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내 페이스를 찾는 중!
요즘 회사에서 마음이 참 잘 닳는다.
상사의 호출음, 회식 자리의 억지웃음, 끝도 없는 행사까지.. 내 하루는 자꾸 ‘업무용 휴대폰 배터리’처럼 방전된다.
특히 오늘은 유난히 더 심했다.
상사는 내 이름을 백 번은 부른 것 같았다.
이름이 아니라 비상벨을 달아놓은 줄 알았다.
보고서는 계속 수정하고, 전화는 숨 쉴 틈 없이 울리고, 민원은 끝없이 쏟아졌다. 하루 종일 모든 일이 동시에 밀려오는데 나는 사람이 아니라 버튼 누르면 반응하는 기계 같았다. 생각도 감정도 잠시 꺼두고 일만 하다 보니 마음의 잉크가 바닥난 느낌이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나를 챙기지 않으면,
진짜 내가 사라질 수도 있겠다.”라고...
사실 나는 한동안 나를 잃어버리고 있었다.
좋아하는 걸 물으면 늘 “아무거나.”
취향도 흐릿하고, 마음도 미적지근해 내 존재가 투명해지는 느낌. 사람들은 자기 이야기를 술술 풀어내는데 나는 늘 듣는 편이었다.
말보다 침묵이 더 익숙한 사람처럼.
그런데 어느 날 영화 〈김 씨 표류기〉가 내 마음을 붙잡았다. 무인도에 고립된 주인공이 짜장면 하나 먹겠다고 밭을 갈고 씨를 뿌리고, 작물을 키우며 버텨내던 그 장면. 세상과 단절된 섬에서 삶의 희망을 잃은 사람이, 아주 사소한 하나의 목표를 붙잡고 다시 살아내는 모습. 그 모습이 너무 나 같았다.
나도 요즘 무인도에 갇힌 고립된 일상 속에서 어떻게든 버티고 살아내려고 애쓰고 있으니까.
그래서 힘들 때마다 나는 이 영화를 다시 본다.
누군가는 가볍게 넘길 장면들이, 지금의 내 마음을 달래주고 위로해 준다.
“사람은 목표가 생기는 순간 버틸 힘이 생긴다”는 걸 다시 배우는 중이다. 하지만 나는 그 목표를 한동안 잃고 살았다. 예전의 열정은 희미했고, 요즘의 나는 그냥 ‘대충 사는 사람’ 같았다.
삶이 꼭 닭가슴살 같았다. 퍽퍽하고 버거워서 씹다 버릴까 고민하게 만드는 그런 맛.
그런데 요즘은 조금 달라졌다.
아주 거창한 자아 탐구가 아니라,
닳아버린 마음을 살짝 일으켜 세우는 ‘위로 한 스푼’으로 나를 다시 찾아보기로 했다.
그 정도면 금요일까지는 버틸 수 있으니까...
요즘 나는 작은 선택들로 나를 회복시키고 있다.
오늘 떡볶이가 좋으면 떡볶이. 아니면 모카라테, 아니면 그냥 10분 산책.
이런 사소하지만 소소한 것들이 내 마음을 많이 밝게 해 준다는 걸 요즘에서야 알게 됐다.
누군가에게는 사소한 순간들이지만, 나는 그렇게 닳아가는 내 배터리를 내 방식대로 충전하고 있다.
물론 나는 여전히 쉽게 방전되는 사람이고, 아직도 ‘진행 중’인 사람이다. 100% 충전은 아니더라도, 적어도 50%는 유지하기 위해 지금도 내가 어떤 사람인지, 무엇이 나를 다시 살아나게 하는지 찾아가는 중이다.
충전이라는 게 생각보다 거창하지 않다는 걸 요즘에서야 배운다. 그래도 나는, 닳아가는 내 몸 배터리를 어떻게든 다시 올려보는 중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는 조금씩 나를 다시 찾고 있다. 누군가의 ‘힘내’라는 말이 오히려 마음을 아프게 하던 시절.
나는 결심했다.
다 내려놓고 살자.
지금의 내 상태로는 이게 최선이다.
너무 애쓰지 말자. 내 몫만 하자.
글 쓰는 마음만 지키자.
하루를 되는 대로 살아도 괜찮다.
살다 보면 아무 이유도 없이 짜장면을 한 번 만들어보고 싶어지는,
그 작은 열정이 다시 살아나는 순간이 올 테니까.
그 미세한 움직임이
내 삶을 다시 굴리는 첫 바퀴가 될 테니까.
OO아, 그래도 돼.
지금 잘 버티고 있다.
[엔딩 크레딧]
(오늘의 출연 : 닳아버린 마음)
(특별출연 : 상사의 호출음 — 총 10회)
(협찬 : 무한 보고서 수정)
(각본/감독: 오늘도 찾고 있는 나
THE END…그리고 또 출근.