있었다.
상담을 받으며 나는 내 이야기를 생전 처음으로 끝까지 들어주는 누군가를 만났다.
그 경험은 그 자체로 마음의 구조를 바꾸는 일이었다. 껍질처럼 눌러놓은 감정들이 조금씩 목소리를 되찾았다. 삶의 짐을 조금씩 내려놓으며 나만의 목소리를 듣게 되었고, 어디로 가야 할지 작은 방향이 보이기 시작했다.
말로는 표현하지 못하는 마음들이 글이 되어 빛을 찾았다.
보이지 않던 것들은 보이고, 무심히 흘려보내던 것들이 다시 소중해졌다.
세상이 변한 게 아니라, 내 시선이 변하고 있었다.
그 변화를 가장 먼저 알아본 것은 세상도, 누군가도 아닌 바로 나였다.
그래서 이제는 조급해하지 않는다. 느리게 변해도 괜찮다.
멈춰 있어도 여전히 자라나고 있다.
흙 아래 깊숙이 뿌리를 내리는 시간도 엄연히 성장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으니까.
한 번에 달라지는 삶은 오래가지 않는다.
아직 준비되지 않은 마음 위에 새 집을 지으면 금세 무너져버리듯.
그래서 나는 이제 거창한 변화를 꿈꾸지 않는다.
대신, 오늘보다 단 1mm라도 나아가는 변화를 믿는다.
눈에 보이지 않아도, 느껴지지 않아도, 그 미세한 움직임이 쌓여 어느 날 문득 전혀 다른 풍경을 맞이하게 될테니까.
출근하고, 퇴근하고, 가끔은 무너지고, 하지만 그 속에서도 1ml만큼은 나아지고 있다.
아주 미세한 변화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움직임이다. 아무도 모를 만큼 느리지만, 누구보다 단단하게.
그래서 이제는 조급하게 변하려 하지 않는다. 느리게 변해도 괜찮다는 걸, 멈춰 있어도 여전히 자라고 있다는 걸 믿게 되었으니까.
어떤 드라마 속 인물이 떠오른다. 그는 오랫동안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세상과 단절된 채, 스스로를 벽 안에 가두고 살았다. 그런데 어느 날, 자신 곁에 늘 말없이 있어주던 사람을 만났다. 아무도 설득하지 않고,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저 곁에 머물러 준 사람.
얼마나 지났을까.
마침내 그가 입을 열었다.
“저… 말 좀 해도 될까요?”
기적처럼 느린 변화였지만, 그의 삶을 바꾸는 첫걸음이었다.
그런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군가에게 당장 힘을 주진 못하더라도, 그 마음 옆에 오래 머물러 주는 사람.
불 꺼진 방 한구석에서 어둠에 익숙해진 눈이 다시 빛을 찾을 수 있도록 조용히 기다려주는 사람.
한 사람이라도 나를 통해 “저도 말해도 되나요?” 하고 조용히 마음을 연다면 조금 더 세상은 따뜻해질 것이다. 거창한 말 한마디가 아니라, 서로 곁을 지켜주는 따뜻한 온기로.
나는 세상을 한꺼번에 바꾸고 싶지 않다.
다만 누군가의 하루가 조금 덜 무겁기를 바랄 뿐이다.
한 사람의 용기가 또 다른 사람의 용기로 번지고, 온기가 또 다른 누군가의 하루를 덮는다면
그것이 내가 꿈꾸는 변화다.
나는 여전히 같은 하루를 살고 있지만 어제의 나와는 분명히 다르다.
보이지 않는 자리에서 뿌리가 조금 더 깊어지고 있고, 뒤처진 것 같아 주눅 들던 날에도 나를 버티게 하는 변화가 있다.
그래서 오늘도 한 줄을 쓴다.
내 삶이 1밀리미터라도 빛을 향해 움직이고 있다면 그걸로 충분하다.
나에게 한 권의 책이 있었다.
〈나의 글로 세상을 1밀리미터라도 바꿀 수 있다면〉
내가 쓰는 글로
1미터도, 1센티미터도 아닌 오직 1밀리미터라도 달라질 수 있다면.
회복된 내가 세상에 온기를 흘려보낼 수 있다면 그 자체로 의미가 된다고 믿었다.
그 믿음은 어느새 내가 글을 쓰는 이유가 되었고, 작가로서의 정체성이 되었다.
언젠가, 조금은 다른 모습으로 내가 그 자리에 서 있을 수 있기를.
변화는 소란스럽지 않다.
세상은 언제나 조용한 마음 하나에서 달라지기 시작한다.
나는 그 마음의 시작이 되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 한 켠에 불을 켜는 글을 쓰고 싶다.
천천히, 그러나 확실하게.
오늘도 나는 자라고 있다.
✨ 연재 관련
이제 두 편이 남았습니다.
여기까지 함께 와주셔서 고맙습니다.
마지막까지, 제가 느낀 이 마음이 독자 여러분에게도 조용히 닿기를 바랍니다.
오늘도 1밀리미터만큼.
✍️ 작가의 말
이 글은 「뒤처진 자리에도 레드카펫은 깔린다」 연재의 일부입니다.
시스템 문제로 일부 글이 브런치북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같은 시간의 기록 안에 있습니다.
✈️ [프롤로그]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18
✈️ [뒤처진 자리에서]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19
✈️[승진은 남의 자리, 야근은 내 자리] https://brunch.co.kr/@721b65ec84434ef/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